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24)

참혹한 전장 속에서 찾은 최초의 항생제
게르하르트 도마크와 알렉산더 플레밍

20세기 과학사는 변혁의 연속이었다. 20세기 두 차례 있었던 세계대전은 핵물리학과 레이더 개발, 비행기술을 발전시켰다. 1930년대 무르익기 시작한 양자역학은 현대 과학의 기틀을 만들었다. 과학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기였지만 이 시기 인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균에는 무력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세균 감염에 의한 사망자 수가 적에 의해 죽은 숫자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항생제로 바로 치료할 수 있는 상처의 감염, 폐렴, 성홍열, 연쇄구균 인두염, 산욕열 등의 감염병은 당시에는 죽음을 불러오는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세계대전을 직접 겪으며 설파제 만든 게르하르트 도마크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 1895~1964)는 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세균을 이기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탄생한 물질이 바로 ‘설파제(Sulfa)’다. 우리는 흔히 인류 최초의 항생제를 알렉산더 플레밍이 개발한 ‘페니실린(penicillin)’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설파제야말로 페니실린이 개발되기 전 광범위하게 사용된 항생제였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9년 페니실린을 영국 병리학회지에 발표하지만, 상용화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설파제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193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방해로 1947년이 돼서야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 개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되는 건 6년 뒤인 1945년이다.

1935년 중엽 게르하르트 도마크가 개발한 설파제는 ‘현대 의학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로 당시 항균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도마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실제로 참상을 겪으며 세균 감염 정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수백 번의 실험 끝에 연쇄구균에 효과적인 물질을 찾았다. 바로 ‘프론톤실(protonsil)’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설파제였다.

설파제의 성공으로 독일과 영국 등 유럽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도마크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을 치료하면서 세계적인 명성도 얻게 된다. 그러나 성공의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민낯이 함께했다. 제약 회사는 설파제가 특허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마구잡이로 비슷한 물질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오히려 수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유행하던 설파제는 페니실린이 상용화되면서 도마크의 이름과 함께 서서히 잊혔다. 인류 최초의 항생제라는 영예도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에 넘겨주게 됐다.

푸른곰팡이에서 찾은 페니실린 개발한 알렉산더 플레밍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최초의 항생제는 영국의 미생물학자이자 세균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Sir 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개발한 ‘페니실린’이다. 바로 그 유명한 ‘푸른곰팡이’를 배양해 얻은 항생 물질이다.

플레밍은 세인트메리 병원 예방접종과 세균학 교수로 일하며 포도상구균을 연구하고 있었다. 1928년 여름 플레밍은 휴가를 다녀온 후 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기르던 접시 주변의 포도상구균을 녹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레밍은 이 사실을 근거로 푸른곰팡이를 연구한 끝에 800배 정도로 희석해도 세균 증식 억제 기능을 그대로 지닌 물질을 발견한다. 그는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고 불렀다. 플레밍은 연구 결과를 1929년 영국 실험병리학 저널 ‘British Journal of Experimental Pathology’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플레밍의 실험은 계속 실패의 연속이었다. 토끼의 혈액 속에서 페니실린은 항균성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동물의 장기 실험에서도 항균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레밍은 1939년이 돼서야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할 수 있었다. 미국 록펠러 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은 플레밍은 정제된 페니실린을 가지고 쥐 실험을 시도했다. 결국 1940년 큰 연구 성과를 보인 플레밍은 그해 의학저널 ‘란셋’에 페니실린이 강력한 전염병 치료제로서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다.

페니실린 또한 설파제와 마찬가지로 전장의 군인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줬다. 페니실린은 옥스퍼드 대학의 에른스트 체인과 하워드 플로리의 연구팀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상용화에 성공해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항생제 개발은 인간과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얻은 위대한 승리의 결과다.

지금도 우리는 미생물과의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바이러스가 문제다. 전 세계 팬데믹을 가져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는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전대미문의 시대를 만들었다. 인류는 이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인류에게 또 한 번 승리의 역사를 가져다주길 기대해본다.

1219호 22면, 2021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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