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기억해야 할 인물 (5)

타계 100주기 맞는 막스베버

막스 베버는 1864년 4월 21일 독일의 튀링겐(Thuringia)의 에르푸르트(Erfurt)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베버의 부친(Max Weber, Sr.)은 정치가였으며 어머니는(Helene Fallenstein Weber)은 청교도신앙이 독실한 진보적 여성이었으며 부유한 공직자의 딸이었다. 베버의 할아버지는 그 지방의 명망 있는 부호로서 방직공장을 경영하였으며 이러한 집안의 부유함이 후에 베버로 하여금 돈 걱정 없이 여러 부문의 학문과 저작활동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베버는 어린시절부터 책읽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이나 흥미를 끄는 대상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파고드는 편집증적 집착을 보였다. 어린 베버는 당시 대학교수였던 이모부 바움가르텐을 누구보다 따랐고 그에게서 많은 지적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지적 영향과 베버의 편집증적 독서로 소년 베버의 지식수준은 어른들이 놀랄만한 수준에 달하였으며 이미 13세에 󰡒황제와 법왕의 지위를 고려한 독일사의 생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집필하였다고 전해진다.

마르크스에 맞서는 대항마, 막스 베버(Max Weber)

막스 베버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흘렀다. 베버의 사후, 그의 학문에 대한 후학들의 관심도 부침을 겪었다. 한때 ‘하이델베르크 신화’의 중심에 있었던 베버도 1920년 그의 죽음과 더불어 독일 학계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자 파슨즈(Talgott Parsons)가 1920년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할 때 그의 저작들을 알아보고 미국 학계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2차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베버에 대한 서구 학계의 관심은 산발적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냉전은 베버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미군정 치하에서 위축돼 있었던 독일 학자들에게 베버는 미국 학계가 인정해준 인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냉전체제가 강화되면서 현실 사회주의 블록을 이론적으로 대표하는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대항마가 필요했는데, 그 자격요건을 두루 갖춘 고전적 인물들 중 하나가 베버였다. 이런 이유에서 한동안 ‘나토 베버(NATO Weber)’라는 별칭이 유행하기도 했다.

마스베버는 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과 함께 근대 사회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며 나아가 현대 사회과학 전반에 대한 방법론적 토대를 구축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사회, 경제, 종교,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방대한 저작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첫손으로 꼽히는 저서가 바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자본주의의 기원이 무엇인지 설명해낸 저작이기 때문에 고전으로 불릴 수 있다.. 특히 보다 앞선 시기에 마르크스도 유물사관을 기초로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지만, 베버는 이와 달리 비교문명적 시각에 근거해 정신문화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기원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물질적, 경제적 조건이 의식이나 사회제도를 규정한다고 전제했으며 인간이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부르주아 계급,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분화된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또 그는 인류의 역사가 단선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하며 생산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도래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버는 마르크스의 이런 법칙정립적 이론을 거부하며 각 문명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정신문화를 토대로 자본주의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즉, 유물론과 대비되는 관념론적으로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한 베버는 이를 위해 세계의 여러 문명권과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와의 함수관계를 주목했다. 우선 베버는 여러 문명권 중 유독 서유럽 문명권에서만 ‘합리적 자본주의’가 자연적으로 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맹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억압, 약탈까지도 불사하는 ‘모험가적 자본주의’와 달리 합리적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일터를 선택할 수 있는 훈련된 노동자, 정기적 시장에 맞춰진 합리적인 산업조직의 존재를 특징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모험가적 자본주의는 대다수의 문명권에서 존재했지만, 합리적 자본주의는 오직 서유럽에서만 자생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베버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다른 문명권과는 달리 서유럽 문명권에서만 종교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신봉했다는 사실이다. 베버는 젊은 시절 인도에 다녀온 이후로 종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으며 유대교, 힌두교, 불교, 유교 등 많은 종교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베버는 이처럼 여러 종교를 연구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칼뱅주의가 다른 종교 사상과 달리 부의 추구를 정당화한다는 점을 포착해냈다. 칼뱅주의는 인간의 운명은 태초부터 정해져 있으며 직업 노동과 부의 추구를 신의 섭리로 받아들일 때 구원이 가능하다는 예정설을 포함한다. 즉, 특정 직업의 효용성과 이윤 획득이 신의 섭리로서 해석되기 때문에 부의 추구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뿐 아니라 종교 행위로까지 그 의미가 격상된다.

이런 프로테스탄티즘은 서유럽에서 합리적 자본주의가 잉태할 수 있는 필요조건들을 충족시켜 나갔다. 다시 말해, 이는 직업 노동을 강조함으로써 전문직업을 정당화하고 부의 추구를 정당화함으로써 근대적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를 구축했다. 나아가 베버는 이를 통해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자본주의 정신’이 발현됐다고 말한다.

베버의 사상을 따르면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도 상업과 무역이 번성함으로써 자본주의로 진행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갖춰졌지만, 이들이 합리적 자본주의 단계로 도달하지 못한 원인으로써 힌두교, 불교, 유교와 관련된 정신문화를 지목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적용된 비교문명적 방법론은 베버 이후 대다수의 사회과학도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서 『국가와 사회혁명』을 저술한 테다 스카치폴,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의 베링턴 무어, 『현대 사상의 스펙트럼』의 페리 앤더슨 등이 있다.

베버는 자신을 사회학자에 한정하지 않았으며 “처음 대학교수가 될 때 사회학자로 발령받았기 때문에 사회학자가 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 즉, 베버는 경제학, 정치학, 법학, 종교학 모두에 능통했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에 학자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았던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빛났던 통찰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편집실)

2020년 2월 14일, 1158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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