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18)

프랑크푸르트(Frankfurt): 1000년 제국의 도시, 근대 독일의 탄생지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 뢰머(Römer)광장에서 (3)

마인강의 Eiserner Steg을 뒤로 하고 다시 뢰머광장으로 돌아가면 지난 호에 살펴본 Haus Wertheim 건너편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Historisches Museum Frankfurt, HMF)과 마주하게 된다.

Historisches Museum Frankfurt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은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을 보고, “이곳에 이런 건물이 있었나?” 하고 놀라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콘크리트 건물로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이 자리하였고, 일반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였던 박물관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역사박물관은 프랑크푸르트시의 역사와 함께 부침이 심한 박물관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은 1878년 당시 시민들의 주도로 지어진 역사박물관으로 애초 건립 목적은 “프랑크푸르트 시와 그 주변에서 출토된 유적들을 보존하고, 학문적 연구를 통해 그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며, 과거 자유시로서의 프랑크푸르트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박물관은 프랑크푸르트지역 향토박물관의 성격을 강화하는 일환으로 소장품들 일부를 주변 박물관( Städel, Museum Angewandte Kunst, Archäologische Museum 등)에 매각하였으며, 박물관의 이름도 Stadtgeschichtliches Museum으로 변경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박물관의 명칭을 다시금 Historisches Museum으로 환원하고, 그 규모도 확대하여 1972년 새로이 개장한 바 있다. 이 당시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 건물이 프랑크푸르트 거주민들에게 익숙한 역사박물관 건물이다.

그러나 2007년 프랑크푸르트 시는 역사박물관의 재건축을 계획한다. 1972년 개장한 콘크리트 구조 건물은 뢰머광장 등 구 시가지에 어울리지 않고, 주변의 Haus Wertheim과 Alte Nikolaikirche의 역사성과도 상치되기에, 개축이 아니라 전면 신축을 결정, 공모전을 통해 2011년 신축공사에 착수, 2017년 10월 7일 규모나 건축 양식면에서 크게 달라진 현재의 역사박물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새로운 역사박물관의 전시 규모는 총 6000m2에 달하며, 5000m2는 상설 전시관, 1000m2는 특별전시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은 이제 뢰머광장의 중요 명소가 되었으며, 마인강 주변 박물관 거리(Museumsufer)의 당당한 주역으로 발돋움 하게 되었다.

Alte Nikoaikirche

역사박물관에서 광장으로 올라오는 모퉁이에 후기 고딕양식의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Alte Nikolaikirche이다. 뢰머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오랫동안 이곳 광장의 상징물 역할을 하였다.

중세시대 대부분의 교회가 건립 시기와 봉헌 성인에 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Alte Nikolaikirche는 그에 대한 정확한 사료를 찾아볼 수가 없다, 단지 Kloster Disibodenberg 연대표에 1142년 5월 28일 Alte Nikolaikirche가 건립되었다는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Alte Nikolaikirche의 건립연대는 이 기록에 의존하였으나, 19세기 역사학자들에 연구에 의해 그 건립연대가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1264년 또는 1290년으로 수정되었다.

독일에서 많은 왕들을 배출한 Staufen가문의 궁정교회로 시작된 Alte Nikolaikirche는 특이한 지붕형태로 13세기 후기 고딕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초기에는 귀족들과 시 참의원들을 위한 예배장소로 쓰였다.

또한 개축을 통한 회랑 건설로 Alte Nikolaikirche는 특권층들이 뢰머광장에서 열리는 박람회, 시장, 대관식행렬 등 각종 행사들을 관람하는 장소로도 쓰였으며, 높은 종탑은 시내의 화재나, 마인강을 오가는 배들을 감시하는 망루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9시 5분, 12시 5분, 17시 4분에 울려 퍼지는 35개의 음색을 자랑하는 Alte Nikolaikirche 종탑의 연주는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Alte Nikolaikirche는 1721년부터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944년 폭격으로 인해 St. Paulskirche가 파괴되자, Alte Nikolaikirche에서 합동으로 예배를 거행하였다, 1949년 공식적으로 St. Paulskirche는 프랑크푸르트 시 소유의 공공건물로 지정되었고, St. Paulskirche 소속 교인들은 Alte Nikolaikirche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뢰머광장(Römerberg)의 의미와 역할

우리가 뢰머광장이라고 부르는 구시청사 앞 광장은 사실 광장(Platz)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정식 명칭은 뢰머언덕(Römerberg)이다. 돔을 중심으로 지형적으로 언덕으로 구성된 이 지역이 마인강 범람 시에도 피해가 없어 오래전부토 공공장소로 활용되어 왔다,

Römerberg이라는 명칭은 Römer 건물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이전에는 Samstagsberg이라 불렸는데, 아마도 토요일에 시장이 이곳서 열리는 것에 유래한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뢰머광장이라고 부르며, 뢰머광장이 프랑크푸트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도록 한다.

프랑크푸르트 역사산책 첫 회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프랑크푸르트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상업으로도 유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시였고, 그러한 상업행위는 모두 이곳 뢰머광장에서 이루어졌다.

프랑크푸르트 정기시의 명성은 대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1596년에서 1597년 사이 저술한 자신의 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인공 샤일록이 프랑크푸르트의 정기시에서 귀중한 다이아몬드를 샀다고 묘사할 정도로 셰익스피어 당대에 이미 유럽에서 ‘시장들의 시장’이라는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후, 글자체가 이태리와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서채 “이태릭체”에서 “로마체”로 바뀌게 되는 데에도 이곳서 열린 당시의 도서전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뢰머언덕을 중심으로 교역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의 경제적 활동은 신성로마 제국의 제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성황을 이루어갔으며, 이러한 도시의 경제적 성장은 동시에 도시 규모의 확장을 동반하였다. 14세기에 이미 인구 만 명에 도달했던 프랑크푸르트의 면적은 인구에 비해서 너무 좁았기 때문에 황제 루드비히의 인가를 얻어 도시의 경계가 이전 도시의 3배 정도의 면적을 가질 정도로 확장되었다.

종교개혁의 시대에는 네덜란드의 칼뱅주의자, 영국의 청교도,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하여 뢰머 광장을 중심으로 상업에 종사하면서 프랑크푸르트의 경제적 중요성은 더욱 증가되었다. 그 한 예로서 최근 복원된 지역인 “새로운 구시가지(der Neue alte Stadt)”에 위치한 Goldne Wagge 건물주가 당시 네덜란드에서 이곳으로 온 상인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업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뢰머광장은 작게는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크게는 독일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여, 각종 행사들이 개최되고 있다.

뢰머광장의 역사적인 건물들

뢰머광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축물 가운데 하나는 광장을 마주보고 있는 중세시대의 대저택들이다. Fachwerkhaus 형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들은 뢰머광장을 특징짓는 한 요소로 기념사진의 훌륭한 배경역할도 하고 있다.

이들을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약간씩 건축형식이 다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그 건축 연대가 다름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공통의 특징으로는 일반 저택들보다 유난히 창문들이 빽빽하게 많이 설치됨을 볼 수가 있다. 이는 뢰머광장에서 열리는 대관식 축제 등 각종 행사의 관람객들에게 사용료를 받고 공간을 대여해 준, 극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각 건물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도록 한다. 뢰머건물 정면 주차장 입구의 건물(사진에서 맨 왼쪽)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Großer und Kleiner Engel: Römerberg 28번지에 있는 Großer 및 Kleiner Engel 주택은 1562년에 지어졌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곳에 위치한 환전소를 따서 Die Wechsel 또는 Zum Wechsel이라고도 불렸다.
1905년 재건축 과정에서 원래는 반 분리 주택으로 지어진 두 건물(großer, kleiner Engel)을 합쳤다.

Goldener Grief: Römerberg 26번지의 저택으로, 1562년에 지어졌으며 이전에는 약국이었다. 18세기에 재건되었고 1981년 오늘날의 형태로 개축되었다.
Wilder Mann: Römerberg 24번지의 저택으로 1층 홀이 있는 고딕 양식의 집으로 16세기에 지어졌다. 1800 년경에 대폭 재건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처마 지붕을 가진 뢰머광장의 유일한 건물로, 바로크적이고 고전주의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다.

Kleiner Dachsberg und Schlüssel: Römerberg 20번, 22번지의 저택으로 1541년 한 지붕아래의 두 채의 집 형태로 지어졌다. 전형적인 Fachwerkhaus의 모습을 하고 있다.

Großer Laubenberg: Römerberg 18번지에 위치한 이 건물은 뢰머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저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건립연대는 1500년 이전으로만 추정되고 있다. 지상 층과 1층은 18세기에 개축되었다.

Kleiner Laubenberg: Römerberg 16번지의 이 저택인 Kleiner Laubenberg은 1381년에 처음으로 사료에 언급되고 있다. 이후 Altes Backhaus, Blumenstein 및 Kleine Garküche라고도 불렸다. 사실 Großer Laubenberg보다 큰 이 저택이 Kleine Laubenberg이라 불린 것은, 애초 뢰머광장을 향해 지금의 절반 규모로 지어졌고, 1544년에서 1581년 사이 다른 건물과 합쳐졌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Schwarzer Stern: Alte Nikolaikirche 옆 건물인 Schwarzer Stern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1610년에 지어졌다. 1944년에는 석재 1층만 남아 있었지만, 문서화가 잘되어 원본 그대로 복원 할 수 있었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3개층 모두 12개의 창문이 틈 없이 늘어서 있는 것과 각층마다의 골조 장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1211호 20면, 2021년 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