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한국의 민화(民畵) (1)

우리 민화는 민족문화의 여러 모습을 폭넓게 묘사했으며, 그 중에도 생활철학과 생활감정을 그림 속에서 구체화시키면서 민중의 생활 속에 정착하고 존속해 왔다. 이 속에는 기원과 위안으로, 또는 보는 즐거움을 담고 있다.

따라서 민화는 민족의 창의성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고, 생활감정과 미의식을 느낄 수 있는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화는 풍속사적인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지거나, 궁중회화(궁화)나 문인화(사인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회화 장르로 폄하되어왔다. 그동안 한국미술사 연구도 궁중회화와 문인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게 사실이며, 민화는 오랫동안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문화사업단에서는 4회에 걸쳐 한국 민화의 특징, 발달과정, 한국민화의 종류 등을 소개하며 한국 민화를 집중 조명해 보며 아울러 세계 각 지역의 민화 등도 살펴보도록 한다.

한국민화의 특징

민화(民畵)는 과거에 실용(생활공간의 장식이나 민속적인 관습에 따름)을 목적으로 무명인에 의하여 그려졌던 대중적인 실용화를 말하는데 그 기원은 선사시대 암각화(岩刻畵)에서 물고기·거북·사슴·호랑이 등에서 민화의 원초적인 화맥(畫脈)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四神圖)·신선도, 백제 산수문전(山水文塼)의 산수도, 등은 민화적 소재이며, 특히 처용설화(處容說話)에서 처용의 화상을 문설주에 붙이면 역신(疫神)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벽사(辟邪)를 위한 그림을 대문에 붙였던 풍습은 조선 말기까지도 별성마마 그림 등을 붙이던 풍습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 보이는 세화(歲畫)와 도화서 화원들의 그림에 대한 기록을 볼 때 민화는 우리 민족과 함께 존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민화의 기능과 역할

민화의 기능과 역할은 그것이 필요로 했던 시대의 생활과 연관시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민화는 회화이면서 전통회화에 비해 생활미술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민화의 소재들은 순수감상을 위한 것들도 있긴 하지만, 그 이외의 기복축사(祈福逐邪), 벽사진경(辟邪進慶), 권선징악(勸善懲惡)과 같은 기원이나 소망, 그리고 민간신앙이나 종교적인 측면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효(孝), 제(悌), 충(忠), 신(新),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문자도를 보면 일상생활의 도덕이나 윤리규범이 담겨있고, 책거리 그림에는 학문존숭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특히 문자도는 당시 서민대중을 유교적 도덕관으로 교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값싼 가격으로 대량보급이 가능했던 문자도는 서민사회를 유교적 도덕이나 윤리속에 질서 있게 유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믿어진다. 그리고 모란꽃이나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와 게, 그리고 백동자등이 많이 그려진 것은 부귀영화나 부귀다남, 자손번성 같은 민간의 소박한 염원을 적극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이렇게 볼 때 민화는 우리 선조들의 꿈과 사랑, 도덕과 윤리. 신앙과 종교, 학문존숭 등의 내용을 표현하는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지니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민화가 지니고 있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능은 장식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민화는 대개 화려한 채색과 뛰어난 장식성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산수, 인물, 영모, 화조등 다양한 주제의 그림들 중에서도 현재 남아있는 민화의 절대 다수의 화조화로 이루어진 것을 보더라도 민화의 장식적 기능이 대단히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화조화에서도 서민 대중이 바라는 소박한 소망과 기원이 담겨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 장식적인 면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민화는 정통회화보다도 우리 선조들의 소망과 염원의 다양한 측면을 훨씬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민화는 정통회화 못지않게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였다고 판단된다.

민화의 특징

민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간단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정통회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서 정통회화의 특징과도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약간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굳이 이야기한다면 민화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지니고 있던 천진성이나 해학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표현방법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단순성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민화에서는 비단 단순성만이 아니라 주제나 내용, 표현방법 등 여러 측면에서 집합적으로 볼 때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이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성격과 함께 민화를 더욱 풍요로운 문화유산으로 보배롭게 한다. 그리고 정통회화에 비해서 채색이 특히 강하고 장식성이 두드러진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조선시대의 회화는 유교사상이나 유교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수묵 담채가 기본을 이루고 있었던 것에 비해 서민 대중사이에서 유행한 그림, 또는 궁중의 인습적 그림에서는 강한 채색을 지니고 있어서 큰 대조를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회화에서는 채색을 중시하지 않았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강한 채색 중에서도 산수화에서는 청록산수의 전통이 강하게 전해서 내려온 것을 볼 수 있고 모란꽃 그림 같은 데에서는 밝고 선명한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정통회화의 화조화에 비해 대단히 장식성이 강하고 강렬한 한국적 특성을 꾸밈없이 나타낸다는 점이 주목된다. 민화의 색채는 우리의 색채감각이나 미의식을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민화의 의의

민화는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정통회화 이상으로 한국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정통회화가 교육받은 사람의 세련된 말씨에 비유될 수 있다면 민화는 순박한 농부의 투박한 말씨에 비유될 수 있을 듯하다. 논리정연하거나 조리 있지는 않지만 농부가 불쑥 던지는 말 한마디에 생활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진리가 진솔하게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민화는 우리의 민족성과 문화적 특성을 가식없이 드러내 준다.

또한 민화는 서민대중의 생활과 염원을 드러내고 문화적 성격과 독창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화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당시 역사 문화와 관련하여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문자도

1202호 20면, 2021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