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43)
20세기의 지휘자(3)

문화사업단에서는 ‘20세기의 지휘자’를 주제로 8명의 지휘자를 선정하여 그들의 생에와 음악세계를 살펴보도록 한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년-1990)

2차 대전 후 유럽 출신 지휘자들이 미국의 교향악단들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미국에서 태어나서 음악 교육을 받은 순수 미국 지휘자인 번스타인의 등장은 오랫동안 미국인들을 괴롭혀온 문화적 열등감을 일거에 해소시켜준 쾌거였다.

번스타인의 지휘자 데뷔는 매우 극적이었다.

1943년 11월 14일 새벽, 미국 카네기홀에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오후에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독감에 걸려 갑자기 무대에 못 오르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연 당일에 연주회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뉴욕 필은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스물다섯 살 보조 지휘자에게 무대를 맡기기로 했다.

갑자기 호출받은 신참 지휘자는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다. 연주자들과 리허설 할 기회도 없었다. 공연 중 큰 사고만 일어나지 않아도 다행이었다. 거장 브루노 발터의 지휘를 보려고 티켓을 끊은 관중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새내기 지휘자 무대를 기다렸다. 우려와 달리 공연은 성공으로 끝났다. 지휘자는 신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노련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이 공연은 텔레비전으로 미국 전역에 중계됐다. 젊은 지휘자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렇게 데뷔했다.

번스타인은 이렇게 리허설도 없이 우연히 지휘자로서 치러야 했던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어 본격적인 지휘자 인생을 시작했고, 1945년에는 뉴욕시 교향악단 지휘자로 부임해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당대의 현대음악을 과감히 선곡해 공연하는 등 진보적인 면모로 화제가 되었다.

번스타인은 뉴욕 필 지휘봉을 잡은 1957년에 브로드웨이 신작 뮤지컬 작곡을 맡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이었다. 뮤지컬은 대성공했고, 브로드웨이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번스타인이 만든 이 뮤지컬 이름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다.

번스타인은 “비틀스 음악이 웬만한 클래식 음악보다 더 뛰어나다”는 파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휘자이면서 작곡가였고, 비평가였으며, 방송인이기도 했고 직접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은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진입장벽이 높다. 상류층의 취미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애호가 중에는 고전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장식품 정도로만 여기면서, 그런 오만한 태도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클래식 음악계 정점에 선 번스타인은 고전음악도 여러 음악 중 하나라고 여겼다. 그는 20세기 미국 최고 엔터테이너로도 꼽힌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경계를 넘나들며 양쪽 모두에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대단한 입담과 해박한 지식을 활용해 청소년들에게 클래식을 거부감없이 듣게 할 목적으로 시작한 ‘청소년 음악회’ 도 뉴욕 필 재임기에 행해진 연속 연주회였는데, CBS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되어 클래식 청취 인구의 증가에 큰 몫을 했다.

1960년대 들어 번스타인이 집중한 인물은 구스타프 말러다. 오늘날 말러는 막강한 팬덤을 거느린 인기 작곡가다. 하지만 1960년대 이전까지 말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번스타인은 왜 먼지 속에 묻혀있는 작곡가를 발굴하고 부활시키려 했을까.

번스타인과 말러는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지휘자인 동시에 작곡가였다. 그리고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으로서 공격받은 점도 비슷했다. 말러는 반유대주의를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피난을 왔다. 1909년에 잠시 뉴욕 필 지휘자를 맡기도 했다. 번스타인은 말러가 만든 교향곡 전곡을 녹음했다. 전 세계적으로 말러 음악 듣기 붐이 일었다. 오늘날 말러의 교향곡은 베토벤과 비교될 만큼 위상이 높다.

그처럼 유연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리고 알기쉽고 재미있게 바톤 테크닉을 구사한 지휘자는 드물다. 지휘봉 하나만으로도 그는 오케스트라가 그에게 반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들은 최상의 완성도를 지닌다. 특히 80년대의 말러 사이클(DG)은 완성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말러의 교향곡 전집은 세계 최초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기록물이고, 이외에도 덴마크의 작곡가 칼 닐센의 교향곡 전집이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녹음, 자작곡을 포함한 여러 미국 작곡가들의 관현악 작품 녹음도 발매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솔티가 유럽에서 날아와 시카고 심포니의 음악감독이 되던 바로 그해, 번스타인은 뉴욕 필에 사의를 밝혔다. 그도 분명히 다른 세계를 향해 날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유럽상륙작전을 본격적으로 전개, 10년 만인 1979년, 마침내 베를린 필의 지휘대에 섰다. 1989년 12월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베를린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지휘해 두 차례의 기념 음악회를 열었고, 이 중 동베를린에서 열린 공연은 전세계로 실황 중계되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음악적인 면에서도 거장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번스타인은 자기보다 10년 연상인 카라얀의 죽음을 보았고, 독일 통일 기념 음악회를 지휘한 후 영면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 쏟아놓고 간 셈이다.

1212호 23면, 2021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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