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유물의 서글픈 유랑, 문화재 환수 시동

불법 반출 역사·기록 재조명, 공감대 확산

하반신만 남은 백제 반가사유상과 조각난 철화분청. 공주와 부여국립박물관에 소장 중인 온전치 못한 문화재의 모습은 타국에서 끝없이 유랑 중인 우리 문화유산의 현실을 반영한다. 공주시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을 맞아 해외 반출 문화재 찾기 운동에 나선 까닭이다.

공주시의회는 2월 25일 오전 10시 공주시청 집현실에서 ‘국외 소재 백제문화유산의 가치 조명’을 주제로 의정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정섭 공주시장과 이종운 공주시의회 의장, 공주시의원, 관계부서 공무원 등이 참석했다.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상근 이사장이 발제를 맡고,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윤용혁 회장과 (사)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정규홍 학술자문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종운 의장은 “여러 역사를 겪으며 많은 문화재가 파기되거나 유실·반출됐고, 침략 국가의 문화재로 등록돼 전시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 문화재가 돌아오지 못하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와 시의회는 올해부터 국외 반출 문화재 환수를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선다.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시민사회운동, 조례 개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구라 컬렉션반가사유상 가치

국외 반출 문화재 수는 지난해 4월 기준 19만 3136점으로 조사됐다. 유물은 21개국, 610여 개 기관에 소재하고 있다. 일본(8만 1889점)과 미국(5만 3141점), 중국(1만 2984점), 독일(1만 2113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중 충청권 문화재는 450여 점으로 6개 국가에 걸쳐있다. 상당수가 백제시대 유물로 일제강점기 시대 공주와 부여 고분 등에서 출토·반출된 경우가 다수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와 부여에는 온전한 반가사유상이 없고, 하반신만 남은 반가사유상이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백제계 반가사유상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대마도 정림사, 나가노 관송원 등에 있다”고 설명했다.

백제계 반가사유상 모습.
(왼쪽부터) 도쿄박물관 소장 보살반가사유상, 부여박물관 소장 하반신 반가사유상,
나가노현 관송원 반가사유상. 백제문화권인 부여와 공주에는 온전치 못한 반가사유상만 남아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도쿄박물관에 소재한 보살반가사유상은 ‘오구라 컬렉션’ 중 하나로 공주의 한 탑에서 발견돼 반출된 것으로 기록된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 강점기 당시 실업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한반도 등에서 수집해 간 유물을 말한다.

이 컬렉션은 도쿄박물관에만 1030여 점이 등록돼있고, 역사도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를 아우른다. 이중 39점은 일본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돼있다. 반가사유상은 총 11점이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다. 서산 마애반가사유상, 김제 동판반가사유상 등이 모두 국내에서 국보와 보물로 지정돼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 가치가 높다.

이 이사장은 “역사적 정의의 관점에서 불법으로 수집한 문화재는 반드시 반환돼야 한다”며 “원 소재지와 분리돼 존재하는 문화재가 본래의 가치를 잘 보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 국제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불법 수집으로 인한 유물 소장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변화”라고 밝혔다.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정 당시 이 컬렉션은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이 거부됐으나, 1980년대 들어 자손들이 도쿄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해 소유권이 바뀌었다.

이 이사장은 “한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 환수 요청을 했으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2015년 패소한 사례가 있다”며 “보살반가사유상의 소유자를 따지자면, 공주는 당사자다. 그리스가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기 위해 192년째 환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문화유산의 상속자인 시민들이 나서 끊임없이 반환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루베 불법 반출 유물 셀 수 없어

일제강점기 백제 유물 반출 피해의 대표적 사례는 일본의 학자이자 유명한 도굴꾼으로 알려진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 꼽힌다.

정규홍 (사)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학술자문위원은 “가루베는 공주시 일대 고분 1000개 이상을 조사했고, 실제 발굴한 유물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출토 유물과 날짜, 지역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해놓고 있고, 백제 고분 출토품을 토대로 저서를 내기도 했으나 소장 유물에 대해서는 실물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에 따르면, 당시 발표된 수필 등을 통해 가루베의 형제가 일본에서 골동점을 운영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도굴 또는 채집한 유물이 일본으로 수시 반출됐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셈. 와세다대학 아이즈 야이치 기념박물관 소장품 수집 경위나 도쿄국립박물관 유물 구입 목록 등을 통해서도 이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일본인에 의한 계룡산 도요지 도굴도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근처 밭이나 산을 통째로 매수해 땅을 파 도자기와 그 파편까지 모조리 구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20~1930년대 일본에서 열린 한국 분청사기 전람, 판매회 등의 자료목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온전한 유물이 셀 수 없이 국외로 반출됐으나, 정작 국립공주박물관에는 조각난 철화분청 조각이 소장돼있다.

윤용혁 공주향토문화연구회장은 “지난해 부여에서 ‘백제미소보살’을 시작으로 해외 반출 문화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며 “공주도 반출된 문화유산 중 환수가 필요한 중요 문화재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반출 경위나 기록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해야 한다. 오구라 컬렉션의 경우 전국 13개 시·군에 걸쳐있는 만큼 지자체와 정부가 함께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209호 30면, 2021년 3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