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58)

한국의 불교미술(5)

고려시대의 불탑

불교의 교세는 고려시대에 와서 절정에 달하였다. 따라서 불교적인 조영(造營) 작업도 거의 고려 일대를 통하여 국가적 혹은 개인적으로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석탑과 유례가 남아 있다.

신라의 석탑은 9세시기에 이르러 지방으로 보급되었으나 규모는 작아지고 조각기법은 퇴보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성을 중심으로 불탑이 많이 건립되었는데, 이는 신라가 통일 이후 경주 지방에 많은 석탑을 건립하였던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고려시대의 불탑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고려시대 불탑의 특징은 우선 석탑건립 이전 시대에 비하여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된 점이다. 다만 수적으로는 왕도(王都)인 개경 부근이 우세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분포상의 변화는 시대상의 변혁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즉, 왕실불교적 위치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불교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목되는 점은 고려시대의 조탑활동에 순수한 지방세력 내지는 일반 민중이 대거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개심사지오층석탑(開心寺址五層石塔, 보물 제53호)의 명문(銘文), 정도사지오층석탑(淨兜寺址五層石塔, 보물 제357호) 안에서 발견된 조성형지기(造成形止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시대에는 대부분 그 지방민의 발원에 의하여 석탑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을 전국적으로 분포시키는 데 보다 더 영향력을 끼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려석탑의 양식상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다양한 양식의 변화를 보이면서 석탑이 건립되었는데, 개성 현화사지 7층석탑·남계원7층석탑(경복궁 소재)·흥복사석탑(개성박물관) 등은 통일신라시대의 4각석탑 형식을 따른 예이다. 또한 요나라와 금나라의 영향을 받은 월정사 8각9층석탑·보현사 8각13층석탑, 원나라의 장인이 건립한 경천사지 10층석탑과 같은 다각다층석탑(多角多層石塔)이 건립되었다.

고려시대의 석탑은 단층기단이 많아지고 옥개석의 낙수면이 심한 경사를 이루며, 추녀도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하는 등 장식적인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에 개경을 중심으로 건립된 불탑은 신라 이래의 방형 다보탑을 주류로 삼았으나, 북쪽 지방에 있어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다각 다보탑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들 석탑 중 신라 이래의 일반형 석탑으로는 개풍군 현화사 7층 석탑, 개성의 남계원 칠층석탑(현재 경복궁 소재), 영통사의 3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건립된 불탑으로서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옥개의 처마곡선이 4귀에서 발전되었으며 받침도 신라에 비하여 층급이 낮고 수효가 적어졌다. 또 기단을 넣어서 탑신이 높아졌으며, 현화사탑은 각 층에 조각이 있어서 한층 주목된다.

한편 고려말에 이르면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개풍군 경천사에 세워진 10층석탑은 다른 탑과 달리 대리석을 사용하였으며, 기단 3층 위에 10층의 탑신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이 탑에서 특이한 것은 기단과 탑신을 가릴 것 없이 전면에 동물·초화·불보상 등을 조각하여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은 탑은 조선 초기에 이르러 원각사에도 세워지게 되었다.

고려시대 석탑은 크게 3가지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불교의 대중화, 샤머니즘화로 전국 곳곳에 탑이 세워졌다. 지금도 해남의 끝자락, 제주도 등에서 고려시대 석탑을 볼 수 있으며 제주도의 경우 현무암으로 탑을 세우기도 했다. 둘째, 각 지방마다 그 지방적인 특성이 탑에 보이며 특히 옛 고구려 지역인 한강 이북 지역에서는 옛 고구려 양식이, 옛 백제 지역에서는 옛 백제탑 양식이 계승되어 조성되었다.

익산 왕궁리 5층 석탑은 백제 멸망 이후 옛 백제 양식으로 조성된 첫 예이다.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인 10세기 초 이전에 세워진 탑으로 단층기단과 넓은 지붕돌, 탑신과 옥개석을 여러 개의 돌로 조성하고 있는 점 등의 세부 형태와 그 모습이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빼닮았다.

이러한 백제계 양식 석탑은 고려 초 비인 5층 석탑, 중기 이후 부여 장하리 3층 석탑, 정읍 은선리 3층 석탑) 등 10여 기로 고려 시대에 옛 백제 땅에 조성되고 있는 복고적 양식의 탑들이다.

한편 고구려의 옛 영역인 한강 이북 지역에는 고구려 탑의 8각 평면을 계승한 고려시대 탑들이 남아 있어 백제계 탑들과 더불어 주목된다. 고구려는 주로 8각 다층 목탑을 조성하였는데 목탑인 관계로 지금은 그 터만 남겨져 있다.

고려시대 불탑으로는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 지역에 영명사지 5층 석탑을 포함한 다수의 8각 석탑들이 남아 있고 남한에는 한강 이북 지역인 오대산의 월정사 8각 9층 석탑이 옛 고구려 양식계로 분류되고 있다.

셋째, 고려 후기 원나라 침입 이후 라마탑의 영향이 반영되었다.

한편 고려의 석탑으로는 규모가 큰 석탑 이외에 또한 규모가 작은 청석탑이 한때 유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금산사에 전한다.

1228호 23면, 2021년 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