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고전기 예술 ②

문명의 시작, 에게 해

시리도록 푸른 코발트빛 바다와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백색의 집들. 강렬히 솟아지는 햇살을 가득 품고 푸른 마당을 드넓게 펼치는 에게 해, 그곳에 그리스가 있다. 인류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고대유적과 그 속에 깃든 신화들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나라. 그리스, 그 나라를 다시 한 번 돌아보자.

19세기 영국의 시인 셀리는 고대그리스 문명을 이렇게 예찬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들이다. 우리의 법률, 문학, 예술… 그 뿌리는 모두 그리스다. 만일 그리스가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야만인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여기서 셀리가 극찬했던 그리스문명의 주역은 아테네이다.

아테네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구 문명의 양대 산맥의 한 축인 헬레니즘의 뿌리이자 본산지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아고라에서 논쟁을 벌였던 곳도 이곳이요, 유리피데스와 소포클레스의 희곡이 원형극장에서 공연되었던 곳도 이곳이다. 익티노스와 같은 대 건축가가 인류문화유산 제1호인 파르테논 신전을 남긴 곳도 이곳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이런 아테네 문명 훨씬 이전에 또 다른 문명이 한차례 꽃 피웠다. <미노아 문명>, 일명 <에게문명>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은 그리스의 첫 번째 문명인 <에게 문명>에 대해 알아보자.

그리스문명의 시작은 크레타에서

에게 해의 남쪽 끝에 있는 크레타 섬은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로, 1900년경 영국인 고고학자 아더 에번스(1851-1941)는 그 북쪽 기슭의 중앙부에 있는 크노소스에서 궁전 터를 발굴한다.

1만 평방km 규모의 부지에 5층의 거대한 궁정에는 1300 여 개의 방과 정원을 갖추고 있다. 왕과 여왕의 방, 회의장. 접견실, 신전, 창고, 야외 극장등 여러 가지 시설을 두루 갖추었고 모든 방은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소를 타는 여인>, <제비와 꽃 그림>, <바다와 돌고래> 등 모든 그림이 평화로워 보인다. 기원전 1600년에서 1400년 것으로 판명되는 이 궁전의 화려함은 동시대에 비교할 궁전이 없었다.

현재 크노소스 궁전에서 출토된 보물들은 크레타 섬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라클리온의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굴한 출토품으로는 <백합왕자>, <파리지엔>, <아크로바트(곡예사)>, <뱀의 여신상> 등이 유명하다.

<백합 왕자>는 깃털과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괴물인 그리팬을 거느리고 있다. 이 괴물은 머리와 날개는 독수리로 몸통은 사자 모습을 하고 있다. 발굴자 에번스에 의해서 이름 붙여진 <파리지엔>은 파머 머리가 대단히 화려해 눈길을 끌며 화장한 커다란 눈과 측면 얼굴의 윤곽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화려한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 여자는 사제임을 짐작케 한다. 여사제의 모습으로 인상 깊은 조형물은 또 발굴된다. 바로 <뱀의 여인상>이다. 치켜든 양 손에 뱀을 들었는데 의상은 화려하지만 두 젖가슴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패션은 특히 이채롭다.

지모신 또는 무녀를 나타낸 것으로도 생각되고 있다. <아크로바트(곡예사)>는 소의 등위를 날아오르는 곡예사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청동과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소머리상>과 더불어 유독 소와 친근한 크레타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오래 전 부터 이어진 소와 엮인 이야기는 이렇다.

평화롭고 부유한 왕국 크레타를 다스리던 왕 미노스에게 음란한 왕비가 있었다. 왕에게는 이국땅에서 가져온 잘 생긴 황소가 있었는데 평소에도 음란함을 즐기는 왕비는 급기야는 사람이 아닌 황소에게 음심을 품었다. 왕비 파시파에는 결국 황소와 관계를 맺게 되고 훗날 반인반수(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황소인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결과를 안 왕은 분노했겠지만 이 일을 감추기 위해 고민 끝에 이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두어 버린다. 들어가면 다시 찾아 나올 수 없는 미로를 입구로 한 미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궁이 바로 크노소스 궁전이 아닐까 후대에 추측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크레타 섬 사람들의 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남다르며 발굴된 조형물 중에서도 소와 연관된 것들이 많다.

후에 크노소스 궁전과 유사한 시대의 궁전이 크레타 섬 두 지점에서 추가로 발굴된다. 그 중 하나는 크레타 중심부의 남쪽에 있는 페스토스에서 발굴 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북쪽 항구도시 이라클리온의 서쪽 약35km 지점에 있는 마리아에서 발굴되었다.

창고마다 보관용 그릇들이 빼곡히 쌓여있고 방마다 뛰어난 솜씨의 예술성 높은 그림들이 보여 지는데 기원전 16세기경의 미노아 문명 당시의 화려한 생활을 느끼게 한다. 경제적 풍요로움은 특정 도시가 아니라 주변 여러 도시에 펼쳐졌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이렇게 풍요롭고 화려했던 문명은 왜 몰락했을까? 그 원인은 크레타 북쪽의 섬 산토리니에서 찾아보자.

크레타 섬의 북쪽 약 100km 지점에는 키클라데스 제도 남쪽 끝의 섬인 산토리니 섬이 있다. 섬의 모습은 상공에서 보면 둘로 나눠진 링 모양의 섬으로 그 안쪽은 해면으로부터 200-300m 높이의 절벽으로 되어 있다. 또 이 절벽은 해저 밑으로 200-300m 이어진다.

이 절벽은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칼데라의 벽이다. 현재는 이 화산 활동에 의해 미노아문명이 붕괴되고 아틀란티스 전설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섬의 절벽 윗부분 약 30m는 백색 화산재로 되어 있고, 화산재 밑에는 적색 용암층이 있다.

산토리니 섬은 현재도 화산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20세기 이후에도 분화한 적이 있다. 아테네의 지질학자 가라노프로스는 산토리니 섬으로 둘러싸인 내부의 바다는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칼데라에 물이 고여서 된 것이라고 발표한다. 그는 또 이 화산 활동의 연대가 기원전 1500년에서 1400년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이것은 크노소스 궁전의 붕괴 연대와 일치하는 것이다. 크레타 섬에는 활화산이 없고 산토리니 섬에 있는 활화산이 크레타 섬에서 가장 가까운 활화산이다.

그런데 그리스의 고고학자 마리나토스는 크레타 섬 동부에 화산재가 퇴적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 마리나토스는 1967년에 산토리니 섬 남부에서 크노소스에 뒤지지 않는 유적 <아크로데리>를 발굴했다. <권투를 하는 두 소년>, <양손에 물고기를 든 어부> 등의 예술성 높은 프레스코 그림이 이때 발굴된다. 이런 결과를 종합해 보면 기원전 1400년경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미노아 문명은 산토리니 섬에 있는 화산의 대분화로 몰락했다고 결론 지어 진다.

다음 호에는 미노아 문명 이후의 그리스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2020년 7월 24일, 1180호 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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