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74)

우리문화의 정수 판소리(1)

클래식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서양의 오페라는 바로 듣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쉬운 상대는 아니다. 우리의 판소리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서양의 오페라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쩌다 들어 본 판소리에 마음이 실리고 절로 흥이 나는 경험을 한 번씩은 해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에 녹아있는 전통이 갖는 힘이다.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이 달 문화세상에서는 우리 문화의 정수인 판소리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문화의 정수 판소리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창), 아니리(말), 너름새(몸짓)을 섞어가며 구연(口演)하는 일종의 솔로 오페라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로 ‘소리’는 ‘음악’을 말하고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 또는 ‘상황과 장면’을 뜻하는 것으로 ‘많은 청중들이 모인 놀이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판소리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어 지역적 특징에 따른 소리제를 형성하고 있다. 전라도 동북지역의 소리제를 동편제(東便制)라 하고 전라도 서남지역의 소리제를 서편제(西便制)라 하며, 경기도와 충청도의 소리제를 중고제(中古制)라 한다.

동편제의 소리는 비교적 우조(羽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무겁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고 굵고 웅장한 시김새로 짜여있는 반면 서편제는 계면조(界面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한편 중고제는 동편제 소리에 가까우며 소박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성없는 이야기 소재와 소리가 점차 길어지면서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보다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착되었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시대적 정서를 나타내는 전통예술로 삶의 희로애락을 해학적으로 음악과 어울려서 표현하며 청중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며 판소리 다섯마당이 모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판소리는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피지배층의 삶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판소리는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로서 판소리를 통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서로의 생각을 조절하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절과 통합의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판소리라는 예술 양식

판소리라는 예술 양식을 음악으로 보느냐 연극으로 보느냐 아니면 문학으로 보느냐를 놓고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어떤 이는 “판소리는 소설이다”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판소리는 서사시다”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판소리는 희곡이다”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판소리는 극가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다 일면적으로는 타당하지만 판소리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잡아내지는 못한다고 보여진다.

그 중 얻어낸 가장 합당한 결론이 “판소리는 서사적 장르의 독자적인 양식”이라는 다소 애매한 규정이었는데 이는 “판소리는 판소리다” 라는 말을 좀 어렵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어떻든 판소리는 그 안에 문학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 및 연극적 요소를 주루 다 갖추고 있는 독특한 양식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런 만큼 문학적, 연극적, 음악적 측면에서 판소리의 특성을 살피려는 노력이 전문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다.

광대와 청중의 호흡이 판소리의 생명

판소리는 ‘판의 소리’이다. 그리고 ‘판’의 특성은 한 마디로 ‘살아 숨쉬는’데 있다.

그러면 이 ‘숨을 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가 자신의 존립 근거인 또 다른 생명체와 교섭하여 신진 대사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소리판의 생명은 광대와 청중이 서로 주고 받는 데, 서로 호흡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리판의 특성은 판소리의 본질이 다름 아닌 ‘이야기’ 그 자체라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옛 이야기 구연 방식은 모두가 ‘대거리’형식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들려만 주는 것이 아니고, 듣는 사람이 끼어들어 묻고 따지고 조르고 말리고 추어주고 하는 데서 이야기는 길을 잡아 나간다.

이처럼 듣는 사람이 끼어드는 방식은 애초의 이야기판에서는 더 적극적인 ‘대거리’ 형태이었으나 오늘날 소리판에서는 훨씬 소극적인 ‘추임새’ 형태만 형식적으로 남아 있다. 더구나 ‘대거리’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개입이지만 요즈음 ‘추임새’는 기량이나 기교에 대한 상찬으로 치우치는 감이 없지 않다.

어떻든 소리판에서 광대와 고수 사이는 몰론이요 광대와 청중 간에도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건이라 할 수 있다. 광대가 숨을 내쉬면 고수와 청중은 숨을 들이쉬고, 광대가 숨을 들이쉬면 고수와 청중은 숨을 내뱉는다. 바로 숨을 내뱉을 때 대거리와 추임새를 넣으면 대체로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이렇듯 광대가 아니리와 소리를 하면 고수와 청중이 대거리와 추임새를 넣는 상호 교류, 신진 대사가 활발하면 할수록 소리판은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판이 된다.

1250호 23면, 2022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