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40):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 ④

1980년대 비디오 예술의 새로운 양상인 ‘TV 방송 예술’은 무엇보다 그것이 생방송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생방송은 녹화 방송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인생의 불가항력적 요소들을 그대로 반영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같이 생방송은 방송상의 과실을 삭제할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불운과 함께, 우연에 의한 뜻밖의 효과가 일어나는 행운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생방송은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인생처럼 리얼하다.

삶과 같이 직접적으로 와 닿는 이러한 생방송이야말로 상호 소통적 참여 TV의 이상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백남준은 TV 생방송 공연을 위성 중계를 통하여 전 지구에 동시 방송함으로써 사방 소통의 참여 TV를 성취한다.

생방송을 통한 시청자와의 수직적 소통을 위성 중계를 통한 지구적 차원의 수평적 소통으로 확장하여 결국 사방 소통을 이루는 하나의 ‘지구촌’을 이룩하는 것이다.

후기 : 레이저 예술(우주와의 소통을 추구하는 거시적인 비전)

본격적 차원의 위성 예술은 백남준의 우주 공연 작품 1984년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뉴욕과 파리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공연 프로그램이 베를린, 로스엔젤레스, 서울 등 국제 대도시들로 중계되는 하나의 지구적 사건이었던 <오웰>은 막대한 공연 규모나 중계 범위에서 위성 예술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을 뿐 아니라, 백남준 자신에게는 우주 오페라 3부작의 막을 여는 의미 깊은 작업이었다.

뉴욕으로부터 로리 앤더슨과 피터 가브리엘의 노래,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햄의 음악과 춤, 알렌 기스버그와 피터 올로프스키의 시 낭송과 함께,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의 요셉 보이스의 피아노 연주, 밴보티에 ‘쓰기’와 콩바스 ‘그리기’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위성중계로 전 세계에 방영함으로써 백남준은 TV에 대한 오웰의 부정적 시각을 부정하고 상호 소통 매체로서의, 예술 매체로서의 TV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1986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에 때를 맞춘 <키플링>은 동서양을 잇는 세 도시, 뉴욕, 동경, 서울에서 공연이 벌어지고, 그것이 보스턴과 캘리포니아에 동시 중계 방송되는 태평양 횡단의 우주 공연이었다. 뉴욕에서는 피립 글래스, 테이빗 튜더의 음악과 리빙 디어터 무용단의 춤이 소개되고, 낙서 화가 키스해링이 출연하였다.

이들과 함께 김금화의 신 딸 최희아와 가야금 주자 황병기가 협연하여 동양과 서양의 출연진이 자기를 함께 하였다. 동경에서는 일본의 음악가 사카모도, 건축가 이소자키, 의상 디자이너 이세 미야운데가 참가하였다.

<키플링>은 <오웰>보다 좀 더 많은 사건을 취급하고, 테이프를 다양하게 사용하였으며, 지역 인물을 많이 등장시킨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가장 현저한 점은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일 뿐 이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영국의 시인 키플링의 단언을 반박하듯, 동양인과 서양인의 만남의 장면들을 한 화면에서 병치시키는 새로운 양분 스크린 수법을 사용한 점이다.

미국측의 해링과 일본측 미야키의 우주를 통한 만남이 한 화면 위에서 펼쳐지고, 카베트와 사카모도의 내민 손들이 화면에서 이어져 위성 악수를 만든다. 또한 뉴욕과 동경에 헤어져 있는 미국 쌍둥이 자매를 화면을 통해 다시 결합시킴으로써 양분된 스크린을 통한 우주적 만남의 효과를 배가한다.

그러나 가장 드라마틱한 만남은 서울 한강변을 달리는 마라톤 경기의 긴장감이 뉴욕으로부터 연주되는 필립 글래스 음악의 격앙되는 리듬에 맞추어 한층 고조됨으로 음악과 운동이 혼연일체가 된 점에 있다. 글래스 음악의 ‘전자 오르가즘’은 목전의 승리를 앞두고 시간과 함께 가중되는 달리는 신체의 고통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백남준은 마라톤 경주 실황을 그래서 음악에 맞추어 중계함으로써 동과 서의 만남에 음악과 운동의 만남을 교차시켰던 것이다.

백남준은 동양과 서양의 지역적 이념적 차이는 예술과 운동 같은 비정치적 교류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고 믿고, 그러한 신념을 ‘예술과 운동의 칵테일’이란 새로운 미학을 통하여 구현하고자 한다.

예술과 운동의 칵테일이란 착상은 백남준 우주 오페라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손에 손잡고>에서 기본 테마로 부각된다. “예술과 운동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매체들이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인 음악과 춤의 향연은 전 지구적인 운동의 향연과 함께 행해져야 한다.”라는 취지와 함께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경기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서울 KBS-TV와 뉴욕 WMET-TV가 공동 주최하고, 이스라엘, 브라질, 서독, 중국, 소련, 이탈리아, 일본 등 10여 개 나라가 참가한 최대 규모의 위성 작업이었다.

<손에 손잡고>는 <오웰>이나 <키플링>과는 다르게 쇼적 프로그램보다는 이야기 구조에 의해 진행되었다.

우주의 방문객 모비우스 박사가 잔학하고 무지한 인간을 파멸시키고자 한다. 구원을 바라는 지구의 대변인은 그 심판자로 하여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채로운 공연을 관람하도록 권유하면서 용서를 구한다. 전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벌어지는 노래와 춤의 향연, 그리고 서울 올림픽 실황 중계가 모비우스 박사에게 헌정되는 프로그램이며, 그것이 <손에 손잡고>의 내용이 된다.

백남준은 <손에 손잡고>에서 동양과 서양의 만남뿐 아니라 중국, 소련 같은 공산 국가들과의 만남도 이루었다. 결국 예술과 운동의 통합은 이념의 장벽을 초월하여 ‘지구를 하나로 감싸듯’ 모두를 통합하였다.

결국 백남준의 우주 오페라 3부작은 <오웰>에서 TV 매체의 상호 소통 가능성을 역설하고, <키플링>에서 동양과 서양을 만나게 하고, <손에 손잡고>에서 이념과 취미를 초월한 하나의 지구촌을 만들어 전 지구적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그의 참여 TV이상을 실현한 셈이다.

또한 주요 지역의 공연을 타 지역에 보내는 중앙 집권식의 구심적 방송을 탈피, 전 지역이 공연에 참가하는 지역주의적인 혹은 민주적인 탈 중심의 중계방송을 수행함으로써 실제적 의미의 사방 소통을 이룩하였다.

1209호 23면, 2021년 3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