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제국의 광장(1)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가보면

눈부시도록 푸른 코발트 빛 지중해 보스포루스 해협의 화려함, 혀끝으로만 느끼기에는 아쉬운 다양한 문화가 담겨있는 세계 3대 요리, 세계 최고의 카펫산지, 오스만 제국의 화려했던 영화를 보여주는 술탄의 궁전 등, 터키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빼놓을 수 없는 더욱 중요한 이미지가 있다.󰡐길고 긴 인류역사의 현장󰡑이라는 요소다.

지리적으로 동, 서양이 만나는 위치에 있으며 중국 장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의 도착점이자 또 다른 출발지인 콘스탄티노플, 역사학자 토인비는 터키의 역사도시 이스탄불을 일컬어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이라 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갖은 민족들은 대립과 공존 속에서 수많은 종교와 신화를 지키며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일구어 냈다. 혹자는 󰡐서양의 품에 안긴 동양의 요염한 자태󰡑라고 평하기도 하는 역사 깊은 도시 콘스탄티노플. 새로 바뀐 지명으로 이스탄불.

이 이스탄불에서 유서 깊은 베야지트 광장은 인류 5천년 역사의 문화유산 현장이다. 히타이트 , 아시리아 같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 부터 그리스 로마문화, 초기 기독교문화, 비잔틴문명, 그리고 이슬람문화에 이르기까지5천년의 역사가반경 1 킬로미터 내에서 뒤 엉겨서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장이다. 문명이 태어나고 사라진 역사의 땅 터키. 히타이트부터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게 꽃피웠던 문명은 모두 13개에 달하지만 그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문화 유적의 대부분은 아마 비잔틴 제국 이후부터 일 것이다.

‘비잔틴 제국’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로마 제국’이 정식 명칭이다. ‘동로마 제국’ 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로마제국’이 더 정확한 명칭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다스리던 당시 로마 제국은 동서로 분리된 제국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서로마 제국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콘스탄티누스는 당시 유일한 황제였기 때문이다.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수도를 동으로 옮긴 후의 로마 제국이라는 의미이다. 또는 동쪽에 중심을 둔 로마 제국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로마라면 이탈리아 도시와 혼돈할 우려가 있어 후세 사람들은 그리스시절 부터 써온 예전 명칭인 ‘비잔티온’을 따와 제국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비잔티온’은 고대 그리스시대 이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장군의 이름 ‘비자스’와 ‘안데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 콘스탄티노플 구시가지 한복판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으로서 ‘히포드롬’이라 불리는 전차 경기장터가 공원으로 남아있다. 전체 형태로 보아 이륜 전차경주를 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광장 한 복판에는 유서 깊은 오벨리스크 2개와 그리스시대 부터 있었던 청동 뱀 기둥 하나가 당시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며 서있다.

광장을 벗어나면 저 만치에 하기야 소피아 사원이 보인다. 광장의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거룩한 성전. 광장 주변 경관의 백미로 꼽히는 하기아 소피아 성전에 대해 알아보자. 그리스어로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성스러운 지혜)성전, 터키어로는 아야 소피아(Aya Sofya)사원. 1천 5백 년이란 세월을 지켜온 고고한 자태는 가히 지구상에서 비교 할 건축물이 없을 정도로 고풍스럽고 위풍당당하다. 현재 콘스탄티노플에 소하기아 소피아 성전과 유사한 모스크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스크(회교성전)는 하기아 소피아성전 이후에 지어졌다. 또 외형상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까닭은대부분의 모스크가 소피아 성전을 모델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모스크의 모델이 된 이 하기아 소피아성전은 문화적 가치를 생각할 때 규모로 보나 역사로 보나 단연 으뜸이다.

하기아 소피아성전은 여러 개의 반원 돔을 짓고 그 가운데 커다란 돔을 올려놓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높이 54m 상공에 올려진 지름 33미터의 거대한 돔은 엄숙함과 종교적 긴장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돔 주변에 촘촘히 둘러싸인 채광창 덕분에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채광창을 통해 돔 안으로 쏟아지는 빛 때문에 돔 가장자리가 뿌연 실루엣이 만들어 지면서 돔은 공중에 사뿐히 떠 있는 듯하다.

거대한 돔 양식의 건축물은 이미 400년 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 로마에 지어진 적이 있었다. 현재도 로마에 경이로운 건축물로 남아있는 이 건축물은 바로 판테온 이다. 지름 43미터의 거대한 돔을 갖고 있는 판테온은 규모는 더 크지만 하기아 소피아의 돔처럼 둘레에 채광창을 낼 수 없었다. 건축 기술상의 문제였다.

조명과 환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돔의 중앙에 유일하게 환기구멍을 만들었지만 밝은 공간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내부에 들어섰을 때 엄숙한 느낌은 주지만 어둡고 무거운 느낌은 해결할 수 없었다. 당연히 경쾌한 느낌은 포기해야 했다. 돔이라는 거대한 공간구조에서 엄숙함과 경쾌함. 모두 갖춘 것은 하기아 소피아 건축물이 처음이었다. 하기아 소피아 성전의 건축적 우수함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성당 본체는 동서 77미터, 남북 71.7미터 거의 정사각형이며 중앙 집중식 이다. 중앙 집중형은 장방형의 바실리카식 보다도 집중력이 더 높아 종교 건축으로서는 더 이상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 집중식 성전은 많은 인원이 모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대부분의 신전은 바실리카식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성전을 구상하고 설계할 때 언제나 고민하는 부분은 중앙집중식인가 혹은 바실리카식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바로 종교의식의 참여시 집중력 고취가 우선인지 혹은 다수의 참여가 우선인지의문제이고 바꾸어 말해서 종교의식의 <질>인지 혹은 <량>인지 선택의 문제이다. 종교건축에서 하기아 소피아성전은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54미터 위의 돔을 지지하는 방법으로 동서남북 4군데에 아치를 만들었다. 물론 중앙 집중형이었으니 가운데 공간은 정방형 공간이 주어진다. 그 다음에 4개의 아치 중 남북의 아치는 벽으로 메웠지만 동서의 아치는 다시 반원형 돔을 연결해서 밖으로 돌출 시켰다. 동서아치의 외부에 공간을 만들어 연장한 격이다. 따라서 내부공간은 처음에는 정방형이었지만 실제 사용할 때는 폭보다 깊이가 더 긴 장방형공간으로 사용된다. 중앙 집중형 돔을 채택했으면서 실내는 바실리카와 같은 용도가 가능한 겸용 구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겸용 구조는 500여년 후에 베네치아에서 모방한다. 이미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산 마르코 성전이다. 최초의 평면 설계도는 가로와 세로가 같은 그리스 십자가에서 시작했으나 마무리 지을 때는 남쪽의 주 출입구 쪽에 나르택스(전당, 입구 부근의 전실)라는 개념으로 바실리카식처럼 길이를 늘렸다. 그러고 보니 산 마르코 성당의 화려한 여러 개의 돔 양식도 그 근원은 역시 비잔틴 의 건축 양식이었다.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 사원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다음호에는 콘스탄티노플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하기아 소피아 성전의 벽화에 대해 알아보자.

그림 1) 15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사원. 비잔틴 시대의 황금기를 자랑하는 소피아 사원은 유스티니아누스 시절에 만들어 진다.

2020년 5월 22일 , 117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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