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ulture의 원조’ 기산 김준근

조선의 풍속을 세계에 널리 알린 화가

풍속화가라면 역시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 등이 유명하다. 19세기 말 활약한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의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 당시의 자료 어디를 찾아봐도 김준근 관련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서예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오세창(1864~1953)이 1917~1928년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모아 간행한 <근역서화징>에조차 김준근의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후대에 기산의 풍속도를 본 이들은 ‘삼류화가’라며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기산에게는 ‘우리만 몰랐던 팩트’가 있다. 바로 19세기 말 외국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던 세계적인 화가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산의 풍속도는 외국의 개인 및 기관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 풍속화백과사전

기산은 1895년 국내 최초로 번역된 서양문학작품인 <천로역정> 조선어판 삽화를 그렸다. 또 영국 군인들의 백두산 등정기인 <백두산 가는 길(Korea and the Sacred White Mountain)>(1894), 미국 고고학자 스튜어트 컬린의 <한국의 민속놀이(Korean Games)>(1895), 독일인 안드레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1929) 등과 같은 책의 삽화도 그렸다.

특히 <천로역정> 삽화는 원책 그대로가 아니라 조선식으로 번안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인공인 ‘긔독교도(Christian)’가 갓을 쓴 조선인으로 등장한다. 또 조선의 산수와 생활상이 그대로 표현됐다.

조선판 <천로역정>은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 선교사인 제임스 S 게일(한국명 奇一·1863∼1937)이 1895년 번역한 책이다. 한국학 연구에도 힘쓴 게일이 김준근에게 <천로역정>의 삽화를 맡기면서 조선의 취향과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도록 주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적인 예로 ‘기독교가 미궁(美宮)에 다다랐다’는 내용을 그린 삽화를 보면 1907년 중국에서 번역된 <천로역정>의 ‘입미궁도(入美宮圖)’와 사뭇 다르다. ‘중국본’이 스케일이 큰 건물을 배경으로 미궁에 들어가는 장면을 그렸다면 김준근의 ‘조선본’은 지붕의 일부를 배경으로 주로 인간관계가 느껴지는 인물 표현을 강조했다. ‘중국본’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면 ‘조선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기산 김준근은 19세기말~20세기초 개항장인 부산의 초량과 원산, 인천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초량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라 외국인에게 개방한 개항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외국인 생활과 치외법권이 보장되어 자유롭게 무역과 기독교 전도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단오날 산에 올라 그네를 타는 모습을 그린 김준근의 풍속도.
함부르크 MARKK(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기산은 이곳에서 조선의 생활을 담은 ‘풍속도’를 그렸다. 특정 분야만이 아니었다. 생업과 의식, 의례, 세시풍속. 놀이 등 전 분야의 풍속을 아주 단순한 필치로 그렸다. 가히 ‘풍속화백과사전’이라 할 만 하다.

그 풍속 내용은 경직, 형벌, 놀이, 생활, 교육, 기생과 광대, 신앙 등 매우 다양하다. 기산은 외국인을 위해 한정품 개념으로 ‘100여점 한세트’ 단위의 풍속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제작된 기산의 그림은 당시 조선을 다녀간 여행가와 외교관, 선교사, 군인, 세관원 등에게 팔렸다.

이들이 가져간 <기산풍속도>는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등의 유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6년에는 캐나다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과 덴마크 국립박물관 등에서 ‘기산전시회’가 잇달아 열린 바 있다.

◈ ‘K-culture의 원조’

김준근의 풍속화 제작 활동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그림은 독일 베를린 민족학박물관(Ethnographic Museum)의 소장품이다. 독일의 한국학 학자 융커(Heinrich F. J. Junker, 1889~1970)는 베를린 민족학박물관의 김준근 풍속화가 고종의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P. G. von Mölendorff, 1847~1901)가 고종에게 하사받아 소장하던 것이라 전한다. 그가 조선에 거주한 1882~1885년에 김준근의 그림을 수집한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 스미스소니언기록보관소(Smithsonian Institution Archives)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인류고고학박물관(Museum of Archaeology and Anthropology)에 소장된 김준근의 풍속화는 메리 슈펠트(Mary Acromfie Shufeldt)가 1886년 초량에서 구입한 것이다.

메리 슈펠트는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을 이끈 미국 해군 제독 슈펠트(Robert Wilson Shufeldt, 1821~1895)의 딸로, 이들은 고종의 초청으로 1886년 조선을 방문했을 때 김준근의 풍속화를 구입하였다. 이 사실은 1895년에 출판된 컬린(Stewart Culin, 1858~1929)의 저서 『한국의 놀이(Korean Games)』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함부르크의 MARKK(Museum am Rothenbaum –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는 기산의 풍속화 79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들 대부분은 외교관 신분으로 세창양행(世昌洋行)을 설립한 상인(H. C. Eduard Meyer)이 수집한 것이다.

이경효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기산 김준근은 19세기말~20세기초 민속 전분야를 그린 수수께끼 인물이자 전세계에 조선을 알린 ‘K-culture의 원조’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기산 김준근은 장승업과 같은 천재화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인식처럼 3류 화가도 아니다”라며 “19세기 말의 김준근은 18세기 후반 김홍도가 이룩한 풍속화의 성취를 이어받은 화가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9세기말 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은 풍속화가이고, 그만한 기량을 갖춘 화가였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특히 <천로역정>의 삽화나 덴마크 국립박물관 소장 <기산풍속도> 등은 기산의 출중한 역량을 감지하기에 충분한 작품들”이라고 보았다(정병모의 ‘기산 김준근 풍속화의 국제성과 전통성’, <강좌미술사> 26권 26호, 한국미술사연구소, 2006에서).

1208호 30면, 2021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