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독일의 전후 문학 (3)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은 독일어권의 전후 문학으로, 1, 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독일어권의 문학계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4명의 작가를 선택하여 살펴본다.

작가에 따라, 인간 본연의 모습에 천착하거나,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 되고, 또는 과거 불행한 시대에 대한 고발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 모든 근원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뒤 ‘과연 인간의 이성은 진보하며 신뢰할 수 잇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막스 프리쉬, 뒤렌마트,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를 탄생 연도순으로 연재한다.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➀

전후 독일 문단을 이끈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20대 초반에 겪은 전쟁은 곧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전쟁을 겪었고 그곳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누구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하고자 했다. 뵐은 경험을 통한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그가 히틀러를 위해 죽을 수는 없었던 것처럼, 어떤 인간도 아무 의미 없는 승리를 위해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인리히·뵐」은 동시대 비평가 「마르셀라이히·라니츠키」에 의해 『독일에서 작가라는 직위에다 새로운 권위를 부여한 작가』 라고 평가 받았다.

1945년은 독일문학의 새로운 출발기로「영점」이라고 말해진다. 나치독재하에서 그 체제에 동조하였건 침묵하였건 작가는 모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면목을 잃었다.

이러한 영점에서 「뵐」이 나타났고 그는 작품을 통해 독일작가에 대한 신뢰를 심었다.

뵐은 나치독재에 의한 무의미하고 잔인한 전쟁의 체험과 전후의 가난·혼돈의 체험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첫작품 『열차는 정확했다((Der Zug war pünktlich)는 1943년 동부전선을 향해 질주하는 특별열차에 탑승한 한 병사의 죽음과 절규를 그린 것이다.

이어 1951년에는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Wo warst du, Adam?』를 발표하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은 병사 파인할스가 동부전선에서 그의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모은 것이다. 거기에는 파인할스가 오래 함께 지냈던 슈나이더 상사에 대한 이야기, 전쟁 속에서 그가 사랑했던 유태인 여교사 일로너에 대한 이야기, 또 종전 직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짤막한 단편처럼 이어져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파인할스는 고향 집에 거의 다 돌아와서 유탄을 맞고 자기 집 문 바로 앞에 쓰러져, 항복의 의미로 그의 어머니가 내단 흰 깃발에 덮이면서 죽는다.

이 장면을 통해서 이 작품의 중심 테마가 ‘전쟁’이라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고, 죽기 직전 파인할스의 마지막 울부짖음은 전쟁에 대한 고발이며 경고다. 그러나 그 고발과 경고는 무용지물이 된 채, 그는 죽고 만다.

저자 하인리히 뵐은 이 작품의 서론에서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전쟁은 진정한 모험이 아니다. 모험의 대용품밖에는 되지 않는다. 전쟁은 일종의 병이다. 티푸스 같은 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참하고 무의미한 것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러기에 전쟁을 티푸스에 비유한 생텍쥐페리나 “새로운 신으로 등장한 죽음은, 점점 배가 불러 가고 있다”고 말한 보르헤르트와 통하는 바가 많다.

뵐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체험한 전쟁을 음산하고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전쟁이란 모두 광적이며 비인간적인 치욕일 뿐만 아니라 귀중한 인류의 문화재와 인간 생명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전쟁 체험이라곤 전혀 없이 향락적인 생활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에게, 뵐은 전쟁과 그 결과로 오는 부산물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알려 준다.

1959년에 나온 소설『아홉시반의 당구』 는 그때까지의 「뵐」 문학의 주제와 기법이 총정리되면서 하나의 원숙한 봉우리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된다. 하룻동안의 사건진행을 통해 빌헬름 시대로부터 히틀러시대를 거쳐 독일연방공화국에 이르는 20세기 전반의 독일의 운명이 주인공 3대를 통해 나타난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뵐은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신변보호』등을 쓰면서 1970년대 독일연방공화국의 사회현실을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하인리히·뵐」은 작가로서 뛰어난 작품을 쓰는 것과 함께 독일의 현황에 대해 정치·언론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과감히 해냄으로써 독일의 「도덕적 기관」「양심의 소리」 로서의 위치를 지켰다.

하인리히 뵐의 생애와 작품세계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난 하인리히 뵐(1917- 1985)은 청소년기 나치 하에서 히틀러 유겐트의 유혹을 뿌리치고, 1939년 쾰른대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곧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프랑스, 루마니아, 헝가리, 러시아 등지에서 복무한다. 4차례 부상당한 후 1945년 4월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 2년이 지나 그의 나이 30에 전업작가가 된다.

쾰른에 정착한 뵐은 1949년 병사들의 절망적인 삶을 묘사한 『열차는 정확했다((Der Zug war pünktlich)』를 시작으로, 참혹한 참전 경험과 전후 독일의 참상을 그린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받으면서 문인으로서의 위치를 다졌고, 1953년에 출간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로 비평가와 독자들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를 비롯해 『9시 반의 당구(Billard um halb zehn)』, 『어느 광대의 견해 (Ansichten eines Clowns)』, 『신변 보호(Fürsorgliche Belagerung)』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1967년에는 독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에는 사회 참여가 더욱 적극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독일 사회와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특히 1969년과 1972년 뵐은 귄터 그라스와 함께 사회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위해 선거 유세에 직접 참여하며 빌리 브란트를 적극 지지했다. 또한 1971년 독일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 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고 있는 작가와 지식인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1971년에는 성취 지향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은 『여인과 군상(Gruppenbild mit Dame)』을 발표하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29년의 토마스 만 이후 독일이 이 상을 받은 것은 43년 만이었다. 그의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는 아직까지 독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뵐의 작품 세계는 더욱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독일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되었다.

작품 속에서 독일 사회의 불균형적인 발전, 팽배해진 물질주의로 인한 도덕성의 결여를 지적했던 뵐은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정면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독일의 가톨릭교회가 정부의 자본주의 경제 정책에 순응하고 동조함으로써 재정 기반을 확보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9시 반의 당구』에서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망각한 채 재무장을 논하면서 이윤 추구와 소비 조장으로 치닫는 독일 사회를 비판했다. 1974년에 발표한 작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무고한 여성이 언론의 횡포로 사회에서 매장되어 가는 과정이 담겨있고, 『신변 보호』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해 다뤘다.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에 진력했던 뵐은 1985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사후 ‘쾰른 문학상’은 ‘하인리히 뵐 문학상’으로 개칭되었고,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의 광장과 독일의 열세 개 학교에는 뵐의 이름이 붙었다.

하인리히 뵐은 귄터 그라스와 함께 독일 전후문학을 주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뵐은 2차대전 후의 혼돈된 사회와 ‘제로상태’의 독일문학을 재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정치적, 사회적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많은 문제작을 내놓았다.

뵐에게 체험은 항상 현재적이다. 이 말은 곧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동시대를 다른 말로 하면 현실이라 할 수 있고, 뵐에게 현실이란 즐거운 내용이 아닐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뜯어보기가 두려운 편지와 같다. 그럼에도 편지는 반드시 개봉되어야 한다. 즉 현실이란 작가가 받아들여야 하는 당면과제이다. 우리는 여기서 참여 작가로서의 뵐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의 동시대인들에 대한 연대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개인으로써 글을 쓰고 있지만, 그 자신을 결코 개체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대신 그는 연결된 존재로써 자신을 느꼈다. “시대와 동시대인에 연결된 존재, 한 세대에 의해 체험되고 경험되고 목격되고 들은 것에 연결되어 있는 존재.” “연결되어 있다”라는 표현에서 그의 현실 참여적인 입장과 시대와 동시대인과 결합되어 있는 그의 모습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동시대에 대한 연대감과 책임감이 뵐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비판정신의 뿌리이다.

1183호 23면, 2020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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