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관하여

손병원

대한민국은 단기 4281년 (서기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우리 민주공화국의 자랑스러운 국호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조선이 Coree, 스페인, 포르투칼 상인들에 의해 Corea로 불러지다가 1900년도 초부터 영어권에서 Korea로 불렀다.

코리아의 어원은 고구려 장수왕이 국호를 고려로 변경한 적 있으나 왕건의 고려이다. 조선조 말기 고종 30년 (서기 1897년) 8월 16일 왕의 호칭을 황제로 하고 국호를 개정하니 대한제국이었다. 제국(帝國)이란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이거나 타 민족이나 국가를 지배하는 뜻이다.

내가 대한(大韓)이란 용어를 알게 된 것 중에는 정약용이 지은 대한 강역고(大韓疆域考)가 있는데 이 책은 역대 우리나라의 강역을 고증한 지리서이며 그의 문집 여유당 집의 일부이다.

지방행정구역의 단위인 도(道)는 큰 길 따라 정해져서 함경도는 함흥 경성의 준말이고 평안도-평양, 안주; 황해도–황주, 해주; 강원도–;충청도–충주, 청주; 경상도–; 전라도–전주, 나주; 해방 전까지 제주도는 전남의 군(郡) 소재지였다. 경기도는 수도권을 뜻한다.

산과 강 이름에는 역사가 묻어 있다. 독일(獨逸)은 일본이 쓰다 버린 용어인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독일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덕국(德國)으로 부르며 일본은 2차 대전 후 ‘도이취’라 부른다. 35년간 일제강점기의 영향 탓에 오랫동안 남자이름은 랑(郞), 여자는 자(子)가 끝에 붙었다. 이는 욕하며 따라 가는 격이다.

지금이야 한글로 이름 지어져 한자 표기가 없는 것이 허다하다. 너무 튀다 보니 이름인지 만화의 주인공 이름인지 거북스러운 게 많다. 남자 이름보다 여자 이름이 너무 요란하다.

주민등록증에 실린 사례로 보는 긴 이름에서 1위가 22자인데 “박하나님의자녀예쁘고진실되고이해심많게자라라.” 2위는 17자인데 “박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로우리.” 3위는 14자인데 “황금독수리온세상을 놀라게하다.”천식환자는 몇 번이나 기침해야 저 이름을 다 부를까?

나에게 보물 같다는 여보(如寶). 내 몸 같다는 당신 (當身)을 놔두고 새내기 아내는 남편을 자기, 오빠라 부른다. 어느 축구선수는 공 넣는 대로 아이 이름을 지어 하나, 두리 세치로 간다. 어느 연예인은 세 아들 이름이 대한, 민국, 만세이다. 건축학과 교수 이름이 노동이고 국어 선생 이름이 수학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잠자는 가수는 이미자 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성과 이름을 귀하게 여겨 이름을 묻지 않고 존함, 함자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함자는 산 사람의 이름을 높혀 부르는 말이다.

남편기준으로 불리는 촌수 중에 헷갈리는 호칭은 여동생의 남편은 매제, 매부. 아내의 오빠는 형님, 그의 아내는 아주머니라 부르고 아내의 여동생은 처제. 처제의 남편은 동서이다. 아내 기준으로 불리는 촌수에는 오빠의 아내를 올케. 남동생의 아내도 올케이며 여동생의 남편은 제부. 남편 형은 아주버님. 남편의 남동생은 서방님, 도련님. 여동생은 아가씨이며 아가씨의 남편은 시 매부, 서방님으로 부른다. 본가의 호칭에서 당숙은 아버지의 사촌 형제이며 외가의 호칭에서 이종(이종사촌)은 이모 자식들이다. 남편의 삼촌들은 (남편 아버지의 형제들) 시숙이라 부른다. 결혼하지 않은 시숙은 도련님이다. 이젠 호적이 없어졌지만 촌수를 부르는 호칭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기독교(基督敎)의 명칭은 중국 한자에서 차용되었다. 중국은 그리스트를 기리사독(基利斯督)이라 표기하는데 이를 줄여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라 한다. 천주교인이든 개신교인이든 그리스트를 믿으면 기독교인인데 많은 이들은 개신교를 기독교라 함은 큰 잘못이다.

천주교회에서는 하느님이요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다. 조선조 말기부터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은 여호와를 조선인들에게 쉽고 친근감 있게 접근시키기 위해 조선인들의 수 많은 신을 아울러 절대자는 하나라며 하나님으로 불렀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상제신(上帝神)라 표기한다.

천주교의 세례명은 그렇다 해도 개신교인들의 이름이 성경상의 인물을 따라 정하는 것은 갓 쓰고 양복 입은 꼴 같다. 성씨까지 바꾼다면 몸은 국산품이요 정신세계는 국적 불명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말이니 내 몸을 교회로 삼고 말씀에 매일 다가가는 자세가 참 신앙인이 아닐까 여겨진다.

서양인들의 성씨는 대개 조상들의 직업명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소위 선진국에는 여성이 결혼하면 성씨가 남편성씨로 바뀌는 게 보통인데 꼭 그렇지도 않다. 메르켈 독일총리는 재혼했지만 전 남편 성씨를 따른다. 서양사상은 기독교 영향권인데 어찌 남녀평등을 외치며 남편에 예속된 꼴이 되는지 바람직하지 못한 관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이 재혼하면 데리고 온 아이들 성씨가 새 아버지 성으로 바뀌는 예가 많다. 영어권은 남녀 성별 구분을 그 많은 단어가운데 sex로 물으니 한 단어의 뜻이 많아서 그렇다.

도자기를 “born china”라 말한다. Born은 무소 뿔 가루로 섞어 만든, 도자기의 일반명사 china 와 합성된 말인데 중국산으로 착각한다. 착각 중에는 나중에 이름으로 정해진 예가 있다.

호주에 첫 발을 디딘 제임스 쿡 선장 일행이 배에 주머니가 달린 저 동물의 이름이 뭐냐고 원주민들에게 물으니 캥거루라는 말을 듣고 캥거루인 줄 알았지만 원주민의 말은 “당신이 하는 말 (뜻)을 모르겠다”였다. 동식물의 성(性)은 류(類) 과(科)이며 몸체는 이름이다.

세상만물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분야별 능력 있는 선조들이 이름을 지어줬다. 나와 상관없는 세상만물이라도 알아 둘 건 알아 둬야한다. 안목을 키우는 바탕이 된다. 우리 전통문화의 핵심은 효사상의 관념문화이다. 고유 언어 는 신앙이자 얼이며 중국의 효사상(유교)은 규범이다.

기독교인은 제사를 안 지내지만 추도식이라는 형태로 고인을 기린다. 제문읽기나 사도신경 읊조리기나 심층 심리는 대동소이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그래, 함께 사는 세상이다. 오늘따라 마인강변의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1228호 19면, 2021년 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