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 (5)

바로크 미술

르네상스의 기술적인 발전과 매너리즘의 감성적인 발전이 융합되어, 보다 격정적이고 극적인 미술이 등장하는데 이 시대를 바로크라 부른다. 바로크미술은 1600년대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전 유럽으로 확산된 미술양식으로 가장 화려하고 탁월한 미술경향을 보여준다.

1700년대 후반 ‘르네상스 문화‘의 고전적인 균형과 조화에 반대되는 당시의 불규칙하고 과장된 양식을 가리켜 “바로크”라고 불렀는데, 미술사 학자 뷜플린Heinrich Wölfflin)의 연구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17세기 유럽의 시대 정신에 부합하던 미술 양식으로 그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바로크’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깨어나, 인간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우주 속의 미미한 존재로 보는 새로운 세계관을 기초로 한다. 유동적이고 무한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극대화된 자의식과 도전 의식을 갖게 되었고, 종교 개혁에 맞서는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 운동과 절대 왕권의 부상 역시 ‘바로크 예술’의 토대가 되어, 예술 작품에서는 격동적이고 극적인 표현으로 표출되었단다.

바로크 미술 탄생 시대적 배경

유럽은 신대륙 발견과 함께 경제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뀐다. 이에 이탈리아 주요 경제도시들이 몰락하게 되고 미술 또한 빛을 잃어가게 된다. 또한 수공업과 상업에 바탕을 둔 시민계층이 과거 귀족들의 경제적 수준에 버금가는 부를 이루었고, 이들이 절대 군주를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바로크 예술 형태를 권력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이와 더불어 종교개혁도 바르크 미술 탄생의 시대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톨릭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손상된 교회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미술의 힘을 빌려오고자 했다.

1563년 가톨릭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통과된 ‘형상 숭배의 법령’을 통해 작품의 도상과 표현방식에 개입했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점차 안정을 되찾은 가톨릭 교회. 그들은 신도들의 시선을 압도할 만한 화려하고 극적인 미술이 필요했다.

이렇듯 가톨릭 교회는 교회 내에 종교적 경외심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극적인 효과의 예술 양식을 고무시켰으며, 절대 군주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자 장식적이고 화려한 양식을 요구하였던 시대적 배경이 로마에서부터 전 유럽으로 전파된 바로크 미술의 시작이었다.

바로크 미술의 특징

바로크 미술은 인물표현과 동작이 역동적이며 긴장감 있는 구도, 격정적인 느낌과 전체 분위기를 중요시하고 배경과 어울렸으며, 묘사가 남성적이고, 화면밖으로 잘려나간 인물표현과 대각선 구도, 원근법, 눈속임효과가 뛰어났다. 회화 영역도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등 일상생활로 확대되었으며, 바로크 미술은 각 나라의 시대적, 종교적 생활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었다.

바로크 미술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대략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명암대비가 심하다. 고전주의의 균질한 명암과는 달리 바로크 미술은 밝고 어두움의 대비는 분명하다. 대비가 분명하기에 그림은 아주 역동적이다. 두 번째는 역동성이다. 고전주의의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와 비례감을 중시한 인체 모습과는 다르게 바로크 미술 속 조각상은 역동적이다. 바로크 조각상에 조각물들은 달리거나 비상하거나 공중에 떠 있는 등 포즈에 역동감을 지니고 있다.

세 번째는 빛과 색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관념적으로만 색을 칠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이를 찬란한 빛과 색으로 바꾸었다. 네 번째는 풍성한 질감이다. 바로크 미술가들은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질을 통해 시각적이면서도 촉감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렸다. 대표적인 예가 카라바조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은 당시 실존했던 주변 사람들 얼굴이다. 카라바조 그림에서 유독 생동감이 넘치는 이유는 그림 속 인물 등이 실제로 누군가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바로크 미술

카라바조는 이후 플랑드르 출신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알프스 이북 최고의 화가로 떠오른다. 루벤스 이전의 플랑드르 화가들은 대부분 작은 그림만을 그렸다. 그런데 루벤스는 이탈리아로부터 성당과 궁전을 장식하기 위한 거대한 그림을 선화하는 취향을 플랑드르에 도입했는데, 이것은 당시의 귀족들과 군주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또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와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도 프랑드르와 네덜란드의 바로크 회화를 이끌었으며, 이를 통해 이지역이 바로크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루벤스가 알프스 이북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스페인에서는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에 의해 또 다른 바로크 미술이 발전하고 있었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궁전 미술가로 활동을 하면서 대부분 왕과 왕족들을 위한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남긴 <시녀들>이란 작품을 통해 그는 과거의 멈춰진 모습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여 표현한 최초의 그림을 그린 화가로 후에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프랑스에서의 바로크 미술은 푸생(Nicolas Poussin)에 의해 발전하게 되었는데, 로마 건국 신화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는 그의 작품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은 프랑스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해 6월부터 시작된 연재 “이달의 전시”는 코로나 19로 인한 미술관과 박물관 폐쇄가 해제되는 시기까지 잠정 중단합니다.
교포신문사는 “이달의 전시” 연재와 연관하여, 미술관 관람이 허용되는 시점까지, “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미술관의 작품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210호 28면, 2021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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