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스루에에서 발레 “춘향전“ 세계 초연이 있었던 기이한 인연

주경민 (칼스루에)

이 기이한 인연을 확인하게 된 것은 모두 “코로나19“ 덕분(때문)이라 귀결된다. “춘향전“이 독일 무대에 섰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것은 한창 박사논문 작업을 하던 1993년이다. 동양극들에 대한 자료를 찾다 우연히 1930년에 출간된 “사랑의 시련 또는 정조 지킨 무희 춘향 Die Liebesprobe oder Chun-Yang, die treue Tänzerin“이란 책을 발견하고 주제와는 연관성이 없는 것이라, 자료집 리스트에만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휴가로 한국 방문 중에 해주기로 한 초청 강연과 비행 일정이 “코로나19“ 때문에 두 번씩이나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8일 독일과 한국을 온라인으로 잇는 초청 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krHE3aph0Zs)으로 대신했다. 온라인이다 보니 강연 참가자들이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 참가자들도 참여했다. 강연 후 질문 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이 없자, 갑자기 일반 참가자 중에 한 분이 던진 질문이 바로 “춘향전“에 대한 것이었다.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다 강연 주제 밖의 사항인지라 강연자인 필자를 몹시 당황케 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강연 후에 바로 “춘향전“에 얽힌 자료들을 추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이 칼스루에란 도시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즉, 앞에서 언급한 발레 “사랑의 시련 또는 춘향“이 1931년 3월 20일, 칼스루에 바덴 주립극장에서 역사적인 세계 초연 무대에 오르게 된 일이다.

“춘향전“이 독일로 시집와서 발레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음악사와 문학사의 두 개의 상이한 일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기 생겨나 칼스루에란 도시에서 만나게 되었다. “춘향전“은 조선 왕조가 열강들의 식민지 정책 앞에서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당시인 1896년, 바이마르 제국 출판 도시인 라이프찌히에서 아르노우스 (H.G. Arnous)가 출간한 “한국. 동화와 전설 Korea. Märchen und Legenden“ (Leipzig 1896)란 책에서 다른 동화들과 함께 편집되어 독일로 시집온 것이었다.

이 책은 독일에서 한국이란 나라, 한국인과 한국인들의 풍습과 삶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함께 동화와 전설들 (별주부전에 관한 토끼와 거북이, 흥부전, 춘향전, 심청전과 홍길동전)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 당시 고종이 아버지 대원군과 함께 찍은 사진과 조선말의 생활상을 알려줄 16장의 사진과 함께 독일에서 출간된 책으로 그리 흔하지 않은 책 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곧바로 청일전쟁, 러일전쟁 승리로 이끌었으며, 무서워 할 대상이 없었던 일본제국은 깡패들을 동원해 왕궁에 침입시키고 폭력으로 민비를 시해하는 천인공로할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대외적으로 한국 문화와 문학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가려졌거나 말살되었고, 급기야 1910년 한일합방으로 한국인들은 나라 뿐만 아니라, 모국어와 이름까지도 빼앗기는 암울한 시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34년이 지난 뒤에 “춘향전“은 모짜르트 발레 음악과 칼스루에에서 만나 무대에 오르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쾰른 대학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한 니센 교수가 기증한 당시 “춘향전“ 공연으로 추정되는 사진)

그 일은 바로 1928년 자이쯔 (Ludwig Seitz)가 오스트리아 그라츠 (Graz)에서 모짜르트 무언 발레곡, “징병 또는 사랑의 시련 Retrutierung oder Die Liebesprobe“ (KV 416a)를 재발견한 일이다. 1929년 5월 15일, 이 곡을 스타이어마르크 음악원 (Steiermärkische Konservatorium) 원장으로 있던 모이지조비치 (Roderich Mojsisovics von Mojsvár, 1877-1953)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초연무대에 올렸다. 이런 그가 아르노우스의 동화집에서 “춘향전“과 마주했을 때, “춘향전“에 나오는 “사랑의 시련“이 모짜르트 발레곡 “사랑의 시련“이란 주제를 무대에서 훨씬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내용임을 단번에 알아보았음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친히 지휘봉을 잡고 초연했던 모짜르트 곡에 따라 곧 바로 안무집을 펴냈던 것이다. 그는 1896년 출간된 한국 동화집에 함께 편집된 “춘향전“을 바탕으로 모짜르트 음악에 따라 발레 안무 대본을 다시 쓰고 난 뒤에, 1930년 라이프찌히 슈베르트 (Schuberth) 출판사에서 “사랑의 시련 또는 정조 지킨 무희 춘향“이란 무언 발레 안무집을 출간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모이지조비치가 자신의 발레 안무집에 아르노우스의 원본에 따라 제국주의 앞에서 흔적없이 사라진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목에는 물론 등장인물들 – 월매, 도령, 춘향이 한국 이름으로 유럽 발레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배려하여 발간했던 사실이다.

이 발레 안무집이 출간되었던 1930년, 상임 관현악 지휘자 슈봐르츠 (Rudolf Schwarz)와 발레 단장 퓌르스텐아우 (Josef Fürstenau)가 이끌고 있던 칼스루에 바덴 주립극장 (Badisches Landestheater Karlsruhe)에서 모짜르트 발레 “사랑의 시련 Die Liebesprob“를 공연했었다. 그런데, 칼스루에 바덴 주립극장은 모이지조비치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했던 전례를 그대로 반복한 것 같다. 물론 모짜르트 발레곡이 발견된 지가 얼마되지 않아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모이지조비치의 안무집 역시 같은 해에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1930년에 있었던 가을 시즌 공연은 이 안무집이 출간되기 전에 이미 기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이지조비치가 똑같이 모짜르트 곡으로 다른 발레 안무집을 내놓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모짜르트 발레곡 “사랑의 시련“이란 이름 아래 두 가지 상이한 작품과 공연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듯하다. 초연 당시 칼스루에 바덴 주립극장에서는 모이지조비치가 했던 것처럼, 먼저 1930년 가을 시즌 “징병 또는 사랑의 시련“을 11월 3일과 8일에 2회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 이 작품은 2번 공연한 뒤 프로그램에서 빠졌으며 그 대신 1931년 봄 시즌 공연에서 “춘향전“이 칼스루에 바덴 주립극장 무대에 올랐다. 즉, 1931년 3월 20일, 칼스루에 바덴 주립극장에서 “발레 – 춘향“이 역사적인 세계 초연 무대에 올랐던 것이다.

칼스루에 바덴 주립극장 공연 연보만 찾아보면, 칼스루에에서 “모짜르트의 사랑의 시련 Die Liebesprobe von Mozart“란 제목으로 1930년 후반 시즌에서 1931년 전반 시즌까지 총 5회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930년 공연과 1931년 공연은 안무 대본이 전혀 다른 즉 2개의 상이한 공연이다. 그 당시 매주 인쇄되었던 공연연보는 두 공연 모두 특별한 구분 없이 “모짜르트의 사랑의 시련“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음악이나 발레 연구자들은 물론, 글 쓰는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발레 사전을 인용해 1930년 11월에 초연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며, 모이지조비치 안무본 „사랑의 시련 또는 춘향“도 이제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필자가 국내에 출시한  eBook “발레로 유럽에 잘 알려진 춘향전“ (Karlsruhe, 2020)에 함께 게재한 공연 팜플렛이나 당시 신문 기사, 내용 요약등의 자료를 보면 두 작품을 분명하게 구분해 제목은 물론 내용까지 다르게 소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선말인1896년 독일로 시집왔던 동화 “춘향전“은 바덴주 수도인 칼스루에 발레 무대에 선 뒤로 독일 다른 지역 극장에서는 물론 유럽 무대에서 공연되는 영광을 누렸다. 즉, 5년 뒤인1936년 4월 4일 러시아 출신 미하일 포킨 (Michel Fokin, 1880-1942)이 안무를 맡아 발레 ‘사랑의 시련 (L’Epreuve d’amour)을 모나코 몬테카를로 극장에서 초연했었다. 하지만, “사랑의 시련“은 한국 “춘향전“과는 물론이고 모이지조비치의 발레 “춘향“과도 전혀 다른 각색이었다. 어찌했건, “춘향전“은 모짜르트 곡에 힘입어 유럽 발레무대에서 공연되었으며,  한국이란 국명과 한국말이 계속 알려지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동화 속 인물로 1896년 독일로 시집 왔던 “춘향“은 111년이 흐른 뒤에, 떠나온 대한제국이 아니라 한류로 전 세계와 문화 교류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으로 2007년 10월, 포킨의 안무 1936년 버전인 “사랑의 시련 (L’Epreuve d’amour)“의 주인공으로 한국 초연 무대로 되돌아 갔다. 이 한국 초연으로 춘향이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되기까지는 낯선 외국 땅에서 춘향 아닌 춘향으로 갖은 이색적 체험을 모두 감내해야만 했던 긴 세월이었다.

이제라도 국내 발레 무대에서 춘향에게 제대로 된 의상으로 한국식으로 갖춰진 무대에서 한국말과 춤사위로 한국 발레리나들이 세계 무대를 향해 역으로 “발레 – 춘향전“ 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필자는 모이지조비치의 “춘향전 안무집“을 완역해 124년 만에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두가 “코로나19“ 덕분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초여름, 칼스루에에서)

추기: 현재 칼스루에 바덴 국립극장은 2007년부터 대구 시립 오페라단과 자매 결연을 맺고 매년 칼스루에 극장 단원들이 대구 방문 공연을 하거나, 대구 오페라단이 칼스루에를 방문해 초청 공연을 가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춘향“이 90년 전에 이미 두 도시를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한다.

2020년 7월 3일, 1177호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