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기억해야 할 인물(2)

탄생 250년 주년 맞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독일 근대철학의 최고봉이자 변증법 철학자 헤겔(8월 27일)과 고전파 음악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악성(樂聖) 베토벤(12월 17일)이 2020년 나란히 탄생 250주년을 맞는다. 헤겔 앞에 칸트가 있었다면 베토벤 앞에는 모차르트가 있었다. 이 둘은 칸트와 모차르트라는 찬란한 성취를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으로 각각 철학사와 음악사에서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했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건과 인물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이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헤겔은 1806년 나폴레옹을 보고 “세계정신을 봤다”고 했으며 매년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날이 되면 와인으로 자축했다. 베토벤이 가장 아꼈던 3번 교향곡은 원래 나폴레옹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이었으나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 ‘에로이카(영웅)’로 제목을 바꿨다.

악성(樂聖) 베토벤

궁정 테너 가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처음부터 천재 음악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지독한 노력 끝에 성공한 음악가가 됐다. 그가 꿨던 ‘갈망의 두드림’은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후예가 되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신동과 같은 천재성이 없었기 때문에 인정받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13살에 자신이 꿈꿨던 대로 ‘제2의 모차르트’라는 칭호를 얻었다. 베토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큰 ‘갈망’에 도전한다. 25살 때에 더 큰 꿈과 갈망을 다음과 같이 수첩에 적는다.

“육신은 아무리 나약할지라도

나의 정신은 꼭 이기고야 말리라.

나도 이제는 25살이다.

인간으로서의 전 역량을

드러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6살 때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해 30살이 되기도 전에 완전히 청력을 잃게 된다. 최고의 음악가를 꿈꾸는 베토벤에게 청력 상실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음악 인생이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아무에 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청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베토벤 은 유서까지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또다시 갖 장애를 딛고 우뚝 일어섰다.

〈영웅〉, 〈운명〉, 〈전원〉 교향곡에 이어 인류 최고의 예술작품 이라는 교향곡 9번 〈합창〉을 완성해냈다.

이러한 위대한 ‘도전’을 통해 베토벤은 음악의 성인이란 뜻 이 담긴 ‘악성’ 칭호를 얻었다.

역경을 딛고 ‘도전’을 완성한 기적의 결과물이다.

베토벤은 이처럼 ‘갈망과 도전’으로 평생 처절한 운명과 맞서 싸웠다. 아버지의 학대, 청력 상실이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다.

노력형 음악가 베토벤의 갈망과 끊임없는 도전은 그를 ‘위대한 음악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827년 3월 26일 그가 조용히 숨을 거두자 슈베르트, 체르니 등을 포함해 2만여 명의 인파가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며 관을 따랐다.

음악

그의 작품은 양식변천에 따라 다음 4기로 구분한다. 그 자신이 작품번호를 붙인 빈 시절의 양식변천은 9곡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소나타, 16곡의 현악 4 중주곡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교향곡에서는 홀수번호와 짝수번호의 작품이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처럼, 독일적 음악과 오스트리아적 음악이 혼재해 있는 것도 그의 음악의 특징이다. 그리고 WO라는 번호는 G.L. 킨스키와 A. 할름이 1955년에 《베토벤작품목록》을 편찬할 때 베토벤 자신의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곡에 붙인 번호이다.

(1) 본 시절(1782∼92)

본에서 접촉하고 배운 여러 가지 양식을 짙게 반영한 학습시절이다. 건반악기를 위한 3개의 선제후(選帝侯)소나타(W O47, 1783)는 C.P.E. 바흐와 만하임악파의 영향과 함께 그의 독자성도 나타나 있다.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찬미는 3개의 클라비어 4 중주곡(W O36, 1785)에 나타나 있다.

(2) 빈 초기(1793∼1802)

개인교수에 의한 대위법 학습으로 시작되는 이 시기는 고전파 기악양식을 습득·발전·실험함으로써 그의 독자적 양식이 차츰 선명하게 나타난 시절이다. 《피아노 3 중주곡집(작품1, 1794∼95)》과 《피아노 소나타집(작품2, 1793∼95)》에서 4악장 구성, 소나타형식의 확대, 스케르초 사용 등, 베토벤의 새로운 면이 나타나 있다. 《현악4중주곡집(작품18, 1798∼1800)》에서는 대위법적 수법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있다. 그 밖에 교향곡 제 1 번과 제 2 번, 피아노소나타 《비창》, 피아노협주곡 제 1 번과 제 2 번이 이 시기에 속한다.

(3) 빈 중기(1803∼12)

그가 쌓아올린 극히 논리적 형식 속에서 감정의 흐름을 극적으로 전개하는 새로운 양식에 의하여 이 시기에 걸작이 속출되었다. 교향곡 제 3 번 《영웅》부터 제 6 번 《전원》에 이르는 4곡의 교향곡, 《코리올란서곡》, 피아노협주곡 제 4 번, 바이올린협주곡, 《라주모프스키현악 4 중주곡집》, 오페라 《피델리오》 등이 1808년까지 탄생되었다. 1809년 이후, 구축적인 주제의 전개를 중심으로 한 양식에서, 피아노 3 중주곡 《대공(작품97, 1810∼11)》에서 보여준 것처럼 선율적 주제에 의한 서정적 양식으로 변해갔다. 한편 교향곡 제 7 번(작품92, 1811∼12)과 제 8 번(작품93, 1812)에서는 리듬이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4) 빈 후기(1813∼26)

작품의 침체기가 되는 1813년부터 16년까지의 시기는 가곡집 《멀리있는 애인에게(작품98, 1815∼16)》를 비롯하여 기악작품에서도 낭만파적 색채가 강해지는데, 17년에 착수한 피아노소나타 《하머클라비어(작품106, 1818년 완성)》를 출발점으로 다시 거대한 형식으로 되돌아가 후기양식의 정상으로 올라선다.

후기양식의 뚜렷한 특색은 푸가로 대표되는 대위법적 수법 및 변주기법을 중요시한 것이며, 시대를 초월한 다채로운 울림의 세계를 창조해갔다. 성악과 기악이 일체화된 《장엄미사곡》과 교향곡 제 9 번, 피아노소나타(작품106, 109, 110, 111) 4곡과 《디아벨리변주곡》, 현악 4 중주곡(작품127, 130, 131, 132, 135)의 5곡과 대(大)푸가는 바로크시대부터 최성기 고전파에 이르는 음악을 베토벤이 총결산한 작품으로서 주목된다.

2020년 1월 24일, 1155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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