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광장 (3)
스페인광장(Piazza di Spagna)

비아데이 콘도티(Via dei condotti)거리에서 바라본 스페인 광장. - 언제나 배낭 여행족들로 분비는 이곳은 이미 250여 년 전부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의 한 부분이었다.

<로마>를 생각하면서 흔히 떠올리는 추억의 명화가 있다면 첫 번째가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이 아닌가 싶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마의 휴일>을 생각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을 꼽으라면 촘촘히 언덕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배경으로 오드리 헵번의 본 젤라또 (이탈리아식의 소프트 아이스크림)먹는 모습을 첫 번째로 떠올리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50 여 년 지난 이 영화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선하게 느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영화가 우리 기억과 상상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로마의 제일 중심거리 비아 델 코르소(Via del Corso)에 연결된 패션중심지의 화려한 거리 비아 데이 콘도티(Via dei Condotti),또 그 끝에 위치하며 계단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의 분수와 계단은 미술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250여 년 전부터 여행객의 종합휴식처

지금도 로마를 가기위한 웬만한 여행상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코스인 스페인 광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남유럽을 여행하는 북유럽사람들이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 한번은 거쳐 가는 경유코스였다. 로마 한복판의 광장이 <스페인 광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곳에 17세기 때부터 바티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장의 동쪽 언덕은 가파른 언덕으로 이루어 졌는데 18세기에 프랑스 대사의 기부에 의해 계단이 만들어졌다. 계단 수가 137개로 이루어져 제법 높은 언덕으로 연결된다. 당시 이 지역은 로마교통의 중심지로, 외국인들을 위한 호텔과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유럽은 18세기 중반 들어 사상적으로는 계몽주의 물결에 휩싸이고 예술적으로는 고전주의를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되살아났다. 때맞추어 발굴된 폼페이시의 화산터는 유럽인들에게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켰고 당시 유행되었던 계몽주의 사상은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여행을 통해 성취하려고 하는 경향으로 발전시켰다.

바로 그때 그 여행루트는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반도였고 최후의 목적지는 로마였다. 이른바 <그랜드투어> 시대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탈리아 여행행렬에 합류하였고 대부분의 북유럽귀족들이 일생에 한번은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로마를 꿈꾸어 왔다. 이탈리아 여행대열에 합류한 문인들 중에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 영국의 낭만파시인 키이츠, 빅토리아시대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 등도 그랜드 투어리스트중 한 일원이었으며 스탕달, 발자크, 리스트, 바그너 등 유명 예술가들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로마를 방문했을 때 꼭 한번 머무는 곳이 바로 스페인 광장이었고 지금도 이곳에는 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예로는 스페인계단을 마주보며 오른쪽 건물 2층은 키이츠가 사망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었으며 한때괴테, 바이런, 리스트 그리고 바그너와 같은 예술가들이 자주 출입했던 영국풍의 찻집 카페 그레코(Caffe’ Greco)는 여전히 광장 앞 비아 데이 콘도티 거리에 문을 열고 있어 지금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로마 거리의 크고 작은 골목길을 거닐다가 도착한 광장과 계단. 자연스럽게 쉬면서 앉아보는 계단. 한여름이라면 태양을 마주보며 앉았을 때 생각나는 아이스크림.

스페인 광장에는 본 젤라또가 없다.

광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누구나 떠올리는 추억이 있다면 로마를 첫 나들이한 공주 오드리 헵번이 광장 뒤편의 계단 13번째 위에서 젤라또를 먹는 영화 속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특히 우리 모두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누구나 이 대목에서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영화 속의 추억으로 잠시라도 빠지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로마의 다른 모든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유독 스페인 광장 주변에만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영화 속 장면 따라 하기 좋아하는 관광객들 때문에 생겨난 시 당국의 방침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이 너도 나도 먹은 아이스크림으로 계단을 더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 당국의 <아이스크림 판매 금지>방침 때문이라고 하니 그 장면 하나 때문에 찾아간 수많은 관광객들에게는 대단히 아이러니한 생각을 들게 한다.

아무튼 17세기부터 이곳에 있던 스페인 대사관 덕분에 스페인 광장이라 불리는 이곳 볼거리의 핵심은 스페인계단과 계단아래 광장 중심에 있는 조그만 분수이다. 미술적 가치로는 바로크시대의 분수와 로코코시대의 계단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할까?

그러나 계단이야 누구나 걸터앉아 쉬어가는 고마운 휴식처로 생각되어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며 방문 기념으로 떠올리기도 하는 장소로 생각되지만 정작 광장의 중요한 분수는 막상 찾아보면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고 물줄기도 시원스럽지 못해보는 이들이 실망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광장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광장 가운데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광장중심에 분수가 있었는지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스페인 광장에서 볼 만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래도 알고 보면 역시 분수다.

로마에서 바로크 시대에 정비된 여러 광장과 분수중 비교적 초기에 완성된 스페인 광장의 분수, 특히 독일의 30년 종교전쟁 이후 교황 우루바누스 8세(Urbanus 8. 재위1624-1644)가 다시 한 번 가톨릭을 재건하고 로마를 그 중심 도시로서 야심차게 정비할 때 그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zo Bernini, 1598-1680), 바로 그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완성한 이 스페인광장의 분수, 일명 폰타나 델라 바르카치아(Fontana della barcaccia, 난파선)이라고 이를 붙여진 이 분수는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음호에는 스페인광장의 미적 요소에 대해 알아보자.

왼쪽) 우르바누스 8세의 초상화 (Urbanus 8,1624-1644),지안 로렌초의 작품

즉위 기간 중 피에트로 베르니니를 후원하고 그 의아들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를 육성 지원하는 등 로마 바로크의 절대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오른쪽) 우르바누스 8세의 문장

꿀벌 3마리를 상징으로 하는 우르바누스의 문장. 살아생전에<로마는 베르니니를 필요로 하고 베르니니는 로마가 필요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로 절대적인 베르니니의 후원자였다.

2020년 3월 13일, 1162호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