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48)
20세기의 지휘자(9)

문화사업단에서는 ‘20세기의 지휘자’를 주제로 10명의 지휘자를 선정하여 그들의 생애와 음악세계를 살펴보도록 한다.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2014)

유대인은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음악이라면 발군의 기량을 보인다. 이들에게 음악은 필수 교육과정에 속한다. 과거 유럽 가국서 혹독한 박해를 받은 서러움이 유대인의 남다른 음악성과 감성을 키웠다는 견해가 잇다. 아우슈비츠 등 죽음의 수용소 생활이라는 극한 생활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소규모 악단을 조직해 연주했다. 오늘날 세계 정상급 지휘자와 연주자 중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유대인 대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지휘자가 로린 마젤이다.

로린 마젤은 1930년 3월 6일 프랑스의 파리 근교의 뉘이에서 유대계 러시아인인 아버지와 헝가리와 러시아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로린 마젤이 아주 어릴 때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그 역시 피츠버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로린 마젤은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이미 4살 때 놀라운 절대음감을 소유했고, 암보력도 뛰어났다. 그와 동시에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을 배웠는데, 놀라운 속도로 그 악기들을 익혀갔다. 하지만 어린 로린 마젤을 더욱 흥분시킨 것은 지휘자의 세계였다.

불과 8살 때부터 그는 아이다호 대학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당시 그가 지휘한 것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었다. 이 공연에 이어 그는 1년 후 뉴욕 세계 박람회에 출연하여 역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지휘계의 신동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한편 음악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에도 깊은 관심을 지녔던 그는 피츠버그 대학에 들어가 어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는 한편 블라디미르 바칼레이니코프로부터 바이올린과 지휘법 등을 배우며 음악과 철학 모두에 있어 그 깊이를 더하기에 이른다. 몇 년 후 그는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지휘대에 섰고, 1953년에는 이태리의 로마에서도 지휘를 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1960년에는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음악제에서 ‘로엔그린’을 지휘해 평론가들 및 바그네리안들로부터 호평을 얻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등장해 ‘니벨룽겐의 반지’ 등과 같은 전 4부작을 무리 없이 지휘했다.

1965년에 로린 마젤은 드디어 지휘자로서 한 단계 신분 상승을 하게 된다.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의 음악 총감독에 취임했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그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도 겸임해 명실공이 유럽 및 독일에서 알아주는 지휘자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한편 1970년부턴 런던의 뉴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의 보조 지휘자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이 악단은 거장 오토 클렘페러가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년 후에는 미국으로 가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립관현악단의 상임 객원 지휘자(1976년) 및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총감독(1982년) 등으로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1976년부터는 프랑스 국립관현악단의 상임 객원지휘자도 겸임했으며, 1982년 시즌부터 빈 국립오페라극장(Vienna State Opera)의 상임지휘자 겸 총감독으로 취임했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음악고문으로 있다가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음악감독으로서 동 악단을 이끌었다.

그리고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뮌헨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의 수석지휘자로 일하였다. 이후 2002년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의 후임으로 누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2008년까지 악단을 이끌었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뉴욕 필하모닉의 객원 지휘자로서 100회가 넘는 공연에 지휘를 맡으며 뉴욕 시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최고의 지휘자에게도 흔치 않은 무대인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에 아홉 차례나 무대에 올라,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지휘하는 전통을 재현한 것은 유명하다.

로린 마젤은 풍부한 재능을 가진 지휘자이다.

바이올린 실력도 대단하고, 한때 빈 필하모니가 그를 독주자 겸 지휘자로 맞으려 했을 정도다. 또한 그의 암보력이 대단해서 처음 대하는 스코어일지라도 단번에 암기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오페라까지도 암보로써 지휘한다.

로린 마젤은 가장 역동적인 지휘자로 정평이 나있다. 그의 힘과 열정적인 제스처 등으로 유명하다. 때론 그것이 지나치리만치 큰 폭으로 연출되어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카라얀이나 번스타인과 같이 세대별, 유형별 곡 모두를 수준 있게 연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휘자 중 한명이라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그는 뉴욕필 상임지휘자 시절인 2008년 2월 북한을 방문해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한 지휘자로 각인돼 있다. 당시 뉴욕필은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북한과 미국 국가, 드보르자크 9번 교향곡 ‘신세계’ 등을 연주했다. 앙코르로 연주한 ‘아리랑’은 당시 관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마젤은 공연 후 “아리랑이 미국인과 북한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내한공연도 여러 차례 했는데, 1966년 자신이 이끌던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과 함께 처음 공연을 가진 이후, 서울올림픽 축하공연으로 열린 라 스칼라 오페라의 투란도트공연의 지휘를 맡기도 했고 1994년에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이듬해인 1995년에는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가졌다. 이후에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등과 함께 공연했다.

한국 젊은 음악가들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2007년 지휘자로 데뷔한 첼로 연주자 장한나씨의 지휘 활동을 적극 지원했으며 피아니스트 손열음, 테너 김우경씨 등과 협연했다.

로린 마젤은 2014년 7월 13일에 폐렴에 의한 합병증으로 향년 84로 별세하였다.

1218호 23면, 2021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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