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55)

한국의 불교미술(2)

한국의 불탑 ①

불교미술의 일반적 특징을 살펴 본 지난호에 이어, 이번호부터는 불교미술의 한 분야인 불탑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탑이란 ‘탑파(塔婆)’, 즉 범어의 ‘스투파(stupa)’ 또는 팔리어 ‘투우파(thupa)’의 음역에서 유래된 약칭으로, 사리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불교의 독특한 조형물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인도의 장례법에 따라 화장의 예를 갖춤으로써 사리를 얻게 되었고 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구조물을 쌓은 것이 바로 탑파, 즉 불탑이다.
한국의 탑은 세계 불교예술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그 기원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에 이르는 삼국 말기의 시기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탑은 그 소재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등으로 나뉘며, 대체로 중국은 벽돌로써, 일본은 목재로써, 우리나라는 석재로 탑을 조성한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를 ‘석탑의 나라’라 부르는 것도 현존하는 탑 거의 모두가 화강석을 재료로 한 석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탑의 재료에 의해 분류한 목탑, 전탑, 석탑 등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어 시대에 따른 불탑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한다.

– 목탑(木塔)

우리나라 초기 탑은 목조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말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목탑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은 물론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조까지 계속되었다. 목탑은 다른 건축과는 달리 수직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고도의 건축 기술이 없이는 건립이 불가능하다.

특히 다른 불탑들과는 달리 실내에 공간이 마련돼 예배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구려의 목탑자리로는 평양 청암리 등 4곳이, 백제 때는 부여 금강사 절터 등 5곳이, 신라 때에는 동양 최대 규모였다는 황룡사 목탑 등 4곳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목탑으로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전탑(塼塔)

『삼국유사』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전탑을 봉안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탑의 특징은 목탑이나 석탑과 형식은 동일하나 중국 전탑의 영향으로 옥개의 상하에 층단을 마련하고 감실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또 화강암을 재료로 혼용한 것은 중국의 전탑이 벽돌만으로 축조된 것과는 다른 점이다.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성행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우리나라에서 전탑은 매우 희귀해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있는 것은 안동 신세동 7층전탑(국보 16호)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226호), 송림사 5층전탑(보물 189호), 안동 조탑동 5층전탑(보물 57호), 안동 동부동 5층전탑(보물 56호) 등 모두 5기에 지나지 않는다.

– 석탑(石塔)

목탑이나 전탑은 석탑의 완성을 위한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할 정도로 석탑은 우리나라 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우리나라 석탑의 서장을 장식하는 것은 백제시대에 건립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과 부여 정림사지 석탑(국보 9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형양식의 완성은 신라시대에 이룩됐다.

한국의 석탑이 곧 신라 석탑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라석탑으로 가장 앞선 작품은 선덕여왕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이다.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 모전석탑으로 불리는 이 석탑은 신라석탑의 조형(祖型)으로 꼽힌다. 불국사 다보탑(국보 21호) 석가탑(국보 22호) 등 우리 민족의 예술적 천재성이 발휘된 빼어난 석탑이 건립된 것도 바로 이 때다.

특히 불국사 석가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상하 비례나 형태의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 석탑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불천(佛天)의 신비가 탑을 중심으로 발현되고 있는 느낌까지 줄 정도로 신비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경주 감은사지 3층석탑(국보 112호) 고선사지 3층석탑(국보 38호) 갈항사 3층석탑(국보 99호) 등 수많은 명탑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국보는 27점, 보물은 126점에 달한다.

삼국시대 불탑의 특징

삼국의 불탑은 목탑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에 들어 석탑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목탑이 삼국시대 불탑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추정되며, 그 중에서도 고구려의 목탑은 팔각차층탑이 주로 세워져 백제나 신라의 목탑과 구별된다. 또 탑과 건물의 배치에서도 고구려의 절터에서는 탑을 중심으로 동, 서, 북면에 법당이 배치되는 이른바 1탑 3당식이 성립되고 이 형식이 백제의 군수리절터나 황룡사터의 후기 건물배치에도 응용되었다.

삼국의 불탑은 대체로 그 규모가 매우 거대한 것이 그 특징이다. 이는 왕실에서 사찰의 건립을 후원하여 대규모의 공사를 계획할 수 있었고, 불상이 조성된 후로는 불상을 모신 법당이 예배처로서의 비중이 커가는 가운데에도 아직은 불탑에 대한 신앙의 비중이 상당하였던 것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목탑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삼국 시대 말기에 들어 우리나라 불탑에 석탑이 등장하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석탑이다.

백제말기에 발생한 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이후 우리나라 불탑의 주류가 석탑으로 바뀌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원래 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재질이 견고하여 화재위험도 면할 수 있는 석재로서 불탑을 조성하여 영원히 버전하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석탑이 세워지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전탑이 성행한 중국, 목탑이 많은 일본등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 ‘석탑의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1225호 23면, 2021년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