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스루에 한인들의 한가위,
오두막에 피운 맛난 이야기꽃

칼스루에. 칼스루에 한인회(회장 백옥숙)가 주최한 한가위 야유회가 지난 14일 있었다. 추석이 하루 지난날이어서 들뜬 명절 기분에, 날씨 또한 청명하였다. 장소는 한인들의 야외행사가 주로 행해지는 팔츠주 하겐바흐 그릴 오두막에서였다.

입소문이나 이메일, 우편 등으로 모임을 알린 칼스루에 한인회는 숯불고기와 각종 김치류, 우리나라의 쌀로 지은 밥을 준비하고 예정대로 이날 정오부터 모임을 열어 오는 사람들을 맞았다.

“환절기여서 몹시 우려를 하며 준비했는데 다행히 좋은 날씨에 행사를 하게 되어 기쁘다”는 백옥숙 회장은 예의 붉은 앞치마를 걸치고 부지런히 부침을 굽고, 음식을 담을 접시를 든 사람들이 차려진 식탁으로 모여 들었다.

칼스루에 한인행사에는 독일 남부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한국의 문화와 맛을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날도 남독일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흑림(Schwarzwald)과 국경과 인접한 프랑스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왔고, 특히 칼스루에 한인회의 초석을 튼튼히 다진 바 있는 고 안명자씨의 직계 가족들 모두가 참석하여 숙연함을 더했다.

식탁에는 매콤새콤한 배추김치부터 무말랭이 김치, 물김치, 깻잎김치, 고추김치, 양파김치 등 보기만 하여도 침이 도는 김치들과 가지나물과 각종 산나물을 무친 나물들이 빼곡하게 차려졌는데, 이들 가운데는 이날의 인기를 독차지한 ‘김부각’도 있었다.

위에 뿌려진 통깨의 고소함과 비릿 짭쪼롬 바삭한 맛이 일품인 김부각은 엷게 쑨 찹쌀 풀을 바른 후 잘 말린 뒤에도 여러 과정을 더 거쳐야 완성되지만 정작 이 요리를 만들어 온 교민 박정애씨는 “쉬워요, 아주 쉽다니까….” 라고만 겸허하게 얼버무렸다.

얼룩진 검은 종이 같은 외형과 다르게 의외의 형언할 수 없는 훌륭한 맛에 우어젤(Ursel Morsch)씨도 놀라움을 표했다. 한국인 절친 덕분에 칼스루에 한인회 행사에 자주 참석해 왔다는 그는 우리의 한국음식은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건강하고 깊은 자연의 맛이라고 극찬하였다.

그런가 하면 접시에 김치류만 잔뜩 담아 온 금발의 15세 소녀 소피아(Sophia Sonnek)도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벌써 그립다고 한 그녀는 몇 주간 서울에서 단신 여행을 하고 일전에 귀국했다고 하였다.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K-Pop 이든 음식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훌륭하고 좋아 보인다고 하였다. 친척이나 지인이 없지만 앞으로 진로를 한국과 연관된 것으로 정할 예정이라며 일단 독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할 것과 유학을 한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쭈욱 사는 미래를 꿈꾼다고 하였다.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문화든 음식이든 다 훌륭하다고?

식사가 진행되는 중에 수시로 새로 오는 사람들이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부침은 연이어 부쳐졌고, 숯불고기는 쉼 없이 구워졌다. 먼저 식사를 시작한 사람들은 가볍게 산책을 떠나기도 하였고 잔디밭에는 이제 막 걸음을 배우는 어린 아가들이 몇 걸음씩 떼는 연습을 하여 빙 둘러선 어른들은 아이가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였다.

잔디밭 가장자리 큰 공터에선 몇몇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팔을 쭉쭉 뻗어 배구공 놀이를 하였는데,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도 수시로 가세하며 노익장을 과시해 보였다.

여러 무리를 지어 앉아 대화의 장도 펼쳤다. 주제와 소재는 따로 정해진 것이 없이 수시로 바뀌었는데 독일의 정당과 난민정치에 대해서 신랄하게 의견이 오갈 땐 주로 독일인들이 어조를 높였고 세계의 환경이나 기후 정책에 대해서는 출신국의 구분 없이 걱정의 말을 쏟았다.

토론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우리나라의 시사와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갈 때는 특히 좌중이 모아졌다. 어떤 원로는 우리나라 야당 여성 정치인들이 삭발을 한 데 대해 이발기로 머리를 미는 시늉을 해보여서 더욱 실감이 났고, 그 이전에 이뤄진 한국 대통령의 어느 특정 장관의 임명을 두고 갑론을박을 서슴지 않았다.

아주 먼 고국의 소식임에도 마치 이웃 도시에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사람들은 믿기지 않을만큼 빠르고 생생하게 알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그 비결을 물으니 한 교민은 ‘유투브와 카톡 덕분’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고, 몇몇 사람들은 ‘교포신문을 통해 독일에 사는 교민으로서 생각을 정리한다’고 하여 눈길을 끌었다.

햇살이 깊이 내려앉아 긴팔 겉옷을 찾아 입을 무렵, 후식과 케잌들이 있던 자리에 얼큰한 즉석 된장국이 나왔다. 우리 음식으로 원없이 식사를 했지만 된장국은 또 반가웠다. 밥을 한 술 말아서 후루룩 떠먹는 중에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귀울이고 애틋하거나 유쾌한 입담에 때론 눈물이 나도록 양껏 웃었다.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에게 다 먹지 못했거나 따로 담아두었던 음식들을 나누었다. 건강히 잘 살다가 다시 만나자며 인사하고 서로 포옹하며 헤어지는데, 작별이 아쉬운 나머지 걸음을 떼다 말고, 타고 온 차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잇고 또 이어갔다.

임원들이 솔선한 행사정리가 어느 정도 이뤄졌을 때 칼스루에 한인회 회장 백옥숙씨가 중심이 된 즉석 임원회의가 열렸다.

먼저 이날 행사 마무리 지으며 수고하고 준비한 임원들을 향해 백회장이 격려의 말을 하자 만족스러운 자평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어 몇달 후인 오는 12월에 치를 송년회로 주제를 옮겨 아시 여러 다양한 의견교환을 하였다. 행사를 갓 끝낸 마당에 다음 행사를 걱정을 하다니……..

가을 석양의 성숙한 햇살이 오두막에 들 때 칼스루에 한인회원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는 한인회 미래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지금까지 굳건히 버텨준 한인회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론이었는데, 자원봉사에 가까운 헌신을 수 년 동안 해온 나이 든 임원들의 염려가 애틋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영수기자 karlsruhe-lee@hanmail.net

2019년 9월 20일, 113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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