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싸움 – 약탈 문화재 논쟁

약탈되거나 밀반출된 유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 간 논쟁은 지구촌 최대 문화 이슈 중 하나다. 빼앗긴 측은 자국의 역사와 전통이 깃든 유산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며 당위성을 주장한다. 반면 소장자 측은 취득 당시의 합법성을 내세우거나 최상의 보존을 위해 현상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네페르티티 흉상, 파르테논 마블 등 반환 논란이 거센 문화재들과 약탈 피해국들의 유물 환수 노력과 성과에 대해 알아본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타국살이 문화재

네페르티티 왕비는 기원전 14세기 고대 이집트 아멘호텝 4세의 부인으로 1912년 나일강변에서 석회암 흉상이 발견됐다. 47㎝ 높이의 채색 흉상을 찾아낸 독일은 이집트 관리들이 유물의 진가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흉상에 석고를 발라 반출했다.

이집트는 1923년 독일이 흉상을 전시하자 즉각 반환을 요구했지만 독일은 발굴 당시 협약대로 양국이 유물을 공정하게 나눠 가졌다며 지금껏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스는 이집트와 함께 대표적인 문화재 약탈 피해국으로 꼽힌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도 약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 신전의 외벽 상단은 본래 163m 길이의 아름다운 채색 대리석 부조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 외교관 엘긴 경(卿)은 수년에 걸쳐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뜯어내 반출한다. 고대 그리스 유물로 자신의 저택을 꾸밀 심산이었다.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져 1816년 조각품을 모두 영국정부에 매각하게 된다. 이후 파르테논 마블은 엘긴 마블로 이름이 바뀌어 대영박물관에 소장된다.

그리스는 독립할 무렵인 1832년 이후 파르테논 마블의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은 합법적 절차를 통해 조각상을 입수했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위대한 문화재는 국경이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파르테논 마블이 헬레니즘 문명의 상징적 약탈 문화재라면 키루스 점토판은 오리엔트 문명을 대표한다. 가로 22.5㎝, 세로(최대) 10㎝ 크기의 원통형 점토판에는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 키루스 2세의 바빌론정복 기록과 함께 피정복민의 종교 자유 허용 등 박애와 관용의 정신이 새겨져 있다. 1879년 영국인 호르무즈 라삼이 찾아냈으며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페르시아의 후예를 표방하는 이란은 키루스 점토판을 자국의 문화재로 인식하고 있다. 2010년 이란국립박물관이 키루스 점토판을 대여해 전시했을 당시 이란의 유력 언론들은 “약탈당한 유물을 이제는 돌려받아야한다”고 촉구했지만 키루스 점토판은 짧은 귀향을 마치고 영국으로 되돌아갔다.

제국주의 시대 약탈 문화재

경매 등 국제 예술품 시장에서 거래

프랑스와 영국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막바지에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인 베이징 원명원(圓明園)에 침입해 이를 파괴하고 국보급 문화재들을 대거 약탈해 갔다.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제를 위해 청동으로 정교하게 제작해 원명원 연못가에 세워 놓은 12지신상도 그중 하나였다.

서구 열강의 원명원 약탈 후 149년이 지난 2009년 초 12지신상 중 쥐 머리, 토끼 머리가 파리의 크리스티경매장에 나타났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이 생전에 소장했던 두 청동상의 경매 입찰은 중국인들의 거국적인 분노를 일으키며 약탈 문화재 논쟁에 불을 지폈다.

중국은 “약탈한 문화재를 경매 처분하는 비상식적인 행위는 중국 인민의 문화적 권리와 민족 감정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경매는 한 중국인이 고가에 낙찰 받았다가 대금 지불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유찰시켰다.

현재 원명원 12지신상 중 호랑이, 원숭이, 소 머리는 중국의 바오리(保利) 그룹이 거액을 투자해 사들여 바오리 예술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말, 돼지 머리는 마카오의 거부 스탠리 호가 구입해 중국 정부에 헌납했다. 나머지 용, 뱀, 양, 닭, 개 머리는 소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기나긴 유랑 생활 마치고 그리던 고국의 품으로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 아름답고 세밀한 문신을 새기는 전통이 있었다. 문신은 마오리족의 신화와 역사를 담고, 출신과 지위를 나타내는 예술적 상징 체계였다.

특히 공동체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죽으면 문신이 새겨진 머리를 잘라 미라로 만들어 집안 대대로 보관했다. 부족 간 전쟁에서 사망한 전사들의 머리도 미라의 대상이 되었다. 머리 미라는 수백 년 동안 마오리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었다.

‘토이 모코’로 불린 마오리족 머리 미라는 뉴질랜드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약탈과 불법 거래의 대상이 됐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유럽의 탐험가들과 상인들이 마오리족 공동체에서 반출한 머리 미라 수백 개가 20세기 초까지 유럽 각지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에게 팔려 나갔다.

뉴질랜드는 1990년대 초부터 토이 모코 반환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테 파파 통가레와 국립박물관과 마오리족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마오리족 정신의 복원, 영혼의 안식을 위한 귀환’을 내세우며 프랑스,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박물관들과 협상을 벌여 최근까지 300여 개를 돌려받았다.

1200호 30면, 20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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