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조선후기 200년의 대표적인 화가 삼원삼재(三園三齋) ⑥ 혜원(蕙園) 신윤복

조선후기 200년의 대표적인 화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뛰어났던 6명의 화가를 삼원삼재(三園三齋)라고 표현한다.

삼원삼재(三園三齋)의 삼원은 호가 원(園)자로 끝나는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 오원(吾園) 장승업을 말하며, 삼재는 호가 재(齋)자로 끝나는 겸재(謙齋) 정선, 현재(玄齋) 심사정, 공재(恭齋) 윤두서를 지칭한다. 공재(恭齋) 윤두서 대신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을 포함 시키기도 한다.


혜원(蕙園) 신윤복: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멋을 은은하게 표출한 조선 말기 화풍의 선구자

신윤복(申潤福) (1758 ~ ?)은 조선후기 풍속 화가로 그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몹시 희귀하여 관찬문서나 개인문집류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에 관한 기록과 연구를 종합하면 신윤복 부자 (父子) 모두 회화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예조 산하의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라는 것과 첨사(僉使)벼슬을 한 혜원은 너무 비속한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난 후 직업화가로서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알 수가 있다.

단원 김홍도, 긍재 김득신, 오원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 4대 풍속화가로 손꼽힌다.

신윤복의 풍속화는, 사회 각층을 망라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달리, 도회지의 한량과 기녀 등 남녀 사이의 은은한 정을 잘 나타낸 그림들로 동시대의 애정과 풍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윤복은 남녀간의 정취와 낭만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섬세하고 유려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즐겨 사용하여 그의 풍속화들은 매우 세련된 감각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인물화에 있어서는 대체로 얼굴이 갸름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형태로, 때로는 머리카락 하나까지 그려낼 정도로 섬세하고 유연한 선을 사용했다. 또한 그는 중국과 서양 상인을 통해 들어온 안료들을 이용하여 붉은 색, 파란 색, 노란 색 등 그림에 다양한 색채를 입히기도 했다. 신윤복의 풍속화들은 배경을 통해서 당시의 살림과 복식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등,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멋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혜원의 그림에는 젊음이 있고 은은한 남녀의 정이 깔려 있다. 그림의 주제가 선명하여 보는 이에게 내용 전달이 직선적이다. 오늘날에 보기에도 낯 붉어질 내용들도 없지 않으나 , 화가는 천재성을 발휘하여 승화된 아름다움으로 이를 고양시키고 있다. 농염한 중에도 절제가 있고 과감한 노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연스레 보이게 하는 구도의 묘가 있다.

그는 산수·인물·동물 등 여러 분야에 두루 능한 직업화가이지만, 시문에도 조예가 있고 서예에도 뛰어 났으며 그가 추구한 그림세계는 진경시대 문화의 낭만상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신윤복의 작품에는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것 이외에도 무속(巫俗)이나 주막의 정경 등 서민사회의 풍모를 보여주는 순수한 풍속화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으며, 산수화는 담묵(淡墨)과 담채(淡彩)를 주로 사용해 참신한 감각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등 조선 말기 이색화풍의 대두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미인도(美人圖)와 월하정인(月下情人)의 매력

보물 제1973호 신윤복의 ‘미인도’

아담한 얼굴에 작은 아래턱, 좁고 긴 코에 다소곳한 콧날, 약간 통통한 뺨과 작은 입, 흐릿한 실눈썹에 쌍꺼풀 없이 가는 눈, 가녀린 어깨선과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치마, 치마 밑으로 살짝 내민 왼쪽 버선발….

신윤복의 미인도(18세기 말~19세기 초)는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신윤복은 화면에 이렇게 적었다. ‘盤礡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반박흉중만화춘 필단능여물전신)’. 그 뜻을 풀어보면 이렇다. ‘가슴속 깊은 곳에 서려 있는 춘정, 붓끝으로 능히 그 마음 전하도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아련함이 묻어나는 눈빛. 이 여인의 눈은 작고 쌍꺼풀이 없다. 요즘엔 쌍꺼풀 있는 큰 눈을 좋아하지만, 조선시대엔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을 미인의 눈으로 여겼다. 머리엔 큼지막하게 머리카락을 틀어 올렸다. 이런 머리를 트레머리라고 한다. 일종의 장식용 가발이다. 조선 후기엔 부녀자들 사이에서 이 트레머리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 사치가 너무 심해 영조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여인의 저고리는 짧고 치마는 배추포기처럼 부풀어 있다. 여인은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옷고름에 달아놓은 삼작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노리개는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의 허리에 다는 장신구를 말한다. 장신구를 다는 술이 하나면 단작노리개, 술이 세 개면 삼작노리개라고 한다.

그림 속 여인은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기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생이든 아니든 그 우아함과 품격은 대단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미인으로 생각했는지, 당시 여인들의 패션은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신윤복 그림은 산뜻하고 세련된 색감이 두드러진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조선시대 그림치고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월하정인(月下情人)은 신윤복 그림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명작이다.

국보 제135호 신윤복의 ‘월하정인’

초승달인 듯 어스름 달빛 아래 담 모퉁이에 숨어 한 쌍의 남녀가 밀애를 나누고 있다. 쓰개치마를 쓴 젊은 여인과 초롱을 들고 허리춤을 뒤적이는 총각. 총각은 수염도 나지 않은 앳된 양반이다. 밀회를 즐기기 위해 의관을 정제했는데 어딘가 서툴러 보인다.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는 표정에서 그의 연정이 더 애틋하기만 하다. 여인이 입은 저고리는 삼회장이다. 소매 끝동, 깃, 고름을 자주색으로 꾸민 삼회장 저고리. 고급스러운데다 멋스러움이 여간 아니다.

1196호 20면, 2020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