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신독일영화 (Neuer Deutscher Film) ④

폴커 슐렌도르프 (Volker Schloendorf)

Volker Schloendorf

슐렌도르프는 1939년 3월 31일 독일 비스바덴에서 태어났다. 1956년 김나지움 학생시절 2개월 예정으로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도착하였고, 파리의 예술세계에 매료된 슐렌도르프는 그 후 파리에 10년간을 머물며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과하고, 파리에서 경제학과 정치과학을 전공했다. 영화 연출에 뜻을 두면서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이덱(IDHEC)에 입학해 졸업 후 1960년대에 장 피에르 멜빌, 알랭 레네, 루이 말 등 다양한 프랑스 감독들의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았다.

1964년 슐렌도르프는 로버트 무실(Robert Musil)의 소설 <젊은 퇴를레스의 고뇌 Der Verwirrungen des Jungen Toerless>를 각색한 대본을 받아보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한다.

프랑스에서 보낸 10년 간의 경력을 통해 그는 동세대 독일 감독들과 차별화되는 세련된 기교와 연출을 선보이며 ‘아버지의 영화’를 부정하며 ‘오버하우젠 선언문’을 낭독했던 ‘신독일영화’의 대표주자로 발돋움하게 되는 데에는 그의 첫 작품인 <젊은 퇴를레스 Der Jungen Toerless, 1966>가 큰 역할을 하였다.

1차세계대전 이전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류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소년들 사이에 구성되어가는 파괴성-심리적 권력관계를 묘사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퇴를레스는. 이 권력 게임에 직접적 참여자도 아니요, 완전한 방관자도 아니며, 또 적극적인 비판자도 아닌 위치에 서서, 학급동료들이 교묘한 가해자와 비굴한 피해자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결국, 퇴를레스는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적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20세기 초반 독일 역사를 우화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슐렌도르프의 <젊은 퇴를레스>는 당시의 영화비평가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았고, 1966년 독일의 ‘최우수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그리고 ‘최우수 대본상’을 수상하며 ‘신독일영화’의 초기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영화로 평가받게 되었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슐렌도르프는 주로 문학작품 각색에 관심을 기울였다.

<젊은 퇴를레스>는 로버트 무실의 소설을, ‘신독일영화’ 최초로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양철북 Die Blechtrommel 1979>은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속임수의 순환>(1981), <호모 파버 Homo Faber, 1991>는 막스 프리쉬의 소설에 각각 바탕을 두고 있다.

슐렌도르프 감독의 1970년대 ‘신독일영화’ 전성기 영화들에는 강렬한 비판의식과 화려한 수사법이 있었다. 하인리히 뵐의 소설을 영화화 한 그의 출세작인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1975>에는 적군파의 테러를 정치적 입지의 확대 계기로 삼고자 광분하던 보수 세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양철북>에는 과거 나치를 추종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직설적이고 치열한 풍자와 비판이 담겨 있다.

이후 <후보 Der Kandidat, 1980>, <전쟁과 평화 Krieg und Frieden, 1981> 등의 다큐멘터리 작업도 했다.

<세일즈맨의 죽음 Tod eines Handlungsreisenden, 1985>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노인의 항거 Ein Aufstand alter Männer, 1987> 등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후 얼마간의 공백을 보낸 뒤 돌아와 <호모 파버, 1991>, <팔메토 Palmetto – Dumme sterben nicht aus, 1998>등을 만들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레전드 오브 리타 Die Stille nach dem Schuß, 2000>로 다시 비평가들에게서 주목받게 된다. <레전드 오브 리타>는 1970년대에 활동한 서독의 적군파(RAF) 테러리스트 잉게 비트의 실화에서 출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까지의 독일사회를 다루고 있다.

이념이 아니라 애인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된 한 동독 여성의 동성애와 이성애, 배신과 초조함 등을 냉정하고 간결한 태도로 들려주고 있는 이 영화는 세상에 대한 가해자이며 동시에 시대의 희생자인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루며 냉전시대의 사회상을 고발하고 있다.

2011년 제작된 <아침의 바다 Das Meer am Morgen>는 1941년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41년 10월 화창한 어느 일요일 프랑스 낭트시 대로에서 독일군 장교가 피살된다. 독일은 이에 대해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탄압으로 범인을 색출하려하고, 프랑스인들은 반독감정으로 이에 대항하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결국 17세의 소년 귀 모퀴(Guy Môquet)가 처형되는데, 이후 그는 프랑스인들에게는 나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 영화는 슐렌도르프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차분한, 그러나 강력한 메시지 전달 등이 아우러진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슐렌도르프는 전쟁과 사회구조의 모순을 감독 개인의 경험에 의지하여,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방법을 더해 흥미로운 영화들을 우리에게 선보여 주었다. 이차 세계 대전 후유증 그리고 나치 부역자들의 전후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된 모습에서 느껴지는 좌절감,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의 금전 만능주의에 대한 고찰이라는 독일사회에 대한 감성의 면면을 작품에 드러내 보였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는 지적인 창조물이었다. 영화를 현실의 충실한 재현에 머물러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영화 안에서 삶을 재해석 하고자 했다. 독일인들의 삶과 역사의 단순한 배열들을 보여 주면서, 거기서 수많은 파생 의미들을 관객에게 제공해 주고자 했다.

폴커 슐렌도르프가 새로운 독일영화의 대표적 감독들과 공유하는 감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한 해석에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벤더스나 파스빈더 또는 헤어초크 등에서 보이는 개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독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추구하되 그 원천을 문학작품에서 찾고 이를 영화화 해 관객에게 작품 속에서 이를 직접 느끼게 하고 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빔 벤더스, 폴커 슐렌도르프.

이 일군의 감독들은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을 통해 ‘이제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젊은 감독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다. 파스빈더와 슐렌도르프는 파시즘에 경도되었던 아버지 세대의 추악함을 고발한다. 세상과 결별하고 도시를 떠도는 빔 벤더스의 영화 속 인물들 역시 아버지의 세대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시키고자 했다.

이들 3인의 감독은 ‘신독일영화’ 세대의 이상을 대표하는 존재들이다.

1201호 20면, 2021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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