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독일의 향토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3)

향토영화(Heimatfilm)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영화 장르이나 독일에서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일반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장르이다.

이달 문화세상에서는 첫 번째 순서로 향토영화를 소개하고, 이어 독일 다큐멘터리영화 전반과 다큐멘타리 감독으로 잘 알려진 재독감독 조성형 감독의 작품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도록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② – 독일의 다큐멘터리영화

다큐멘터리 영화가 활동사진기의 발명과 동시에 시작되었고, 영상물이 영화라는 장르로 자리잡기 전에 많은 사람들은 활동사진의 복제성과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특징으로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상물들이 제작되어졌다는 점은 지난호에서 살펴본바 있다.

독일에서도 이와 같이 각 개인의 취미생활과 관련 자신들의 여행기, 동물이나 자연에 대한 영상물, 도시소개 등의 영상물이 주를 이루게 되었는데, 독일의 제3제국 나치정권은 이러한 다큐멘터리영화의 특성을 국가차원에서 활용하며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나치시대의 주된 다큐멘터리 영화는 제3제국의 홍보를 위한 다수의 다큐멘터리적 영상물들이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게르만족의 우월성이나, 독일의 아름다움 등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기는 하나, 다수의 문화적, 그리고 자연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전의 전통을 답습하여 자연에 관한 것이나 문화적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제3제국의 영향으로 정치나 국가홍보에 관한 영상물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의 변화

1950년대에 들어서면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큰 변화가 오게 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영향으로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상물도 심층보도물(Reportage)과 일상생활에 관련된 영상물 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미국과 영국으로부터의 영향과 함께, 영화관 상영 중심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TV에서의 방영이라는 변화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와 함께 지난 연재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동시녹음, 16mm 카메라, 일방향 마이크, 자연광을 이용한 촬영기술 등 촬영 현장의 비약적인 기술발전을 이룩한 60년대 초반의 작업환경 변화를 겪게 되어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후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1960년대 초반, 북부독일의 NDR 방송이나 WDR 방송은 일반 심층취재물이나, 일상생활등과 같이 미국과 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형태의 영상물 제작에 중점을 둔 반면,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한 SDR 방송은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역을 개척하게 된다.

이들은 “나치정부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인공의 영웅화, 현실에 대한 과장, 애국심 강조 등과 같은 폐해가 있었다는 점으로 인해 애써 그러한 면을 외면하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이를 정면으로 대면하고 극복하여야만 한다”고 밝히며 일상의 현실과 대면하여, 생생하고, 영웅화 작업과 인위적 극적 감동 조작이 없는 진정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여야 한다며, 현실을 영상에 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로 ‘Zeichen der Zeit(시대의 묘사)’ 라는 제목으로 16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방대한 보충 설명 책자가 제작되었다. 이 제작물들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다양한 면을 소개하고 있으며, 강의 교재로도 활용되어졌다.

‘Stuttgarter Schule’라 불린 이들은 지난 연재물에 소개한 Direct Cinema 형식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여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하였으며, 정치, 경제, 사회 등 현 시대의 모습을 여과 없이 생생하게 비판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 중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이란의 팔레비 국왕 부부의 1967년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당시 서독과 베를린 방문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 Roman Brodmann 감독의 ‘Der Polizeistaatsbesuch’이다.

당시 팔레비 국왕의 독일 방문을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Benno Ohnesorg이 독일 경찰의 발포에 생명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결국 이것이 적군파(Rote Armee Fraktion RAF)의 탄생 배경이 되고, 6월 2일이 그 기원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ARD 방송을 통해 ‘Zeichen der Zeit’의 연재물의 하나로 소개한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으며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Stuttgarter Schule의 활동은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에 있어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한편 동독지역에서는 ‘DEFA-Studio’를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서독지역과는 달리 TV와는 독립되어, 자체 제작 및 국가의 의뢰를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들 작품의 특징을 보자면, 1950년대에는 국가 재건을 기치로 ‘건설의 역군(Helden der Arbeit)’과 같은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독려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당시 동독지역의 생활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감에 따라 동독의 일상생활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들도 제작되었다.

동서독이 통일되기 직전까지 동독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DEFA-Studio는 서독이나 서구 사회와는 달리 35mm 필름만을 고수하며 흑백 영화를 제작하였으며, 분량도 30분 정도로 영화관에서 주 영화 시작 전에 관객에게 보여주는 영상물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이 동독의 DEFA 다큐멘터리 영화는 매우 독특한 형태를 지니며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사에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 현황

독일 영화시장에서 다큐멘터리영화는 정책적인 보호와 육성을 통해 특징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독일의 영화시장이 위축되고 있음에도 2016~018년 극장 개봉작 중 다큐멘터리영화의 비율은 21~2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관객점유율이 0.7~1.8%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티켓판매수익을 통해서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영화시장이 존속되는 배경에는 연방 또는 주(州)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콘텐츠 및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작동하며, 다큐멘터리장르의 제작을 지원할 때는 여타 장르에 비해 자격기준을 완화하는 등 시장현황을 고려한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해두고 있다. 이는 사업 성과보다는 문화적 산물로서 다큐멘터리영화에 가치를 두는 정책 기조에 기반한 것이다.

1189호 23면, 2020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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