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3)

비디오 아트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로 캔버스와 물감 대신 모니터와 카메라, 스크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디오아트’는 더 이상 주변적인 장르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주요한 표현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스미디어로서의 텔레비전 영상을 예술적으로 조작하는 이른바 텔레비전아트는 1960년대 초부터 시도되었으나, 비디오리코더가 개발되고 다시 카세트테이프가 보급됨에 따라 비디오가 아트미디어로서 급속히 발달했다. 영화 필름과 달리 쉽게 수록, 편집, 변화할 수 있어 브라운관의 영상표현이 한정되지 않고 리얼타임성(즉시성)을 살린 비디오 퍼포먼스, 모니터를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비디오 인스털레이션, 비디오 스칼프쳐, 나아가 원격지에 의한 비디오텔레커뮤니케이션 등의 예술활동이 시작되고 있다.

비디오 아트는 현재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비디오 아트의 등장 배경

고대 이래 인간 생활에 필요한 용구의 생산이 인간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되던 시대에는 예술과 기술의 관계가 분리되지 않고 매우 긴밀했다. 그러나 기계생산이 진전함에 따라 예술은 기술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성을 띠어 근대 이래 20세기 중엽까지 그 관계가 소원했다.

역설적으로 이 관계가 근자에 이르러 다시 긴밀해지면서 예술이 기술(테크놀러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제작의 가능성을 넓히려는 의지와 시도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비디오 아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디오 아트란 무엇보다 우선 20세기 후반부터 급진적 발전을 보이는 테크놀러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술을 통해 찾아보려는 시도로부터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미디어에 의해 의식의 지배를 받는 대중매체 시대에 대한 하나의 비판적 계기가 예술의 새로운 개념에 개입된, 복합적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표현활동이기도 하다.

비디오 아트는 불과 40여년의 역사를 갖는 예술 장르지만, 시각 미술에서 물질 개념을 떠난 전자 이미지의 구현과 시간에 의한 이야기 서술이라는 이질적인 개념을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예술계 전반을 휩쓸고 있던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 즉󰡒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끝으로 현대예술은 죽었다󰡓는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속에서 비디오 아트는 다시 예술을 살려낸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의 특징

비디오 아트는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으로서 주로 텔레비전을 붓이나 물감처럼 사용하여 표현하는 예술이다. 연필이나 물감으로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듯이, 비디오 테이프나 전파를 조정하여 재미있는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비디오 아트는 텔레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960대 초에 시작된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를 녹음하고 다시 재생하여 보는 과정이 저렴해지면서 소비자들에게 더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진 것을 예술가들이 기회로 삼아 새로운 아트의 미디엄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Andy Warhol과 백남준은 초창기부터 이 포멧을 실험한 예술가들이다. Warhol은 언더그라운드 파티들을 퍼포먼스 아트로 녹화했고 백남준은 텔레비전 세트들를 위에 있는 TV Cello에서처럼 쌓아 멀티 모니터 조각 설치 미술을 만들었다.

현재같이 비디오를 녹음하고 편집할 수 있는 테크놀러지가 빠른 성장을 하면서 비디오 아트라는 예술은 더 많이 변화하고 넓혀지고 있다. 그리고 유튜브와 같은 비디오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기면서 비디오 아트는 빠른 속도로 디지털 시대에 적응을 하고 있으며 VJ, 인터랙티브 영화, 비디오 메시업 등의 새로운 활동을 낳기도 했다. 이제 비디오 아트는 움직이는 이미지가 상영될 수 있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직 확실한 형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연장, 또 한편으로는 예술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 공간이나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 더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어느 방향으로 귀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비디오 아트는 한편으로 영상기록 매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며,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개념적인 예술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공간과 환경의 구성에도 결부되어 있고 기존의 퍼포먼스와 연결되기도 하는 까닭에 이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그 성격을 규정지을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때로는 보수적이고 상투적이며 때로는 지극히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을 향유하는 방법도 애매한 때문에 한정된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디오 아트의 영역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 세대인 제2세대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제 1세대의 애매모호함을 뛰어넘어 그것을 일상성의 중요한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오히려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

1963년 3월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요셉 보이스 공연에 의거한 <음악전-일렉트로닉 TV>라 이름하는 믹스트미디어의 퍼포먼스가 행해졌다. 바로 한국 출신 작가 백남준의 네 번째 개인전이었다. 그리고 이는 비디오 아트의 시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비디오 카메라와 VTR을 사용한 것이 아닌, 오히려 ‘TV아트’라고 표현하는 편이 좋을 정도의 지극히 기초적인 작업이었다.

백남준이 자신의 작업으로 도입했던 TV는 다다의 우연성, 존 케이지의 음향실험 등 실험적 예술방식의 새로운 확장을 의미했다. 어떻게 보면, 당시나 지금이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 가장 밀착하고 있는 매체인 TV 모니터를 선택하게 된 것 자체가 뒤샹의 레디메이드 혹은 예술의 대중화라는 플럭서스의 교조에 힘입은 것일 것이다.

이후 그의 작품은 작업 양식상 TV 설치 작업(60년대-모색의 시기), 테이프 제작(70년대-번영의 시기), 인공 위성을 통한 생방송 작업(80년대-확산의 시기) 의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백남준의 작품세계와 비디오 아트에서 그가 지니고 있는 위치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한번 살펴볼 예정이고 여기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위성예술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백남준의 위성예술은 1984년의 <오웰 씨 안녕하십니까>(Good Morning Mr. Orwell)로 시작된다. 한시간에 걸친 생방송 공연을 세 대륙의 8개 도시를 연결하는 동시중계로 확산시킴으로써 일방적으로 명령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TV의 기능을 부정하고 TV매체를 상호 소통적인 예술 매체로 활용하는 획기적인 작품이다.

그의 비디오 설치작업은 처음부터 쌍방향 소통(interaction communication)을 기조로 하고 있었다. 처음 ≪음악의 전시≫에 출품한 <조작된 TV>연작에서, 그리고 그 뒤의 <마그네틱 TV>와 <음성변조> 등의 작업에서 관람객의 참여는 중요한 작품의 요소가 된다.

백남준에게 있어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자체는 민주성(특히 공중파를 이용한 무차별적인 소통)과 폭력성이 동시에 잠재되어 있는 가장 복합적인 소통수단이었다.(편집실)

사진: 백남준작 다다익선(多多益善 1988)

2020년 5월 1일, 116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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