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 (6)

로코코미술

17세기의 바로크 미술과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미술 사이, 즉 1730년경부터 1770년경에 걸쳐 에 유행한 유럽의 미술양식이다. 로코코라는 말은 조개껍데기로 만든 세공품 모양을 가리키는 프랑스 말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하였는데,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 장식품이나 공예품 등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다가 현재는 그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 미술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로코코는 바로 앞 시대에 유행했던 바로크 미술 양식을 이어받아 발전했기 때문에 바로크 미술의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쉽다. 바로크가 넘치는 의욕으로 거칠고 남성적인 면을 과시했다면 로코코는 그것을 더욱 세련되고 화려하게 꾸몄다고나 할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하지만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대로 담고 있다.

로코코미술 탄생의 시대적 배경

18세기는 프랑스 미술인들이 실내장식 미술을 통해서 그들의 스타일을 전 유럽에 유행시킨 프랑스 미술의 시대였다. 그들은 고전주의를 배제하고, 사치스럽고 경쾌하며 감성적인 미술을 탄생시켰다. 루이 14세가 죽은 후 귀족들은 파리의 쾌적한 도시 생활을 즐기며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 곳을 중심으로 등장한 로코코는 상류 귀족 여성들의 취미와 사회참여를 반영하여 여성적 감성으로 두드러지고 여성이 사회를 이끌어 간 시대였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프랑스 왕립아카데미의 분열과 살롱문화의 발당을 들 수 있다.

당시 왕립 아카데미의 회화 분과에서는 루이 14세의 절대적 위엄과 권위가 살아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엄격한 데생 중심의 화풍, 곧 푸생의 화풍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이 15세의 등극 이후 왕립 아카데미 회화 분과 안에 갈등이 생겨 그로 인해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푸생의 화풍은 엄격한 구도와 질서 속에서 도덕과 연관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만큼 지식인이라는 특권층을 중심으로 한 화풍이다. 그러나 몇몇 개혁적인 화가들이 예술은 만인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이들은 예술은 이성보다 감성 중심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색채와 빛을 회화의 생명으로 삼는다. 이 대립 끝에 개혁파 즉, 루벤스 화풍이 승리하게 되는데 이 승리를 이끈 화가가 와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이다. 그가 그린 「키테라 섬의 순례(Einschiffung nach Kythera)」가 1717년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로코코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한편 태양왕이라고 불리던 루이 14세가 죽고 15세가 등극하자 그는 베르사유에 몰려든 지방 귀족들을 통치하기보다는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들은 시골이 아닌 파리의 쌩 폴이라는 지역을 장악하여 이 곳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한다.

귀족적 취미가 왕실의 취미를 계승하면서 궁정 대신 우아하고 섬세한 가구들로 채워진 상류 시민 계급들의 저택이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감각적이고 유미주의적인 로코코의 향락 문화는 상류 사회의 쾌락주의적 생활 방식과 당시 유행했던 사교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8세기는 여성의 세기라 불릴 정도로 여성이 주재하는 고급 사교장인 ‘살롱’이 유행하면서 여성 중심의 실내 문화가 발달했고, 이 때문에 전시대의 장대한 예술 대신 비교적 엄숙하지 않은 주제를 다룬 경쾌하고 감각적인 예술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로코코 미술의 특징

르네상스 미술이 이성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바로크와 로코코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사조다. 로코코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유동적인 조형요소를 계승하고 있기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또는 변형이라고 생각될 수 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임에 반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크는 어둡고 무거운 반면 로코코는 밝고 가볍다. 로코코 미술은 귀족계급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며, 관능적 쾌락적인 연애유희를 주로 담아내서 유쾌하면서도 심미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닌,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로 르네상스의 화풍에 대한 반작용으로 섬세하고 호화로운 장식문양, 정밀한 조각, 장식성이 짙은 건축과 패션사조를 볼 수 있으며 여성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특징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기 되었다.

로코코 회화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초상화가 많이 그려진 것을 들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초상화 그리는 것을 즐겨 했고. 로코코의 화려한 측면과 병행하여 일반 시민의 친숙한 모습을 간결한 수법으로 정확히 묘사 했던 샤르댕(Jean Baptiste Simeon Chardin)은 많은 이들의 호감을 샀다. 시민의 일상적 풍속화나 정물화에서 샤르뎅의 섬세한 실내 광선에, 대단한 감각을 엿볼 수 있다면,영국, 게인즈 버러(Thomas Gainsborough)가 그린 왕족이나 귀족의 초상화에서는, 역동적 터치와 자연미를 느낄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은 유럽 최후의 보편적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은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전 유럽에 확산 되었다. 이 양식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대체로 단일한 형식 체계 내에서 전개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에게서 조건 없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보편적인 양식이 되었다. 그러나 로코코 이후에는 보편타당한 양식의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19세기 이후 개개 예술가들은 개인주의와 독창성의 요구에 따라, 더 이상 주어진 고정된 형식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자신의 표현 수단을 성취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음 호부터는 19세기 미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지난 해 6월부터 시작된 연재 “이달의 전시”는 코로나 19로 인한 미술관과 박물관 폐쇄가 해제되는 시기까지 잠정 중단합니다.
교포신문사는 “이달의 전시” 연재와 연관하여, 미술관 관람이 허용되는 시점까지, “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미술관의 작품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211호 28면, 2021년 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