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 (13)

Darmstadt: Ludwig 가의 영광과 비극이 한자리에 ⑥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과 Ernst Ludwig의 발자취를 따라

에른스트 루드비히의 꿈과 땀으로 일궈낸 마틸데 언덕(Mathildenhöhe)

Haus der Geschichte에서 왼쪽으로 대각선으로 웅장한 Darmstadtium 건물이 보인다. 다름슈타트 시를 “과학도시 다름슈타트”로 불리게 한 다름슈타트의 자랑이기도 하다. 다름슈타트 연구진은 1994년 11월 9일 납과 니켈을 혼합하여 새로운 화학원소 DS를 개발하게 되고, 이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원소 주기율표에서 110번의 번호로 등재하게 된다. 다름슈타트 시는 이를 기리며, 새로운 과학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기대하며 Darmstadium을 건설하는데, 18,000m2의 규모의 Darmstadium은 2007년 12월 6일 개관하였다.

다름슈타트 공과대학과 과학분야의 업적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도록 하고, 우리는 Darmstadium 옆 길 Frauenhoferstrasse와 Erich-Ollenhauer-Promenade를 거쳐 Nikolaiweg을 따라 마틸데언덕(Mathildenhöhe)을 오른다.

마틸데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 결혼기념탑, 미술전시관 등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 Nikolaiweg 초입부터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틸데 언덕(Mathildenhöhe)

마틸데 언던은 해발 180m로 다름슈타트 시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원래는 대공의 정원이 있던 곳이었다. 대공 루드비히 3세가 자신의 아내인 마틸데 카롤리네(Mathilde Karoline)의 이름을 따서 마틸데 언덕(Mathildenhöhe)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마틸데 언덕은 결혼기념탑과 러시아 정교회예배당, 그리고 당시 이 곳의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등이 조화를 이루는 다름슈타트 시의 문화 상징이 되었다.

한편 헤센-다름슈타트의 마지막 대공 에른스트 루드비히는 1899년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활동한 분리파, 즉 제체시온(Secession)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요제프 올브리히(Josef Maria Olbrich)를 다름슈타트로 초청하여 마틸데 언덕을 예술가 마을(로 만들도록 주문하였다. 더불어 에른스트 루드비히는 이곳으로 온 예술가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이 몰려들었고, 마틸데 언덕을 중심으로 다름슈타트의 예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예술가 마을이 만들어진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름슈타트에서 절대 지나쳐서는 안 될 장소로 손꼽히는 것을 보면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꿈과 열정은 헛되지 않았다.

Darmstadt시는 2014년 7월 마틸데 언덕의 전시관을 980 만 유로에 개조 할 것을 발표하였고, 이어 2019 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신청하였다.

결혼기념탑(Hochzeitsturm)

마틸데 언덕 정상에 우뚝 선 48.5m 높이의 특이한 모양의 탑은 결혼 기념탑(Hochzeitsturm)이라 부른다. 1905년 에른스트 루트비히 대공은 Eleonore zu Solms-Hohensolms-Lich괴 두 번째 결혼하게 된다. 이를 기념하기위해 건축된 결혼기념탑은 올브리히의 설계와 감독 하에 서로 다른 높이와 용도를 지난 7층의 탑모양으로 지어지고, 1908년 완공, 개막식을 가졌다.

올브리히가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위해 전시관(Ausstellungsgebäude)과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탑은 마치 다섯 손가락을 편 손바닥의 모양을 하고 있어 다섯손가락의 탑(Fünffingerturm)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 특이한 모양은 “결혼 선서”를 형상화한 것이다.

러시아 예배당(Russische Kapelle)

마틸데 언덕에서 특별한 건축물은 러시아정교회 예배당이다. 예술가 마을의 건축물도 아니고, 에른스트 루드비히 대공과의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데, 어떤 연유로 이 언덕에 러시아정교회 예배당이 지어졌을까?

이제 그 사연을 따라가 본다.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여동생인 알릭스(Alix, 러시아식 개명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황후가 되었다. 니콜라이 2세는 아내의 고향인 다름슈타트를 함께 방문할 때 자신이 예배를 드릴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당을 만들기를 원했고,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허락 하에 당시 40만 마르크에 달하는 모든 건축 비용을 니콜라이 2세 자비로 부담하여 1899년 마틸데 언덕에 예배당을 만든 것이다. 건축은 Leontij Benuas의 계획에 따라, 예술적 장식은 상징주의 화가이자 전위 예술가 Victor Vasnezov가 디자인했다. 정교회 앞 분수대는 제 4차 예술가 마을 전시에 맞추어 Jugend 양식으로 1914년에 완성되었다.

한편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후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 모두는 구금되고 이듬해인 1918년 7월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밤에 혁명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또한 에른스트 루드비히의 누나인 엘리자베스도 러시아 세르게이 모스크바대공과 결혼을 했는데, 엘리자베스도 하루 앞서 혁명군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이렇듯 마틸데 언덕의 러시아정교회 예배당은 그 화려한 외양과 함께 에른스트 루드비히가의 비극도 상징하고 있다. 에른스트 루드비히가의 비극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게 된다.

예술가마을 전시관(Ausstellungsgebäude)

미틸데 언덕 정상에 웅장하게 자리 잡은 전시관(Ausstellungsgebäude)은 이곳에 오르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미술관으로 알고 있는 이 전시관은 예술가 마을을 총지휘한 요제프 올브리히가 1907-1908년 건축한 전시관으로 다름슈타트 예술가마을 ( Darmstädter Künstlerkolonie)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밝은 회색의 자갈회반죽을 입힌 이 전시관은 재료의 질감을 강조한 결혼기념탑과 역동적인 대조를 이루며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으며, 결혼기념탑과 함께 다름슈타트의 상징물로도 유명하다.

1908년 완공된 이래 이 건물은 전시 목적, 공공 행사 및 도시의 문화 모임에 사용되고 있다. 다름슈타트 시는 2014년부터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시작하였으며, 2021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장 할 예정이다.

◆ 바우하우스에 앞서 현대 건축을 준비하다: Darmstädter Künstlerkolonie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유럽예술계는 “신예술”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몰려왔다.

영국에서는 “New Art” 프랑스에서는 “art nouveau”,독일에서는 Jugendstil, 오스트리아에서는 Secession 또는 “Vienna Secession”이라고 불리며 형식에 얽매인 기존의 예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로 엄밀히 말하자면 건축 양식/디자인 양식이다.

헤센-다름슈타트의 마지막 대공인 에른스트 루드비히는 이러한 「미술공예운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헤센-다름슈타트의 번영을 일으키고 독자적인 예술을 키워내 산업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명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유능한 예술가들을 모으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람회를 개최하는 등의 재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수단을 강구한다.

루드비히 에른스트는 유럽 전역으로부터 교수칭호와 생계를 보장하며 유명 예술가들을 초빙하였다. 그리고 이들 예술가들을 위한 마을과 전시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다름슈타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마틸데 언덕(Mathildenhöhe)을 기증한다. 이렇게 설립된 예술가들의 생활 및 작업 조합이 바로 “다름슈타트 예술가마을(Darmstädter Künstlerkolonie)”이다. 다름슈타트 예술가마을 창립회원으로는 Joseph Maria Olbrich를 비롯하여, Peter Behrens, Paul Bürck, Rudolf Bosselt, Hans Christiansen, Ludwig Habich, Patriz Huber 등 당시 신예술(Jugenstil)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예술인들이었다.

이들 예술가들은 또한 전람회도 개최하였는데, 1901년부터 시작된 전람회는 1914년까지 4회가 열렸다.

1차 전시회(1901)

“Ein Dokument deutscher Kunst”라는 주제로 열린 1차 전시회는 1901년 5월부터 10월까지 개최되었다. 당시 전시회를 위해 예술가들은 스튜디오, 거주용 주택 등 다양한 용도로 지어진 주택과 목조로 지어진 가건물 형태의 건축물들이 전시되었다.

전시회는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택, 아틀리에 등 기본적으로 후에 빈 공방(工房) 형성에 영감이 되었고, 다름슈타트가 제 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근대 디자인의 중요한 중심지로 대두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차 전시회 당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들로는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건축물로는 에른스트 루트비히 저택 이라는 중앙 스튜디오 건물과 여덟 채의 아티스트 주택들로서 다음과 같다.

Ernst-Ludwig-Haus, Häuser der Künstler, Haus Deiters, Großes Glückerthaus, Kleines Glückerthaus (Haus Rudolf Bosselt), Haus Behrens, Haus Olbrich, Haus Christiansen, Haus Habich, Haus Keller.

이 주택 모두 마틸데 언덕과 그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 100년전 건물이라고는 믿기 어렵게 뛰어난 디자인과 미적 감각이 살아있는 주택들, ”예술가 마을” 운동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의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주택은 Ernst-Ludwig-Haus로서, 올브리히가 설계, ‘예술인 마을“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건축을 담당하였다. 1980년대 개보수를 거쳐 현재는 Museum Künstlerkolonie Darmstadt로 사용되고 있다. 위에 언급한 다른 주택들에서도 당시의 예술사조를 살펴볼 수가 있지만, 특히 Ernst-Ludwig-Haus는 ”예술가 마을“의 정신과 그들이 추구했던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꼭 한번 들러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Ernst-Ludwig-Haus

이후 2차(1904년), 3차(1908년), 4차(1914년)에 전시회도 개최되어, 다름슈타트에서의 신예술운동은 독일과 유럽 전역의 예술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 전시회에서 건축된 현존하는 대표 건축물로는 Eckhaus, Blaue Haus, Graue Haus(이상 2차 전시회), Ausstellungsgebäude, Haus Sutter, Haus Wagner-Gewin(이상 3차 전시회) 이다. 그리고 4차 전시회에서 특기할 것은 마틸데언덕의 플라타너스 공원(Platanenhain)을 Bernhard Hoetger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플라타너스와 어우러진 조각공원으로 변화시킨 점이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으로 예술가마을의 활동은 정지되었으며 1929년 Darmstädter Künstlerkolonie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다름슈타트 예술가마을”이 표현한 유겐트슈틸은 프랑스 아르누보의 정교한 고급양식과는 반대로, 수수하고 아늑한 매력을 주었다. 표준화된 가구품목들은 산업제작기법으로 생산할 수 있는 더욱 단순하고 기능적인 작품에 대한 독일 디자인 개혁가들의 열망도 충족하고 있었다.

다름슈타트 마틸데 언덕을 중심으로 펼쳐진 ‘예술가 마을’ 운동은 “바우하우스(Bauhaus)에 앞서 현대 건축을 준비한” 즉 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에서 시작된 바우하우스를 견인한, 예술사와 건축사에서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었다.

1205호 20면, 2021년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