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22)

세기말(19세기) 화려함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Wiesbaden)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도시 스스로가 빚어내는 유럽 문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하자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알려진 비스바덴, 중세에는 북반구의 니스(독일어로 Nizza)로 유럽 귀족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비스바덴, 근대 건축의 정수인 신고전주의, 역사주의, 유겐트스틸 등 세기말의 화려함이 원형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

이번 비스바덴 역사산책을 통해 독일의 전형적인 제후국가의 하나인 나사우 공국(Herzogtum von Nassau)을 중심으로 격동의 19세기의 독일 역사, 오늘날 헤센 주의 탄생을 살펴보며, 더불어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한다.

헤센 주 수도 비스바덴

비스바덴은 독일 헤센 주의 주도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지만 라인 강 근처의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주도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곳이기는 해도 국제회의도 자주 열리고 휴양을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도 생각보다 많은 도시다.

비스바덴은 ‘북쪽의 니스’라는 별칭에서 엿볼 수 있듯 기후가 온화하고 주민들은 세련되고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 주민 27만 명 중 백만장자가 1만6000명에 달하는 부유한 도시이다. 건강과 웰빙을 추구하는 유럽의 부유층이 이곳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구시가지에는 궁전광장(Schlossplatz)을 비롯해 구시청사, 시청사, 마켓광장, 마켓교회 등 오래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비스바덴의 중심지이다. 구시청사 앞 광장에는 황금빛이 화려한 분수가 있다. 또한 인근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비스바덴의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있다.

주지사를 비롯해 4만5000명의 공무원이 일하고 있고 스위스계 보험회사인 ‘빈터투어’, 금융보험사 ‘델타로이드’ 등 8개 보험사의 본부도 이곳에 있다. 도심 바깥으로는 거대 가스회사인 린데(Linde), 제약회사 애보트(Abbott), 실리콘 업체인 다우코닝(Dow Corning), 제약회사 ‘아벤티스(Aventis)’의 화학공장 등이 위치해 있다.

◈ 왜 비스바덴인가?

비스바덴의 역사는 1806년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가 있다.

물론 고대 로마시쟁의 유적들이 나오고 있고, 비스바덴의 고대 도시 이름(Aquis Matticias)을 갖고 있지만, 당시에는 외적(게르만족)을 막아내는 변방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중세에도 나사우(Nassau)백작령의 영토 중 일부로, 나사우 백작은 여름 궁전이 있는 정도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었고, 나사우 백작령의 주요 도시로서의 의미만을 갖고 있었으나, 오늘날의 화려하고, 행정 중심지로서의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소도시였다.

비스바덴 시청사

이러한 소도시 비스바덴은 나폴레옹에 의해 나사우공국의 수도로 거듭나게 된다.

나폴레옹의 전성기이자 유럽 정복 시기였던 1806년, 나폴레옹은 당시 여러 나사우 백작령(Nassau-Usingen, Nassau-Weilburg, Nassau-Dietz 등)을 통합 나사우공국을 건립하고 그 수도를 비스바덴으로 정한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 후, 독일의 패권을 가리게 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간의 전쟁(보오전쟁)이 1866년 발발한다. 이 전쟁에서 나사우공국은 오스트리아에 가담하였고, 전쟁에서 프로에센이 승리하자 나사우공국은 결국 해체되고 프로이센이 합병되었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빌헬름황제는 비스바덴 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그 손자인 빌헬름 2세 때까지 지속적인 발전을 구가하게 된다.

비스바덴은 이렇듯 나사우공국이 출범한 1806년부터 1차 세계대전의 시작까지 약 110년간 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2차 세계대전이후 헤센 주는 헤센공국과 나사우 공국, 카셀-헤센 백작령 중심으로 구성하게 되었고, 최대 현인인 헤센 주 수도 선정에서도 비스바덴의 빼어난 도시의 아름다움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전형적인 계획도시로 탄생한 비스바덴

오늘날 비스바덴은 도시 건축물의 화려함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중앙역 앞거리(Bahnhof Strasse)를 시작으로 구시가지 전체가 19세기의 다양한 건축양식들로 지어진 화려한 석조 건물로 가득 차 있다. 더욱이 2차 대전 당시 피해가 경미하여 모든 역사적인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이러한 이유로 비스바덴 시는 구시가지 전체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신청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스바덴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은 이제 20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는 비스바덴 시가 중세시대부터 중요 도시로 보존된 도시가 아니라, 1806년 나사우공국의 성립과 더불어 새로이 왕국의 수도로 재정비된 계획도시임에 그 이유가 있다.

1806년 나사우공국의 출범당시 비스바덴 시의 인구는 3000여명이 조금 넘는 정도로 작은 소시였다. 이후 100년 후인 1906년 인구 10만 명을 돌파하며 당당히 독일의 대도시 명단에 수록되게 된다.

이렇듯 비스바덴은 1806년 나사우 공국의 출범 그리고 1866년부터 프로이센에 합병된 후 1차 세계대전 발발 시기까지 100년 사이 유럽 제1의 문화, 휴양 도시로 급성장한 신흥도시이다.

5각형의 계획도시(Historisches Fünfeck)

오늘날 비스바덴은 1800년대 초반 나사우 공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건축가 Christian Zeiss의 도시계획안에 의해 새로이 정비된 도시이다. Zeiss는 이전의 소박한 도시를 공국의 수도에 걸맞게 구시가지를 재정비하는데, 이 당시 구회정리의 구역이 5각형으로 이루어졌기에 비스바덴에서는 이를 “역사적인 5각형(Historisches Fünfeck)”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오각형은 남쪽으로는 Rheinstraße, 서쪽으로는 Schwalbacher Straße, 북쪽으로는 Röderstraße와 Taunusstraße 그리고 동쪽으로는 Wilhelmstraße로 둘러싸인 5각형 공간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구시가지가 이 지역에 해당된다.

이 오각형 구역 안에는 로마시대의 방벽을 비롯하여 중세시대의 유적과 온천지대, 그리고 Nassau 공작의 궁전, 구 시청과 신 시청사 및 시장 교회, 그리고 황태자 궁전(오늘날 IHK건물) 등이 원형 그대로 비스바덴의 화려한 자태를 보존하고 있다.

-19세기 휴양, 문화도시로 전성기를 꽃피우다

비스바덴은 중세시대 이미 온천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유럽인들이 동경하는 문화와 휴양도시로의 발전은 나사우공국이 성립된 1806년 이후 집중적으로 발전되었고, 특히 프로이센에 합병된 1866년 이후 빌헬름황제(1세와 2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그 발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유럽의 문화의 중심지이자, 휴양지, 그리고 귀족들의 외교와 사교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다.

괴테와 브람스, 그리고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등 당대의 저명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이루었으며, 유럽최대의 카지노로 성장한 Kurhaus 내의 비스바덴 카지노는 당대 저명인사들이 꼭 한번은 방문해야만 할 명소로 자리 잡았다. 건축 당시 괴테조차도 극찬을 아기지 않았던 걸작품인 Kurhaus는 1810년 Zeiss에 의해 건축되었다, 이후 비스바덴의 명성이 높아지자 연 휴양객들의 수가 1840년 20,000여명이었던 것이 1910년에는 그 수가 200,000명이 넘어갈 정도로 휴양객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Kurhaus

이러한 발전으로 기존의 Kurhaus는 증축이 필요로 하게 되었고, 비스바덴 시는 증축보다는 기존의 건축물을 헐고, 새로운 Kurhaus를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건축가 Friedrich von Thiersch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Kurhaus (das schönste Kurhaus der Welt)”라는 찬사 속에 1907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비스바덴 역사산책에서는 비스바덴 시청사에서 시작하여 구시가지인 “역사적인 5각형(Historisches Fünfeck)”의 공간과 빌헬름 거리 건너편에 위치한 Kurhaus를 살펴본다. 도보로는 약 3시간 정도의 여정이다.

1218호 20면, 2021년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