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 (9)

사실주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파리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 다른 한 쪽에서는 세상을 왜곡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는 생각을 반영한 그림이 등장한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에 대해 “낭만주의가 돋보기라면 사실주의는 도수 없는 렌즈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돋보기란 사회현상을 과장해서 표현한 반면 도수 없는 렌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直視)한 것을 말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것에는 당시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영웅의 역사화를 그리던 거대한 캠퍼스가 크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처럼 일상의 평범한 인물들을 그리기 사작한 것이다.

시대적베경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19세기를 특징짓는 또 다른 사건은 산업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체제를 변화시켰다면, 산업혁명은 사람들이 직접 부딪치는 생활환경을 바꿔 놓았다. 증기기관차, 가스, 사진기 등과 같은 과학기계의 발명이 사람들의 생활에 편안함과 여유를 가져다주었고, 신문 잡지와 같은 인쇄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이 현실의 다방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런 상황 아래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미술에도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미술로부터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에 적합한 미술형태인 사실주의 양식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사진기와 프리즘의 발명 및 광학이론의 발달과 같은 과학적 산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형 방법인 인상주의가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주의 회화의 특징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현실에 대한 관심을 이어 나갔다. 그렇지만 종전의 지식인이나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추상적인 미(美)의 이념이나 원칙보다 ‘아름다운 것’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묘사로 눈을 돌렸고, 당시 서민들의 삶 속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았다.

지금까지 미술이 아름다운 인체나 특정 인물, 그리고 신화·종교·역사 속의 사건 등과 같이 많은 이가 관심을 갖는 흥미로운 내용을 주제로 선택해 왔다면, 이들은 눈앞에 펼쳐진 평범한 현실과 자연을 그림 속의 주제로 끌어들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조형 방법에 있어서도 고전주의자들처럼 미의 원리나 규범에 의존하지도 않고, 낭만주의자들처럼 감성적 표현에 의한 미화를 목표로 삼고 있지도 않다.

이들은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나타내려 했다. 가식과 편견에서 벗어나 눈앞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세계를 담아내려 했다.

사실주의 미술의 특징은 “미술가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만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주제를 아름답게 이상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했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실주의 회화의 대표 작가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는 사실주의의 대표화가로 그림에 신, 이상화된 영웅,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당대의 인물과 그들의 일상, 그리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으려 하였다. 그의 대표작 <오르낭의 매장-파리 오르세미술관>은 가로 6.8m, 세로 3.15m의 매우 큰 그림인데 당시에 이렇게 큰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들은 왕이나 귀족 또는 신화를 주제로 그려졌으나 쿠르베는 커다란 캔버스 안에 당시에 살아가고 있던 서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1847년 네덜란드를 여행한 후, 렘브란트의 화풍, 베네치아화파 그리고 에스파냐 화풍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 분석한다. 1850년을 전후로 하여 쿠르베는 자신의 고유한 화풍인 사실주의 색채를 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철저한 사실주의는 천사를 그리라는 주문에 “천사를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릴 수 없다”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는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귀스타프 쿠르베는 “회화란 근본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에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는 것’을 ‘회화’로 여겼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했다.

또 한 명의 사실주의 작가인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는 자연 속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일하는 농부들을 통해 나타내려 했다.

밀레의 대표작 <이삭 줍기>에서 밀레는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는 여인들을 통해 농촌의 고된 노동과 벗어날 수 없는 가난, 그런 삶 속에서 굳어진 엄숙한 표정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여인들의 구부러진 허리가 무척 힘들어 보인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소탈하고 은은한 자연풍경의 묘사를 통해 그 어떤 허욕이나 가식도 없는 농촌 생활의 단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밀레는 그의 작품 속에서 자연과 자연 속의 인물들에 함께 초점을 맞춤으로써 검소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농부들의 진솔한 삶을 어떤 미화나 수식도 없이 나타내고 있다.


지난 해 6월부터 시작된 연재 “이달의 전시”는 코로나 19로 인한 미술관과 박물관 폐쇄가 해제되는 시기까지 잠정 중단합니다.
교포신문사는 “이달의 전시” 연재와 연관하여, 미술관 관람이 허용되는 시점까지, “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미술관의 작품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214호 28면, 2021년 4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