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 (10)

Darmstadt: Ludwig 가의 영광과 비극이 한자리에 ③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과 Ernst Ludwig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 중세 다름슈타트를 경험하자

1330년 다름슈타트가 당시 신성로마황제 Ludwig der Bayer로부터 도시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는 점은 첫 연재에서 밝힌바 있다.

신성로마황제로부터 도시권한을 받는 중세도시는 신성로마황제로부터 평화와 보호가 보장될 뿐만 아니라, 시장을 개설할 수 있고, 도시 성벽을 축조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일반적으로 중세도시의 특징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상공업 활동의 중심지로 주변의 농촌과 사회적 분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법제적인 측면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자유시민이 자치권을 행사하며 시정에 참여하는 특권 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도시를 방어하는 높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1330년 도시권한을 부여받은 이후 다름슈타트는 이러한 중세 도시의 특징을 나타내는 유적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Marktplatz, Rathaus, Stadtkirche 그리고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도시성벽 등이 다름슈타트의 중세 유적이자, 오늘날에도 그 쓰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1392년 조선이 건국되었으니, 1330년은 고려 말기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중세 다름슈타트로 들어간다.

Weißer Turm

루이젠광장(Luisenplatz)에서 Rheinstrasse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Ernst-Ludwigs-Platz가 보인다. Marktplatz와 Ernst-Ludwig-Str.가 만나는 지점으로 조그만 광장이다. 이 광장에 서 있는 탑이 바로 중세 시대 다름슈타트 도시 성벽의 망루 역할을 했던 Weißer Turm이다.

Weißer Turm은 다름슈타트 시 방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세워져 그 전략적 가치가 대단하였다. 성벽은 Stadtkirche와 Marktplatz와 주변 주택들을 감싸고 형태로 축조되었는데, Weißer Turm은 이들과 Marktplatz 건너편 영주의 대저택(궁전)을 연결하는 모서리에 위치하여, 성벽의 남쪽 면과 서쪽 면을 잘 감시할 수 있는 망루의 역할을 한 것이다.

1330년에서 1418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Weißer Turm은 화포의 급격한 발전으로 성벽이 도시 방어의 가치를 잃게 되자, 1704년 한 층을 더 올리고 둥근 지붕 형태의 종탑으로 재설계되어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Weißer Turm의 높이는 39.75m, 직경은 6m, 그리고 입구에서 종탑까지 125 개의 계단이 있다.

구 시청사(Altes Rathaus)

다름슈타트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쉼터로 사랑받는 Ratskeller가 자리 잡은 구 시청사는 1566년부터 1569년에 지어진 시청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원래는 1397년 지금의 시청과는 정 반대 위치인 시궁전(Trsidenzschloss)앞 오늘날 시장광장 초입에 건축되어졌으나(사료에는 Spielhus로 기록됨) 철거되고, 1566년 당시 영주였던 백작 루드비히 4세가 3년에 걸쳐 오늘날 구시청사 자리에 당시 유행이었던 석조를 기반으로 한 Fachwerkhaus 형태의 새로운 시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30년이 채 되지않은 1598년 오늘날의 모습인 완전 석조건물로 재건축되었다.

영주가 거주하는 시궁전(Trsidenzschloss)을 시장광장을 사이에 두고 당당하게 마주한 구 시청사의 위용은 당시 시민들에게는 큰 자부심이자 동시에 봉건영주와의 견제와 균형과정에서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이후 약간의 보수와 개축이 이루어진 구시청사는 1876년까지 다름슈타트 시 행정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급격히 증가하는 주민 수와, 대공국으로 격상된 다륨슈타트의 지위 등의 변화에 따라, 행정 기능이 분산되기 시작하였으며, 1885년 Rheinstr. 16에 Stadthaus가 지어짐에 따라 행정적 기능이 점차 감소되었다.

오늘날 구시청사는 Standesamt(결혼관장 관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장광장(Marktplatz)

시장광장(Marktktplatz)은 다름슈타트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13 세기 또는 14 세기에 영주의 거주지인 궁전(Residenzschloss)과 Stadtkirche 사이에 조성되었다. 1330년 도시 특권을 부여받은 뒤부터는 이 광장에서 시장이 열렸으며, 이로서 중세 도시 특유의 시장광장( Marktplatz)의 역할을 담당하며, 이후 수 백년동안 다름슈타트 도시와 인근 지역의 상업중심지와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본래 시장 감독은 시장이 수행하였으나, 광장의 역할이 다변화하고, 도시 주민 수의 증가에 따라 1566년부터 시장 감독관 직이 사료에 나타나고 있다.

중세유럽의 도시 광장은 시장으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이 광장들은 시장의 기능이나 종교시설의 광장으로, 또는 시청 앞 광장으로 도시의 중심적 공간을 형성하며 공공의 공간을 만들었다.

중세 도시의 시장은 신성로마 황제의 개시권(開市權)에 의해 특허를 받은 봉건영주의 보호하에 열리게 되었고, 황제나, 영주들은 시장세나 상품세를 징수하여 재정을 풍부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다음호에서 계속하여 중세 다름슈타트를 살펴본다.

1199호 30면,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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