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 (8)

Darmstadt: Ludwig 가의 영광과 비극이 한자리에 ➀

© Rijin / Wikimedia Commons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과 Ernst Ludwig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1806년 백작령 다름슈타트에서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으로 거듭난 다름슈타트,

나폴레옹 전쟁과 메테르니히체제, 그리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전쟁 등 격동의 19세기 속에서도 독자성을 잃지 않고 오늘날 과학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거듭난 다름슈타트.

이번 역사산책에서는 다름슈타트의 이러한 발전을 일궈낸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특히 이러한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이자, 러시아 황후의 오빠였던 헤센의 마지막 대공 에른스트 루드비히(Ernst Ludwig)의 삶과 비극적 운명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한다

왜 다름슈타트인가?

다름슈타트의 현재는 헤센주의 인구 16만 명의 중소도시이다. 그러나 다름슈타트는 13세기 중반부터 백작이 통치하는 영지였으며, 1479년부터는 Hessen 백작가문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1806년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으로 이어져 1918년까지 그 맥을 이어왔다.

오늘날 헤센주의 이름이 이 귀족가문에서 유래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후 신설된 헤센주의 수도로 선정될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되었던 다름슈타트는 지난 1000년 지역 맹주의 역할을 담당하며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전형적인 중세도시

다름슈타트는 로마제국의 멸망이후 게르만 족의 이동에 따라 건설된 전형적인 중세 도시이다. 라인강 중부지역의 Katzenelnbogen 백작가문에 속한 다름슈타트는 점차 인구의 증가와 행정 및 상업의 발달에 따라 1330년 당시 신성로마황제 Ludwig der Bayer로부터 도시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신성로마황제로부터 도시권한을 받는 중세도시는 신성로마황제로부터 평화와 보호가 보장된다. 또한 성벽을 축조하여 방어기능을 구비하고, 시장 (경제적 중심지)이 성립하여 상품교환과 교역으로 시민의 생계를 충족하고 있다. 이와 더블어 자체 법정과 자율적인 법을 소유하여 독립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하고, 정치적인 공동체로 각 조합원들의 결속하에 시가 운영되어, 부분적이라도 도시행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름슈타트는 1330년 도시권한을 부여받은 이후 이러한 중세 도시의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Marktplaz, Rathaus, Stadtkitche 그리고 도시 곳곳에 남았는 성벽 등으로도 직접 확인할 수가 있다.

특히 시내를 감싸고 있는 다름슈타트 성벽은 도시권한 획득 이후 축조된 것으로, 당시의 도시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중여한 유적이자 사료이다.

이후 다름슈타트는 1479년 Katzenelnbogen 백작가문에서 헤센백작인 하인리히3세(Heinrich III. von Hessen)의 영지가 되었고, Hessen 가문은 이후 1806년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으로 발전하고 1918년까지 다름슈타트를 통치하였다.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 계몽 군주의 전형

1806년은 유럽, 특히 오늘날 독일지역에서는 정치적으로 격변의 해였다. 1000년 가까이 건재했던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고, 그 휘하 300여 지역 영주들은 30여개의 제후국으로 재편된 해였다.

헤센 백작령도 주변 다른 백작령을 합병하여도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으로 변화하였고, 그 수도를 다름슈타트로 정하였다. 이제 다름슈타트는 백작령의 영지, 백작의 거주지에서, 대공국(대공국은 국가와도 등치된다)의 어엿한 수도로 자리 잡고, 국제적인 지명도를 갖게 된다.

백작령의 마지막 영주인 루드비히(Ludwig) 10세는 대공국으로 변화한 뒤, 자신을 루드비히 1세로 개칭하고, 이후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의 대공은 그의 직계후손인 루드비히 2세(1830-1848), 3세(1848-1877), 4세(1877-1892) 그리고 에른스트 루드비히(1892-1918)로 이어진다.

이들 5명의 대공들은 최초의 헌법 반포, 독일에서 가장 앞선 박물관 건축, 일반인들을 위한 공원건설,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지난 다름슈타트공과대학 설립, 당시 최신 예술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Darmstädter Künstlerkolonie 설립 등 독일 내 다른 대공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민친화적인 정책들을 펼쳐나가며 오늘날의 다름슈타트를 건설하였다.

다름슈타트 시내 중심지인 Luisenplatz에 설치된 Ludwigsmonument는 루드비히 1세의 최초 헌법 반포에 대한 시민들의 감사의 표현이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지어진 이 기념물은 루드비히 1세의 생일인 6월 14일(1841년) 착공하여 그의 11주기인 1844년 8월 25일 완공식을 거행하며 루드비히 1세를 기린 기념물로서 다름슈타트 시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이다.

바우하우스에 앞서 현대 건축을 준비하다: Darmstädter Künstlerkolonie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유럽예술계는 “신예술”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몰려왔다.

영국에서는 “New Art” 프랑스에서는 “art nouveau”,독일에서는 Jugendstil, 오스트리아에서는 Secession 또는 “Vienna Secession”이라고 불리며 형식에 얽매인 기존의 예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로 엄밀히 말하자면 건축 양식/디자인 양식이다.

헤센-다름슈타트의 마지막 대공인 에른스 루드비히는 이러한 「미술공예운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헤센-다름슈타트의 번영을 일으키고 독자적인 예술을 키워내 산업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명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유능한 예술가들을 모으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람회를 개최하는 등의 재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수단을 강구한다.

루드비히 에른스트는 유럽 대도시로부터 교수칭호와 생계를 보장하며 유명 예술가들을 초빙하였다. 그리고 이들 예술가들을 위한 마을과 전시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다름슈타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마틸데 언덕(Mathildenhöhe)을 기증한다. 이렇게 설립된 예술가들의 생활 및 작업 조합이 바로 Darmstädter Künstlerkolonie이다. 이후 마틸데언덕에는 이들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고 다양한 양식의 저택들이 건설되었고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들 예술가들은 또한 전람회도 개최하였는데, 1901년부터 시작된 전람회는 1914년까지 4회가 열렸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1차세계대전으로 활동이 정지되었으며 1929년 Darmstädter Künstlerkoloniesms 해체되었다.

마지막 대공 에른스트 루드비히의 비극

유럽 귀족가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가의 비극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마지막 대공 에른스트 루드비히의 비극이다.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의 시민들로부터 생전과 사후 가장 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루드비히 에른스트 대공은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그가 다섯 살 때, 동생 프리드리히는 집에서 그와 장난을 치다 2층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프리드리히는 혈우병을 앓고 있었고,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루드비히 에른스트가 10살 때인 1878년, 전염병 디프테리아가 유럽을 강타하고 그 역시 이 병에 전염된다. 힘들어하는 그에게 입맞춤을 한 그의 어머니 앨리스는 이로 인해 디프테리아에 전염되어 얼마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1903년에는 그의 사랑하는 딸이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티프스 전염병으로 사망한다.

러시아 마지막 차르인 나콜라이 2세와 결혼한 그의 여동생 앨리스, 그리고 모스크바 대공 세르게이와 결혼한 또 다른 동생 엘라, 이 둘은 러시아혁명 당시 적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다.

그에게 닥친 비극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937년 11월 16일 에른스트 루드비히의 둘째아들 루드비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의 모든 가족은 영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벨기에 항구인 Ostende 인근 상공에서 그들이 탑승한 비행기는 추락하였고 탑승객 전원은 사망하였다. 그의 부인인 엘레오노레 대공비와 큰 아들인 게오르그 도나투스, 며느리인 그리스의 세실, 두 손주들이 모두 사망한 것이다.

사고 한 달 전인 1937년 10월 9일 사망한 에른스트 루드비히가 이 참사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일까.

다음호부터는 Luisenplatz를 시작으로 다름슈타트 역사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도록 한다.

1196호 30-31면, 2020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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