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살면서 (11)

황만섭

니다(Nidda) 강을 산책하다

오늘(2021년 3월 7일)은 느긋하게 니다 강가산책을 하기로 행선지를 정하고 집을 나섰다. 니다 강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관통해서 마인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샛강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통과하는 니다 강의 절반쯤 되는 헤덴하임에서 산책을 시작해 강 위쪽에 있는 소도시 바드 빌벨까지 걷기로 하고 돌아올 때는 전차와 시내버스를 이용해 귀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산책 때는 헤덴하임에서 니다 강을 따라 강 아래쪽의 절반을 걸어 마인 (핵스트)강이 나올 때까지 걷는 코스를 걷기로 했다. 오늘 걷는 니다 강 위쪽방향의 코스는 전에도 한두 번 걸어 본 코스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 동안 강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져 있었다. 강변양쪽의 잔디도 깔끔했고 나무들도 손질이 잘 되어 있었으며 강물도 예전보다는 훨씬 더 깨끗해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햇살이 등을 따뜻하게 비쳐주는 게 기분만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으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각자 자신들의 건강과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들이 편안해 보인다. 니다 강 산책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약속시간을 잡아 동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나 자신이 여행을 좋아해서 여러 나라 많은 곳을 여행했고 거기에다 여행사까지 직접 경영하면서 가이드를 했으니 여행한 나라와 횟수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행했던 여러 아름다운 기억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지금 하고 있는 니다 강가의 산책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이렇게 그림 같은 농경지가 있고 시골풍경이 어우러진 들판을 보며 걷는다는 것은 분명 행복에 속하는 일이다. 풍요롭게 펼쳐지는 경치가 환상적이다. 우린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집(새들의 둥지)

지난번에 건너편 집 정원의 한 나무에 한 쌍의 새가 집을 짓고 있는 광경을 여러 생각과 함께 나의 기쁨을 담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기쁨은 며칠로 끝나고 말았다. 집짓기가 끝나자 어찌된 영문인지 새들의 방문 햇수가 차차 줄어들더니 지금은 아예 새들의 발길이 끊긴 상태다.

어찌된 일일까? 혹시 그들 사이에 불화가 생긴 건 아닐까? 아니면 성격차이로 이혼수속을 밟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강남이나 평창동에 있는 집이 훨씬 더 좋다며 그쪽으로 거처를 바꾸었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새집을 지나치는 여러 종류의 다른 새들은 비어있는 새 집을 보면서도 아무런 욕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못 보아서인지 그냥 지나치기만 한다. 이제 새들의 둥지를 지을 때에 그들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던 나의 기쁨은 걱정과 쓸쓸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사람이 살지 않고 빈집으로 놔두면 금방 거미줄이 쳐지고 폐가가 된다. 새들의 둥지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허전하기까지 했다. 이제 새들의 집은 주인이 없는 빈 둥지로 덜렁 나무 위에 걸려있고 그런 빈집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따라서 찬바람이 일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5월이라서 나무 잎이 무성해 새들의 둥지가 나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하루

요사이 내가 살아 숨 쉬는 하루 하루가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한편으로는 어렸을 적 들었던 옛 어른들의 노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는 청춘 못 붙잡고, 오는 백발 못 막는다”는 내용이다. 그렇다. 어차피 못 붙들 청춘이고 못 막을 백발이라면 아예 기꺼이 보내주고, 기꺼이 맞이하기로 맘먹었다.

그런 결론을 내리자 한없이 편안해지고 매일매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사는 하루가 마치 내 일생의 전부인 것처럼 아껴가면서 산다. 그러자 하루는 마치 일주일처럼 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금년 일 년을 살면 7년을 더 사는 것과 같은 계산이 나온다. 이거 대단한 이익을 남기는 장사다.

독자들은 황 키호테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서론을 길게 늘어놓을까 궁금할 것이다. 돈 키오테나 황 키호테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모든 것을 착각하면서 편리한대로 생각하면 된다. 그 착각이란 세상만사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는 착각을 말한다. 아전인수 하고 비슷하다. “늙어가면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대답은 “나에게 아직 병마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병마는 언젠가 찾아오겠지만 다행이 아직은 무소식이다. 나는 그 동안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병마가 오는 걸 얼마간이라도 늦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토요일은(2021년 4월 17일) 놀랍게도 산책 중 넓디넓은 ‘산 마늘’ 서식지를 발견했다 “왠 횡재냐”며 반가워했고 원하는 만큼 채취했다. 그러고도 못 잊어 며칠 뒤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산 마늘에서 나는 냄새 걱정은 뒷일이다. “우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나는 독일에 온지 50년이 넘었고 독일생활 초창기 때 마늘을 겁 없이 먹고 심한 마늘냄새로 독일 사람들을 괴롭힌 경험이 있다. 그 일이 두고두고 독일 사람들에게 미안해 지금까지 아예 마늘을 멀리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노년기라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적고 더군다나 코로나 때문에 모임과 외출도 자유롭지 않는 상태라서 냄새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산 마늘 먹기엔 딱 좋은 시절인 것 같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하루에도 수만 개의 세포가 죽어가면서 모든 기능이 쇠퇴되어 가고 있으며 병마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다가 저러다가 결국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게 될 거라는 사실도 확실하다.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이다. 슬퍼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 주어진 시간들을 감사하면서 마지막 남은 시간들을 즐기는 것뿐이다. 무하마드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며 권투를 즐겼지만, 나는 삶을 꽃처럼 살다가 유성처럼 사라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1224호 22면, 2021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