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독일의 전후 문학(1)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은 독일어권의 전후 문학으로, 1, 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독일어권의 문학계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4명의 작가를 선택하여 살펴본다.

작가에 따라, 인간 본연의 모습에 천착하거나,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 되고, 또는 과거 불행한 시대에 대한 고발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 모든 근원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뒤 ‘과연 인간의 이성은 진보하며 신뢰할 수 잇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막스 프리쉬, 뒤렌마트,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를 탄생 연도순으로 연재한다.


막스 프리쉬(Max Rudolf Frisch)

전후 독일 문단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독일 연극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막스 프리쉬는 191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취리히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공부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이후 신문사의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글을 쓰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산문과 소설 창작을 재개했으며 1950년 출판된 『일기 1946~1949』를 계기로 독일어권 문학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프리쉬는 1950년대에 이르러 큰 주목을 받게 되어 1955년부터는 전업작가로 작품 창작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1954년 발표된 『슈틸러(Stiller)』를 비롯하여 대표작인 『호모 파버(Homo faber)』,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Mein Name sei Gantenbein)』등은 평단은 물론 대중으로부터도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1945년 초에 집필되어 같은 해 3월 29일 취리히 극장에서 초연된 프리쉬의 희곡 『이제 그들은 또다시 노래 부른다 (Nun singen sie wieder)』는 전쟁의 무의미함을 폭로한 작품이다.

프리쉬는 스위스 출신으로서 전쟁의 피해와는 무관한 국외자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가 정신은 나치 독일이 주역을 맡은 정치적, 사회적 제반 현상들과 대전 중의 전선(戰線)이나 점령 지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가 국외자였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전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냉철하고도 이지적인 목소리로 문제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특히 나치 독일이나 대전 중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프리쉬는 일련의 충격적이고도 불가사의한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높은 교육을 받았고 또한 위대하고 유서 깊은 문화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민족이 어찌하여 그토록 급작스럽게 전락하여 인문주의적 전통을 외면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고귀한 정신과 함께 비양심적이고도 몸서리쳐지는 잔혹성이 어떻게 한 인간 안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1946년 이후 프리쉬는 스위스 주변 국가들인 바르샤바, 파리, 마르셰유, 이태리,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는데,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방문의 산물이 희곡 『만리장성 (Die chinesische Mauer)』이다. 프리쉬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솟은 거대한 버섯구름에 의해 15-16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있은 지 불과 1년 뒤 비키니 선풍이 미국을 휩쓸고 있는 모습에서 희곡 『만리장성』의 창작 모티브를 취하였다. 원폭 투하와 비키니 선풍이라고 하는 이 상치적 요소가 작가의 창작 의욕을 자극한 것은 참사로부터 자신이 비껴날 수 있었다는 요행을 감지덕지하며 지낼 수만은 없는 저 대량살육의 메커니즘에서 오는 충격과,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은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희곡 『만리장성』은 첨단 기계 문명이 이룩한 현대전(現代戰), 즉 핵전쟁 공포에 직면한 작가 자신의 답변으로 간주될 수 있다.

1947년 프리쉬의 문학 인생에 중요한 두 개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데 그 하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와의 만남이다. 당시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브레히트는 프리쉬의 창작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프리쉬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도입함에 있어 그의 이론을 그대로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이를 변형, 발전시킴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극작술을 정립하였다. 또 다른 하나의 만남은 프랑크푸르트의 젊은 독일 출판업자 페터 주르어캄프(Peter Suhrkamf)와의 만남으로써 그는 프리쉬의 후견인이자 격려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1949년 1월 8일 취리히 극장에서 초연된 희곡 『전쟁이 끝났을 때 (Als der Krieg zu Ende war)』는 하나의 쇼킹한 사건이었다. 작품이 초연되었던 당시의 시대는 반공 사상이 투철했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서구 전역이 팽배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dSSR)의 세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동에서 유래하는 모든 것은 악이며 서에서 유래하는 모든 것은 선이라는 식의 단순 논리에 빠져 있었다. 이렇듯 공고한 반공 의식 위에 앉은 관객들 앞에 작품은 독일 장교 부인과 소련 장교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던진 것이다. “네게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것이 프리쉬가 모순된 선입견으로 경직화한 관객들에게 던진 계명이었다.

1950년 발표된 일기집 『일기 1946-1949(Tagebuch 1946-1949)』은 프리쉬의 창작 과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일기는 단순한 일상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객관화한 체험, 풍요로운 사고, 그리고 중립적 참여 의식을 가지고 전후(戰後) 유럽의 외적, 내적 현상을 기록한다. 그의 일기 초고들은 훗날 그의 희곡이나 소설의 소재가 된다.

프리쉬는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극작가로서 알려져 있었다. 그를 세상에 소개한 것이 드라마라면, 그의 필명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설이다. 특히 그의 삼부작이랄 수 있는 『슈틸러』, 『호모 파버』, 그리고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 하자』가 그것이다.

1957년에 발표된 소설 『호모 파버』는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게 하였으며,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호모발터 파버를 통해 기계적 문명에 휩싸인 현대인의 비극을 나타냄과 동시에 이는 지금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비추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호모 파버(Homo faber)』는 라틴어로 『기계 인간』을 의미한다. 흔히 『도구적 인간』이라고도 번역되는데, 그때의 인간은 쉬운 말로 감정이 거세된 인간, 비이성적인 정념에 휩쓸리지 않는 인간을 의미한다. 그건 인간이 이룩한 과학적인 성과에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는다. 주인공은 시간마저 이성의 제어와 관측으로 완전히 계산되고 통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도구적 인간이던 주인공이, 그의 옛 애인이 낳은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운명적인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적인 서사구도를 지니며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던져주고 있다.

2020년 8월 7일, 118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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