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고전기 예술 ➀

아테네의 아고라와 스토아
수많은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던 곳이며 그리스 철학의 산실이었다.
멀리 아크로폴리스언덕이 보이며 왼편에는 아고라 광장 주변에 있었던 아탈로스 스토아가 보인다.

토인비는 <역사와 연구>에서 모든 문명은 생성과 소멸의 원리에서 유사한 순환궤도의 원리를 따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 역사는 가장 화려한 시기는 곧 종말의 예고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늘 흥함과 쇠함을 되풀이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군사적으로 강해진 아테네는 일찍이 민주주의 꽃을 피운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거의 같은 시기에 그리스 예술은 절정기에 달해 사실주의가 극도로 무르익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운명의 종말은 예고되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백년도 안 되어 제국과 함께 몰락한다.

처음에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패배로, 두 번째는 그리스북방의 마케도니아의 등장으로 아테네는 운명의 내리막길을 맞이한다. 그리고 연이어 등장한 로마는 역사에서 그리스라는 배역을 지중해라는 무대에서 밖으로 밀어냈다.

아테네의 번영은 한 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아테네의 예술은 철학과 문학, 조각과 건축으로 후세에 모든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후대에 이르기를 이 시기의 예술을 이름 붙여 󰡐고전기 예술󰡑이라 부르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짧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영원한 그리스의 󰡐고전기 예술󰡑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 위해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을 찾아가 보자.

파르네논 신전은 그리스 건축미학의 결정판

석회암의 높은 언덕 위에 눈부시게 하얀 대리석으로 빚어내어 세련되고 균형 잡힌 자태를 자랑하는 파르테논은 그리스가 자랑하는 세계문화 유산이다. 건축물은 그리스 고전기 당시의 수학과 과학이 총 동원된 종합 예술품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계산되어 설계된 황금비례 덕분에 어디 하나 빈틈없는 완벽한 비례를 자랑한다.

육중한 자태를 자랑하는 대리석 신전은 결코 무거워 보이지 않으며 반복되는 기둥들 사이에서도 지루한 감은 찾기 힘들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이 완벽한 건축물은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수없이 지어진 그리스양식의 모든 건축물을 대표한다.

훌륭한 것은 구조뿐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 피디아스는 건물의 안 밖에 곳곳을 조각으로 장식했다. 고전기의 정점에 달했던 이 시기의 조각 작품들은 인간과 신을 주제로 후대의 그 어느 때보다도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신전을 에워 쌓고 부드러운 육체, 우아하게 물 흐르듯 흘러내리는 옷 주름 등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섬세한 표현은 고전기를 계승한 헬레니즘에 이르면 절정에 달해 묘사력이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그리스 미술의 전통은 로마에 계승된다.

아테네에 파르테논신전이 지어질 때 시민들이 열광하고 감탄한 것은 신전의 외부모습의 웅장함뿐만이 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전 내부에 있다. 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나 여신상이다.

높이 12m의 아테나 여신상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규모이기도 하지만 전신이 대리석과 순금과 상아로 만든 경이적인 기념상이었다. 조각가 피디아스의 작품으로서 아테네시민들은 판아테나이아 축제가 되면 6일간이나 계속되는 축제를 위해 이곳에 모인다. 음악과 시, 웅변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엶으로서 이곳에 모여 경배의식을 들이곤 했다.

파르테논 신전건물의 처마 밑 프리즈(건물 처마 밑의 돌림띠 장식)를 보면 판아테나이아의 축제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다. 부조로서 조각되어 길이 160m, 폭1m의 거대한 돌림띠 형식으로 신전을 감싸고 있다.

수많은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이 프리즈에는 등장인물이 4백여 명이나 되며 동물도 2백 마리가 넘는 정도이니 거대한 석조로 이루어진 기록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석조 프리즈는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오랫동안 운명을 함께 했는데 아쉽게 19세기 초에 영국인에 의해 조직적으로 훼손되며 국외로 반출된다. 반출자 이름을 따서 현재 엘긴 마블이라고 부르는 이 프리즈를 보기 위해서는 아테네가 아니라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가야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약탈문화제의 원 소유국 반환문제에 언제나 첫 번째로 거론되는 사례이다. 빼앗긴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기원 후 5세기에 피디아스의 작품 아테나 여신상도 로마제국에 의해 국외로 반출된다. 당시 로마제국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이전한 상태여서 아테나 여신상도 그곳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여신상은 후대에 화제로 손실되어 지금은 볼 수 없으니 대단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이 아테나 여신상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길은 로마시대에 제작된 소형 모각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것도 등신크기로서 실제 아테나 여신상의 웅장한 모습을 짐작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아테네는 철학과 종교의 역사적 현장

아크로폴리스 내에는 파르테논 신전 외에 아테나 니케 신전과 복합 신전인 엘렉티온 등이 있다. 아크로폴리스 남쪽에는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그리스 최고의 극장인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이곳에서 유리피데스와 소포클레스의 연극이 공연되었다. 서쪽에는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제자들을 향해 연설할 때 모였던 아고라와 스토아가 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우주를 논했던 곳이요 그리스 철학의 산실이었다.

또 아크로폴리스 언덕 바로 밑 서쪽에는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 올라갔던 작은 언덕 아레오파고스가 있다. 사도 바울이 당시 최고의 문명 도시인 이 아테네에 도착한때는 기원 후 50년경이었다. 당시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로마 제국의 통치 밑에 있었지만 문화적인 자부심은 로마를 능가했다.

그러나 고대문명의 문화적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으로 바울을 위축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의 다신교적 종교 상황을 유치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힘을 얻는다. 아테네 시민들은 수호신 아테나 뿐만 아니라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을 섬겼고 그들을 위한 신전을 지었다. 그리고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해 제단까지 만들었다.

이런 아테네 시민들에게 사도 바울은 대담하게 <알지 못하는 신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기 시작한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경배해온 신을 이제 내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 올라갔던 작은 언덕 아레오파고스는 지금은 낮은 언덕에 울퉁불퉁하고 반들반들한 계단만 남아 있다. 바울은 여기서 최초의 제자 디오니시오스를 얻는다.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는 도시 아테네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원후 51년의 일이었다.

신화의 고향인 아테네는 지금은 희랍 정교회의 중심도시다. 신화의 나라에서 신의 나라가 된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바울이었다.

흔히 유럽의 문명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리스 본토에서 문명의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년경이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훨씬 전인 기원전 2000년경에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하는 에게 해에 문명의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 문명을 크레타 문명. 에게 문명 또는 미노아 문명이라고 한다. 다음호에는 계속해서 에게 문명에 대해 알아보겠다.

2020년 7월 17일, 1179호 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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