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운 바로크 여왕: 파사우(Passau)

세 개의 강이 합쳐지는 곳에 만들어진 “물의 도시” 파사우(Passau). 독일을 대표하는 석학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는 이 도시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7대 도시 중 하나”라고 하였다.

고요히 흐르는 강폭에 싸여 대성당(Dom St.Stephan)과 구 시청사(Altes Rathaus) 등의 높은 첨탑이 솟아있는 그림 같은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평가에 충분히 납득된다.

강 건너 동쪽이 바로 오스트리아 영토. 즉, 파사우는 국경도시이기도 하다. 잘츠부르크(Salzburg)와 함께 독일과 오스트리아 두 나라를 오가는 열차가 지나치는 대표적인 관문이지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아직 한국에는 널리 소개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 못지않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 시가지를 보유하고 있어 유럽에서는 이미 관광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특히 파사우에 흐르는 세 개의 강 중 가장 큰 도나우 강(Donau River)을 통해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등 바이에른 지역과 오스트리아를 연결하는 유람선이 많이 다닌다.

도나우강, 인강, 일츠강의 합류 지점인 3대 강의 도시 파사우는 예술과 건축물, 맛있는 음식과 축제, 산책,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도시이다. 그림 같은 골목, 아름다운 광장 그리고 멋스러운 구시가지는 편안하게 바로크의 건축물들을 즐길 수 있다.

북쪽에 있는 베스테 오버하우스 성과 남쪽의 마리아 힐프 발파르트 교회, 서쪽의 이탈리아 건축 양식의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는 파사우는 후작 궁정 도시와 활발한 상업 도시로서 예술가들에게는 그들의 예술을 꽃피우기에 이상적인 도시였다.

파사우 대성당은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건립되었으며, 1928년 설치된 오르간은 1994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파사우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빈의 대성당(Dom St.Stephan)의 모교회로서 중세시대에는 오스트리아 빈은 파사우 교구에 속해있었다.

구시가지에는 수도원, 요새, 주교 관사 등 중세의 오래된 건물이 많다. 1662년과 1680년의 화재로 도시의 많은 지역이 소실되었지만 복구와 재건축으로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게 꾸며져 화려함을 되살려 냈다.

파사우는 역사 깊은 도시로 고대 로마 시절부터 도나우강의 요충지였다. 8세기 설치된 교구는 한때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교구였다. 1217년 파사우 주교령이 형성돼 19세기 초까지 통치했다. 1552년 파사우 조약은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회의를 이끌어낸 의미 있는 조약이었다. 1803년 주교 통치가 종료되어 바이에른 왕국과 잘츠부르크에 나누어 귀속되었다가, 1805년 완전히 바이에른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는 바이에른주 동남부의 산업, 행정, 문화 중심지로, 도나우강 연안 항구로서 큰 역할을 하며 독일 도나우강 최하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전통이 곧 현재이며 현재는 전통을 품고 있는 도시

파사우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구시가지에서 멋진 상점이 늘어서 있는 ‘노이에 미테(새로운 중심)’까지 걷다 보면 역사를 간직한 현대적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건물은 전통적인 분위기로 예스러움이 넘치고 그 안에는 현대의 흥미로운 종합 예술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휠 거리는 개성과 특색 있는 아틀리에를 거쳐 작업장, 갤러리, 부티크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더구나 국경 도시의 매력이 도드라진다. 오스트리아 민속 의상 상점과 체코 보헤미안 유리가게, 헝가리식 레스토랑 등 여러 문화가 작은 골목길마다 어우러져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걸어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매력적이다. 흐르는 시간이 멈춘 듯,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파사우의 역사

파사우는 고대 로마 시절부터 도나우 강의 요충지였다. 8세기에 교구가 설정되었고, 한때 파사우 교구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가장 큰 교구였다. 1217년 파사우 주교령이 형성되어 19세기 초까지 이 곳을 통치하였다. 1552년 이 곳에서 체결된 파사우 조약은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이끌어낸 의미있는 조약이다. 그 후 파사우는 졸링겐 다음가는 무기와 칼 제조지로 알려졌다. 1803년 주교 통치가 종료되어 바이에른 왕국과 잘츠부르크에 나누어 귀속되었다가, 1805년 완전히 바이에른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 파사우 대학교(Universität Passau)는 독일 바이에른주 파사우에 있는 대학교이다. 1978년 10월 9일에 문을 열어 바이에른에서 가장 젊은 대학이지만, 대학의 기원은 162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에 레오폴트 5세에 의해서 1612년에 설립된 김나지움에 대학교육기관이 병설되었다. 1803년에는 리체움(Lyzeum)이 설립되어 1923년에 철학신학대학으로 바뀌었다. 1978년 8월 1일, 파사우의 이 대학을 파사우 대학교의 가톨릭신학학부로 편입시키는 법안이 발효되었다. 1978년 겨울학기부터 학생들이 여기서 배울 수 있게 되었다.(편집실)

사진:

1. Passau

2. Passau 구시가지

3. Passau Dom (St.Stephan)

2020년 1월 24일, 1155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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