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49)
20세기의 지휘자(10)

문화사업단에서는 ‘20세기의 지휘자’를 주제로 10명의 지휘자를 선정하여 그들의 생에와 음악세계를 살펴보도록 한다.

정명훈 (1953 ~ )

정명훈이 지휘자이기 이전에 피아니스트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8세 때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간 이후 제이콥슨에게 피아노 레슨을 시작, 뉴욕 매네스 음악학교에 진학해서 피아노와 지휘를 전공했고, 1974년에는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 콩쿨에서 피아노 부문 2위를 차지할 만큼 피아노에서도 뛰어난 두각을 나타냈던 연주가였다.

피아니스트면서 지휘자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아쉬케나지, 바렌보임, 에센 바흐, 플래트네프를 비롯하여 다른 악기 연주자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것은 아마도 피아노의 음역이 오케스트라 악기를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피아니스트가 항상 오케스트라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비슷한 경험을 피아노 작품에서 경험하고 있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명훈이 본격적으로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에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긴 때부터이며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의 음악 감독겸 상임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중에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불의 천사(Ognenniy angel)’를 지휘하였고 같은 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Simon Boccanegra)’를 지휘하여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에는 피렌체에서 무소르그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89년에는 바스티유 감옥부지에 새로 건립된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 파리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36세의 정명훈이 급거 대발탁되었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장관과의 정치적 갈등에 말려들어 결국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된다.

정명훈은 과거 거장들이 보여준 ‘독재형 리더십’이 아닌 단원들을 존중하고 설득하고 이해시켜 음악을 만드는 데 스스로 참여하도록 하는 ‘참여형 리더십’을 보여준다고 평가되고 있다.

정명훈 스스로도 무리한 요구보다는 단원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뒷받침해 주는 지휘자의 제1사명을 피아니스트라는 위치이기 때문에 더 조화롭게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1990년부터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20여 장의 음반을 레코딩하며 음반상을 휩쓸었으며, 특히,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하기까지 한 메시앙의 음반들(<투랑갈릴라 교향곡>, <피안의 빛>, <그리스도의 승천>등)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베르디의 <오텔로>,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등은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8년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선정한 ‘아비아티 상’과 이듬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받았으며, 1991년 프랑스 극장 및 비평가 협회의 ’올해의 아티스트 상‘, 1992년 프랑스 정부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95년 프랑스에서 ’브루노 발터 상‘과, 프랑스 음악인들이 선정하는 ’음악의 승리상‘에서 최고의 지휘자상을 포함 3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2003년에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는 1995년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가진 일본 데뷔 공연으로 “올해 최고의 연주회”에 선정된 이래, 이듬해 런던 심포니 공연 역시 최고의 공연으로 기록되었으며, 2001년 도쿄 필하모닉의 특별예술고문 취임 연주회 등 열광적인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바 있다.

정명훈은 2006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후 국제적인 오디션을 통해 젊고 우수한 멤버가 입단하여 현저하게 연주 수준을 올려놓았으며, 이밖에도 수시로 세계 명문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도 맡고 있다.

서울시향 부임 이후 활동 중심이 한국으로 많이 쏠리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해외 악단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한 것은 아니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관현악단인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정기적으로 지휘했다.

2010년에 도쿄 필에서 퇴임한 뒤 계관 명예 지휘자로 계속 악단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에는 빈 국립 가극장(빈 슈타츠오퍼)에 데뷔하여 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했으며, 2012년부터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새로 신설한 수석 객원 지휘자가 되었으며, 서울시향에서 했던 것처럼 해당 악단과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진행하였다.

2015년 6월 라디오 프랑스 필에서 상임지휘자로서 마지막 공연을 지휘했으며, 연주 이후 정명훈은 악단 최초의 명예 음악감독(Directeur Musical Honore)으로 추대됐다.

한편 2015년 12월로 계약만료로 서울 시향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지휘자로서 정명훈은 데뷔 초부터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비견되어 왔다. 손짓과 동작 등 지휘 스타일, 분출하는 카리스마가 카라얀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요인도 ‘가장 카라얀을 닮은 지휘자’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카라얀보다 섬세할 때는 더 섬세하고, 힘 있을 때는 더 역동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카라얀이 자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줄 알아 “코카콜라 같다”는 소리를 들은 반면, 정명훈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다른 점. ‘자신을 포장할 줄 모르는 소탈함’이 특징이다.

1219호 23면, 2021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