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 ‘문학 한류’ 바람 분다
…한강·김언수 인기

2019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 주빈국 ‘한국관’에 관람객 몰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지난 9월 28일 ‘2019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이 열린 스웨덴 예테보리 전시·회의센터의 한 대형홀에 작가 한강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울렸다. 한강은 관람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도서전 세미나에서 소설 <흰>의 일부를 낭송했다. 375석 규모의 홀을 가득 채운 관람객은 숨죽이고 작가의 낭송에 귀를 기울였다.

행사에 참석한 관객들은 세미나 후 긴 줄을 지어 한강의 사인을 받았다. 스웨덴 독자 케이 닐손은 “한강의 모든 작품이 가슴에 와 닿는다”며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K팝은 스웨덴에서 큰 인기인데, 문학은 특성상 한계가 있지만 더 많은 한국 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26일부터 9월 29일까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이번 도서전은 유럽에서 확산되는 ‘문학 한류’를 실감케 하는 자리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올해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고, 유럽에서 발을 넓히고 있는 한국 문학을 이해하고자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했다.

예테보리국제도서전이 막을 올린 9월 26일) 주빈국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세계 문학의 장 속에서 한국문학이 오늘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며 “근현대사의 고통과 영광 속에서 한국 문학이 확보한 독특한 활력과 역동성을 스웨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의욕을 가지고 왔다”고 도서전 참가 의의를 밝혔다.

그는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에 대해 “한국은 지난 100년간 세계가 겪은 모순과 갈등을 온몸으로 뒤집어쓰고 치러왔다”며 “그 과정에서 때로는 남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고 놀라운 경제적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신선한 역동성과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며 BTS에 대한 열렬한 관심, 한국어 학습 열기,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 고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행사 기간 주빈국관에서 ‘국가폭력과 문학’(현기영), ‘사회역사적 트라우마’(한강·진은영), ‘난민과 휴머니즘’(조해진), ‘젠더와 노동문제’(김금희·김숨), ‘정보기술(IT) 시대의 문학’(김언수), ‘시간의 공동체’(김행숙·신용목) 등을 주제로 한 세미나와 작가 행사, 전시 등을 열었다. 이벤트홀에서는 현기영, 김행숙, 진은영, 한강, 김언수, 김숨, 신용목, 조해진, 김금희 작가를 비롯해 김지은, 이수지, 이명애 그림책 작가, 건축가 함성호 등 17명이 자신의 저서를 소개하며 관객과 만났다.

한국이 주최한 각종 세미나와 행사에는 평균 60유로 정도의 입장료에도 한국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는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난해 스웨덴에서 번역·출간된 한국형 범죄스릴러 장편소설 <설계자들>의 작가 김언수를 향한 관심도 남달랐다. 김 작가가 연 세미나는 스웨덴 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설계자들>은 스웨덴을 비롯한 세계 24개국에서 번역·출간됐다. 현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설계자들>이 스릴러 강국 스웨덴을 비롯해 유럽에서 인기를 모으는 것에 대해 “문화 국력이 세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프랑스에 갔을 때 ‘방탄소년단(BTS)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니 젊은 여성들이 내 책을 사가더라”며 “책이란 한 나라의 문화를 파는 것인데 한국 문화 브랜드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K팝 등의 인기로 특정 발화점을 넘어서면서 문학 작품도 팔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방탄소년단의 신드롬급 인기, 한국어 학습에 대한 세계적인 열기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오늘날 한국문학을 이루고 있는 의식의 폭과 깊이, 수준이 세계적인 보편성이라고 할 만한 지점에 도달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한국문학 작품을 출판하겠다고 먼저 지원하는 해외 출판사가 5년 새 10배 이상 늘었다”며 “한국문학이 상승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런 상승세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가들은 도서전 개막에 앞서 지난 20~24일 스톡홀름에서 작가와의 만남, 스톡홀름대 한국문학행사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며 한국문학을 알렸다.

스웨덴 문예지 ’10TAL’은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해 김혜순, 배수아, 조남주의 작품을 비롯해 한국의 시, 소설, 에세이, 미술작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실었다.

이번 도서전 참가 작가들 가운데에도 김행숙, 신용목, 김금희 등의 작품이 실렸다.

김행숙 시인은 “스웨덴에 와서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고, 이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며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세계라는 장에서 한국, 한국인성이 아니라 인간, 인간성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소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금희는 “스웨덴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하다고 들었는데 현지 독자들은 한국의 미투 운동은 어떤 변화를 낳았는지도 궁금해했다”며 “세계의 중요한 흐름과 한국 문단의 중요한 흐름이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스웨덴에는 1976년 김지하의 ‘오적’을 시작으로 김소월, 이문열, 황석영, 문정희, 황선미, 김영하, 한강, 김언수 등 작가들의 작품 33종이 출간됐다.

2019년 10월 10일, 1142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