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한국의 민화(民畵) (4)

세계 각 지역의 민화

19세기 유럽에서는 농민미술(peasant art)이, 미국에서는 민간미술(folk art)이 발흥하였고,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는 인간의 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서민미술을 예술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구의 민간미술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의 산물로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부상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민간미술 개념이 일본에 들어와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는 속화라고 불리던 민간의 그림을 ‘민화’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였고 이것이 한국에 전해져 적용되었다.
먼저 동아시아의 민화와 동아시아국가 민화들의 연관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동아시아의 민화는 새해에 길상, 벽사의 목적으로 그린 문배와 문신(門神)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중국의 연화(年畵), 한국의 세화, 베트남의 테트(tet)가 말해주듯이, 동아시아의 민화는 민간신앙의 기복의 염원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시작했다. 동아시아 민화의조형적 유사성을 통해 영향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민화 장르로 문자화를 들 수 있다.
중국과 조선의 문자화의 도상적 특징을 비교해보면, 중국 무호의 문자화가 조선 제주도의 문자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상해를 통한 중국 남방 민간연화와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베트남의 문자화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야나기 무네요시는 무명성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민화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나 서민화가가 서민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민화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의 경우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에 들어와, 신윤복 등이 즐겨 그린 기생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미인도 등의 조형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민화와 풍속화, 에도시대의 우키요에는 근대 전환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행한 서민미술이다.
베트남의 민화와 조선의 민화는 서로 직접 교류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두 나라가 문자화, 감모여재도, 화조화, 호랑이 그림, 백동자도, 삼국지연의도 등 유사한 주제의 민화를 제작했다는 점은 양국 민화의 친연성을 가늠케 한다.
한편, 미국과 유럽에서 민화는 ‘Folk Painting’, ‘Peasant Painting’, ‘Naive Painting’, ‘Innocent Painting’, ‘Volkskunst’, ‘Fork Arts’ 로 정의되고 있다. 즉, 정규적인 그림 교육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농민이나 어민, 또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농민화’ 등으로 불렀던 것이다. 유치하고 소박하며 솔직한 작품을 민화로 생각한 것이다.


반면에 동양의 민화와는 달리 낙관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없었으며, 실제 작가의 사인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농민이나 아마추어 작가의 사인은 없는 것과 다름없이 취급됨으로써, 유럽의 민화는 전문적인 직업 예술가의 작품과는 엄격하게 구분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 민화·민예로는 그림이나 조형 미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비전문의 아마추어, 농민들에 의한 그림이나 공예를 가리키는 것으로, 주로 집을 꾸미거나 일상생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실용적인 그림과 공예는 대부분이 유치하고 소박하고 솔직한 작품들로 전문적인 직업 예술가의 창조적이며 예술적인 창작과는 판이하게 구분된다.
이렇듯 한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민화는 민속화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림 공부를 제대로 못한 아마추어 농민들 또는 떠돌이 화가들이 일반 대중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고 그들의 취미에 맞도록 그린 원초적인 것이며 순박한 풍경. 인물. 초상. 풍속. 장식 그리스도교의 성화를 민화로 부르고 있다.
따라서 이런 민화(民畵)나 민예(民藝)는 정통적인 회화사(繪畵史), 미술사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언급된다 하더라도 매우 짤막하게 스치고 지나가게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화와 민예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구인들은 과학 물질문명이 가져온 인간의 상실, 일상생활의 기계화, 예술의 혼돈과 같은 정신의 위기 속에서 민화나 민예를 통해 사람의 본성을 아무런 가식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민예, 민화의 소박한 진실 속에서 삶의 진실,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처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민화와 민예에 대한 호칭, 범위, 정의에는 그 연구의 역사가 백년 가까이 되는 유럽과 미국에서조차도 일정하지 않다. 정통 회화사(繪畵史)나 조형 미술사의 대상이 되는 그림과 그렇지 못한 민화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하더라도 민화, 민예는 과연 어떤 작품이며, 누가 만들었으며, 어느 점에서 창조적인 예술과 다른가에 관하여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인정하는 기준은 아직 없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민화 호칭에 대한 민화 연구가(民畵硏究家) 심포지엄이 있어 다른 것은 그만두고 이름만이라도 통일해 보자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앞서 말한 ‘Fork painting’ 외에도 소박한 그림, 순직한 그림으로 부를 수 있는 낱말들을 따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유럽에서는 ‘농민화(農民畵)’라는 명칭도 사용되며 아마추어 그림이라는 표현도 있다.
누가 그렸는가 하는 점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면 한동안 민화는 지방의 이름 없는 시민들이 일상생활의 필요에 따라 서툴게 그린 초상화, 풍경화, 장식화, 성화(聖畵) 따위를 가리킨다 했었다. 이들은 물론 전문적인 훈련도 받지 못하고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 화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차차 더 많은 민화가 수집됨에 따라 민화를 그린 화가의 이름은 물론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와 지역에 따른 그림의 특성, 작품 활동의 양상, 작품의 형식 등 많은 점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래서 이름 없는 화가에 의해 제작되고 또 대량생산된 그림이라는 일반적인 민화의 정의에 대한 수정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 현재 유럽과 미국 민화계의 주요 논점이 되고 있다.
서양에서 민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링컨의 민주주의를 정의한 방식에 따라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어느 특정 계층, 소수의 특권 계층을 위한 그림도 아니며, 문화사의 큰 흐름 속에서 틀에 박힌 화가의 교육을 받은 배타적인 직업 화가의 집단이 아닌, 민중 누구나 아카데믹한 화업(畵業)의 이수 여부를 가릴 것 없이 그저 멋대로 그려낸 민중에 의한, 그리고 끝으로 고급 문화권에 속해 있거나 사회의 상류, 또는 지배 계층 등 특수층의 그림이 아니라 바로 모든 민중의 그림이라는 규정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누가 민중이냐, 아카데믹 한 화가는 민중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한 사회에 있어 그처럼 몇 마디 말로 구분할 수 있는 계층이 과연 존재했었느냐’ 하는 등 숱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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