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독일의 전후 문학 (5)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은 독일어권의 전후 문학으로, 1, 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독일어권의 문학계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4명의 작가를 선택하여 살펴본다.

작가에 따라, 인간 본연의 모습에 천착하거나,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 되고, 또는 과거 불행한 시대에 대한 고발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 모든 근원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뒤 ‘과연 인간의 이성은 진보하며 신뢰할 수 잇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막스 프리쉬, 뒤렌마트,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를 탄생 연도순으로 연재한다.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세계의 죄인으로 낙인찍힌 패전의 독일 땅에서 문학을 살려내다

그라스는 단순한 작가를 넘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지식인이었다. 동시대 문인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던 그는 정치적 입장을 너무 솔직하게 말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독일 통일을 강력히 반대했는데, 이는 그는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을 이끈 위험한 길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라스는 생애 내내 독일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했으며, 세계의 죄인으로 낙인 찍힌 패전의 독일 땅에서 문학을 살려내는 데 가장 큰 힘을 보탠 작가이다

◈ 귄터 그라스의 삶과 작품세계

귄터 그라스는 1927년 10월 16일 독일 단치히(오늘날 폴란드의 그단스크)에서 식료품 상인이었던 독일계 아버지와 슬라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궁핍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후, 그는 17세 때인 고등학교 시절에 징집되어 부상을 입고 미군 포로가 되었다. 석방된 뒤 그는 잡부와 석공으로 일하다가 조각가가 되기 위해 뒤셀도르프의 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53년에 베를린의 미술학교로 옮겨 1956년까지 조각가로서의 수업을 마쳤다.

그라스는 1955년 서정시 대회에 입상함으로써 문단에 발을 들여 놓았다. 같은 해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적 집단인 <47그룹>에 가입하고 1958년 미완성 초고였던 『양철북 Die Blechtrommel』으로 ‘47그룹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인 1959년 정식 출간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그라스는 ‘게오르크 뷔히너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등을 수상한다. 그라스의 『양철북』은 1979년 쇨렌도르프 (Schloendorff)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라스는 『양철북』 출간 이후 중편소설 『고양이와 쥐 Katz und Maus』(1961), 서사소설 『비참한 세월 Hundejahre』(1963)을 출판하여 단치히 3부작을 완성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라스는 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남녀 간의 전쟁에 관한 저속한 내용의 우화 『넙치 Der Butt』(1977), 30년전쟁 막바지의 가상적인 작가모임 ‘1647그룹’에 대한 『텔그테에서의 만남 Das Treffen in Telgte』(1979), 인구폭발과 핵전쟁의 위기 속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냐 말 것이냐로 몹시 고민하는 젊은 부부를 그린 『출산 Kopfgeburten oder die Deutschen sterben aus』(1980) 등을 통해 독일 소시민 사회의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을 계속한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서독이 동독을 일방적으로 식민지화하는 형식으로 통일하는 것을 비판했고, 통일 이후에는 독일의 우경화를 경계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리고 1992년에 발표한『무당개구리의 울음 Unkenrufe』에서는 민족의 이념보다 자본의 힘이 더 강력하게 지배하는 유럽의 정치 상황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어서 1995년에는『아득한 평원 Ein weites Feld.』을 발표하였고, 1999년 7월에는 20세기 전체를 회고하는『나의 세기 Mein Jahrhundert』를 발표했다. 1년에 하나씩 모두 100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그라스는 양차 세계 대전과 히틀러의 집권, 베를린 올림픽 등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당시 현장에 있던 화자들의 눈을 통해서 서술한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9월 30일 20세기의 마지막 노벨문학상을 독일 작가로는 7번째, 하인리히 뵐 이후 27년 만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인 호라스 엥달(Horace Engdahl)은 수상식 축사에서 그라스를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귄터 그라스! 당신의 균형 감각은 인류에게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빨리 잊고자 하는 것을 고집스레 기억하는 한 문학이 여전히 하나의 권력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그라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일의 과거를 덮고 있던 악령을 날려버렸습니다. 소설 『양철북』은 20세기 독일 소설의 재탄생을 의미합니다.”라고 하여 그라스 문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2006년 8월 12일 그라스가 자전소설 『양파껍질을 벗기며 Beim Häuten der Zwiebel』의 출간을 앞두고 2차 대전 말기에 나치친위대(SS) 전투병으로 복무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 이후 독일 전체는 큰 충격 속에 빠졌다.

그라스는 젊은 시절부터 일관되게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입장을 고수해왔고, 중요한 사안마다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작가인 만큼 그의 입장에 공감하는 독자들에겐 살아 있는 양심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런데 그가 악명 높은 나치친위대에 복무했으며 더구나 그 전력을 60년 넘게 숨겨왔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라스의 이 고백에 대해 독일 지식인 사회는 양분되어, “겨우 만 17살의 철없던 나이의 행동일 뿐”이라는 우호적인 의견과 반면에, “그동안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독일 보수 진영을 강하게 비판해 온 그라스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는 그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해 신작 『양파껍질을 벗기며』의 출간 직전에 과거를 고백한 것은 아닌지“, ”노벨상을 받을 욕심으로 그동안 친위대 근무 과거를 숨겨온 것은 아닌지“ 등 인신공격적인 비판도 난무하였다.

귄터 그라스는 TV 저널리스트인 울리히 비케트와 가진 ARD 인터뷰에서 청소년기의 그 체험을 보다 큰 역사적인 맥락에서 서술하기 위해 자서전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라스는 이 자서전에서 당시 자신이 얼마나 나치즘에 현혹되어 그 이데올로기에 동조하고 있었는지를 일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때 부모님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했으며, 자신은 그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제대로 된 정확한 질문을, 자서전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눈물과 회한을 머금으며, 던져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1185호 23면, 2020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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