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와르 강변의 고성들 (4)

프랑스 왕실의 역사적 현장, 쉬농소 성(Chateau de Chenonceaux)(2)

로저 크리스티안 감독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를 보면 노스트라다무스가 꿈에서 본 앞날의 장면이 재현되어있다.

<장창마상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시작신호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두 선수는 무섭게 상대를 향해 내달린다. 서로의 긴 창을 상대방에게 겨누면서. 두 선수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드디어 격돌하고 한 선수가 상대의 창에 안면부위가 스치는가 싶더니 이내 말 위에서 나가떨어진다. 피 흘리는 선수의 투구를 벗겨 보았더니 긴 창이 투구의 눈 부위로 뚫고 들어가 눈에 꽂혔다. 결국 선수는 현장에서 사망한다.>

이 마상대회의 사고 순간인 이 장면은 1500여년 중반에 예언자로 잘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의 꿈 의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마상대회에서 목숨을 잃는 선수는 다름 아닌 당시 국왕 앙리 2세였다. 쉬농소 성과 얽힌 이야기로 잘 알려진 여왕 까뜨린느의 남편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때까지 의사의 신분으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전념했지만 자주 보이는 환상과 미래에 대한 환영에 점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일은 틀림없이 일어난다는 예견아래 왕비 까트린느에게 미리 고한다. 그 장면도 영화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프랑스 고성 중 가장 여성다운 성으로 알려진 쉬농소 성(Chateau de Chenonceaux) 은 앙리 2세 사후 카뜨린느가 인수한 후 갤러리와 정원 등이 이탈리아식으로 개조 되었다. 지금도 정원은 메디치 정원이라 불리 워 짐. 1600년경 왕궁이 세느 강변 루부르 궁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프랑스왕실의 제일 중요한 성중의 하나였다.

<아침에 정부 디안느 드 푸와티에와의 잠자리에서 일어난 왕에게 왕비가 찾아온다. 그리고 왕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전한다. 그러나 왕은 왕비의 조언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오히려 저녁 만찬장에 왕비와 함께 찾아온 노스트라다무스에게 비웃듯이 예언한다.

“자네가 내 운명을 예언한다면 나도 자네의 죽음을 예언할 것이다. 내가 앞으로 죽는다면 자네는 오늘밤 죽을 것이다.” 사실 이미 노스트라다무스가 마시기 시작한 와인 잔에 독약을 풀어 넣었던 것이다. 앙리 2세의 정부 디안느 드 푸아티에의 소행이었다. 다행히 아직 다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노스트라다무스는 목숨을 유지했다.>

경기 당일 앙리 2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합에 직접 선수로서 참가한다. 처음에는 몇 차례 상대를 누른다. 모두가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지켜보는 가운데 한번 더 시합을 치른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이번에는 상대방 몽고메리 시위대장의 창에 눈이 찔려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중상을 입고 말에서 떨어진다. 즉시 투르넬레 궁전으로 운송되어 열흘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왕은 숨을 거둔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적중했다. 1559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왕비 까뜨린느에 관해서 몇 가지 더 예언한다. 왕비의 자식들이 모두 프랑스의 왕이 되지만 모두 단명할 것이라는 것을.

여왕 까뜨린느의 아들들은 모두 단명

까뜨린는 자식이 여럿 있었지만 모두 단명한다. 첫째 아들이 프랑스와 2세가 되었지만 1년 남짓 재위하고 미쳐 사망한다. 그 아내가 훗날 영국 스코틀란드의 메리 여왕이 된다. 엘리자베스 1세와의 다툼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처형된 비운의 여왕이지만 한때는 프랑스 여왕과 스코틀란드 여왕을 겸직할 정도로 큰 지위를 차지할 뻔했다. 짧지만 결혼생활을 프랑스 왕실에서 한다.

찰스 재롯트(Charles Jarrott)감독의 영화 <스코틀란드의 메리 여왕>에는 이들의 짧은 결혼생활이 그려진다. 잔잔한 물가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성이 등장하는데 어디서 본 듯 하다. 바로 쉬농소 성이다. 이들이 결혼 했을때는 디안느의 성이었지만 곧 시어머니 카뜨린느가 되찾는다.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쉬농소 성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메리 여왕 모습을 보여주는 주연 바네사 래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가 인상 깊다. 까뜨린느의 둘째 아들은 샤를 9세로서 3년 남짓 재위하고 독살당한다. 역시 쉬농소 성을 왕궁으로 사용했다. 1575년 여왕의 3남인 앙리 3세(Henri 3)가 루이즈 드 로렌(Louise de Lorraine)과 결혼한다. 앙리 3세는 취미가 괴팍하다고 알려져 있다. 여장을 즐겼으며 한때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와 혼담이 오간 적 도 있었다. 역시 쉬농소 성을 왕궁으로 사용했으나 본인이 죽자 왕비 루이즈는 왕을 추도해 모든 천장을 흑백으로 다시 칠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왕비 루이즈는 일명 <백색의 여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앙리 3세는 13년간 제위 했지만 모후 까뜨린느보다 오래 살지는 못했다. 이후부터 프랑스 왕궁은 파리 세느 강변에 새로 자리잡은 르브르 궁으로 옮겨진다. 까뜨린느는 넷째 딸의 사위 앙리4세에게 프랑스 왕좌를 물려준다. 발루아 왕조에서 부루봉 왕조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쉬농소성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문예를 사랑했던 뒤팽부인(Mme Dupin)에 힘입어 피해를 모면했고 19세기 후반에는 뻴르쥬 부인(Mme Pelouse)이 전체적인 복원을 실시하였다.

현재는 초콜렛 제조업자인 므니에가의 개인소유의 집이다.

왕실은 모두 쉐르강이 흐르는 안채에 자리잡고 있다. 성 내부는 1층에 프랑스와 1세의 방부터 시작하여 2층에 까뜨린느의 방과 5명의 여왕들의 방이 있고 첨두식 궁륭이 있는 예배실과 까뜨린느 드 메디치 도서관등이 있는데 백색의 여왕 루이즈가 하얗게 단장한 그랑드 갈르리가 유독 인상깊게 보인다. 특히 이 회랑에서 내다보는 경관은 무척 아름답다. 그랑드 갈르리에서 쉐르 강을 내려다보니 유유히 흘러가는 물위에 지나간 4백 여 년의 프랑스 왕실 역사가 드리워져 있다.

1186호 14면, 2020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