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 (28)

세기말(19세기) 화려함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Wiesbaden) (마지막 회)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도시 스스로가 빚어내는 유럽 문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하자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알려진 비스바덴, 중세에는 북구의 니스(독일어로 Nizza)로 유럽 귀족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비스바덴, 근대 건축의 정수인 신고전주의, 역사주의, 유겐트스틸 등 세기말의 화려함이 원형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

이번 비스바덴 역사산책을 통해 독일의 전형적인 제후국가의 하나인 나사우 공국(Herzogtum von Nassau)을 중심으로 격동의 19세기의 독일 역사, 오늘날 헤센주의 탄생을 살펴보며, 더불어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한다.

빌헬름 가(Wilhelm Strasse): 비스바덴 최고 명성을 지난 거리

Kaiser Friedrich 동상에서 중앙역 방향으로 die 150m 정도 떨어진 곳, Wilhelmstrasse/Friedrichstrasse의 모퉁이에는 오늘날 상공회의소(Industrie Handels Kammer, IHK)로 사용되는 황태자궁(Erbprinzenpalais)과 만나게 된다.

황태자궁(Erbprinzenpalais)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을 모방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황태자궁은 나사우 공국 초기인

1813년 당시 비스바덴 신시가지(오늘날의 구시자지)를 설계 및 건설한 Christian Zais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황태자인 Wilhelm von Nassau-Weilburg은 이 황태자 궁에 거주하지 못하고 나사우공국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의 선왕인 Friedrich Wilhelm Fürst von Nassau-Weilburg이 1816년 사망하였는데, 이 당시 황태자궁은 미완공 상태였기 때문이다. 황태자궁은 1년 뒤인 1817년 완공되었다.

이후 황태자궁은 그 목적과는 달리 여러 공공시설로 활용되었다.

1821년부터는 나사우 공국의 공공도서관으로 사용되었으며, 1821년부터 1826년 사이 미술관, 자연 과학 박물관, 고대 박물관이 황태자궁에 개설되어 나사우공국의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로서 황태자궁은 도서관과 박물관 등 나사우 공국의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황태자궁의 도서관은 1913년 현재의 헤센주립도서관(Rheinstrasse 55-57)으로, 미술관, 박물관은 1915년 현재의 헤센 주립박물관(Friedrich-Ebert-Allee 2)으로 이전 되었다.

이후 행정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헤센 주정부가 건물을 임대하여 법무부로 사용했다. 1968년에 비스바덴 상공회의소가 시에서 120만 마르크에 건물을 구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태자궁은 비스바덴에 있는 Christian Zais의 3개의 고전주의 건물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축물이다.

문학의 집” Villa Clementine

Villa Clementine는 비스바덴의 건축물 가운데 역사주의 건축(Historismus)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비스바덴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역사주의 건축은 18세기 신고전주의 건축과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중간에 나타난 건축양식으로, 신고전주의 건축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을 이상으로서 삼았으나 19세기가 되자 중세 고딕이나 근세 르네상스가 재평가되어 이들 건축양식의 재현되었고, 이를 역사주의 건축이라 부른다.

Villa Clementine는 2001년부터 비스바덴의 문학 중심지인 “문학의 집(Literaturhaus)”으로 사용되며, 작가와 청중이 만날 수 있는 문화 장소로 거듭났다.

그러나 Villa Clementine는 1888년 발생한 이른바 “황태자 유괴사건(Wiesbadener Prinzenraub)”으로 국제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제 그 사건으로 들어가 본다.

1888년 7월 13일 비스바덴 경찰은 Villa Clementine에 세르비아의 나탈리아 왕비( Natalie)와 함께 거주하고 있던 당시 12세인 황태자 Alexander Obrenović를 강제로 연행하여 타우누스역에서 기차를 태워 세르비아로 보낸다. 외형상으로는 황태자를 본국으로 되돌려 보낸 형식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법적 보호자인 나탈리아 왕비 의사와 반해 불법적으로 황태자를 세르비아 왕 밀란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는 당시 큰 국제문제로 비화하였고, 당시 프로이센의 황제 빌헬름 2세와 비스마르크 재상도 가담한 국제적 납치사건으로 “Wiesbadener Prinzenraub”으로 명명되며 유럽 정치, 사교계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사건 1년 전인 1887년 4월 세르비아 밀란 왕과 나탈리아 왕비는 이혼을 하며 이혼계약서에 황태자 알렉산더의 교육은 나탈리아 왕비가 담당하며, 나탈리아 왕비는 프로이센의 비스바덴에서 거주지를 구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1888년 6월 밀란 왕은 황태자를 세르비아로 돌려보낼 것을 요청하였고, 나탈리아 왕비는 이를 거절하며, 양측 사이 긴장이 고조되었고, 밀란 왕은 빌헬름 2세와 비스마르크재상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결국 법적 효력과는 무관하게,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프로이센 황제와 재상, 비스바덴의 경찰수뇌부 등이 가담하여 알렉산더 황태자를 불법적으로 탈취하여 세리비아로 돌려보내게 된 것이었다. 나탈리아 왕비는 황태자가 떠난 지 10시간 후에 비스바덴에서 추방되었다.

한편 세르비아로 돌아간 알렉산더 황태자는 다음해인 1889년 2월 세르비아 왕으로 취임하게 되는데, 오랜 후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다국적 정치적인 암붕협의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미술관과 주립미술관

Villa Clementine에서 중앙역 방향으로 내려오면 Rhein Strasse와 만나는 모퉁이인 Wilhelmstrasse 1번지에는 현재 7,500m2 면적에 현대미술관(Reinhard Ernst Museum)이 건립중이다. 올해(2022년) 개관예정인 이 현대미술관은 라인하르트 에른스트(Reinhard Ernst)의 사재로 건립되며, 그의 400여점의 소장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라인하르트 에른스트 컬렉션은 추상적인 독일과 유럽 전후 미술, 추상 일본 미술 및 추상 미국 표현주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대미술관 개관 후에는 건물 내에서 아이들을 위한 변화하는 전시, 공개 행사, 미술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헨센주 주립미술관인 “Landesmuseum für Kunst und Natur”는 건축 중인 현대미술관과Rheinstrasse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Friedrich-Ebert-Allee 2에 위치하고 있다.

주립박물관은 1913년 건축을 시작 1915년 완공되었으며, 황태자궁에 있던, 미술관, 자연 과학 박물관, 고대 박물관이 이곳으로 이전해 본격적인 박물관으로 개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으로 현재 주립박물관에는 순수예술 컬렉션, 자연과학 컬렉션, 고대유물 컬렉션으로 크게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비스바덴의 주립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야블렌스키(Jawlensky)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야블렌스키는 1921년부터 그가 사망한 1941년까지 비스바덴에서 활동하며, 비스바덴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의 유해는 네로산에 위치한 러시아 정교회 옆 러시아묘지에 안장되었다.

비스바덴 주립박물관은 야블렌렌스키를 기려 그의 50주기인 1991년 “야블렌스키 상(Alexej-von-Jawlensky-Preis)”을 제정 5년 단위로 시상하고 있다. 수상자는 상과 함께 18,000유로의 상금을 받는다.

한편 주립박물관 앞에는 2018년 새로 개장한 Rhein-Main Congress Center,(구 Rhein-Main-Hallen) 들어서 비스바덴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비스바덴 주립박물관을 끝으로 비스바덴 역사산책 “세기말(19세기) 화려함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Wiesbaden)”을 아쉬움 속에서 마친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한 방문객들을 위해 부록으로 네로 계곡의 수차와 네로 산 중턱의 러시아 정교회를 부록으로 소개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네로계곡 수차

시내에서 차로 5분 정도에 위치한 Nero산과 네로 계곡을 수차가 4월부터-10월까지 운행하고 있다.

1888년 개통하여 120여년이나 된 네로기차(Nerobergbahn)는 엔진도 없이 경사 25도, 길이 400m의 비탈을 오르내린다. 정상에 있는 기차에 물을 가득 채워 내려 보내면 물을 비운 아래쪽의 기차가 끌려올라가게 하는 방법으로 기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가장 깨끗한 교통수단 중의 하나이다.

러시안 정교회

네로산 중턱에 황금색 첨탑의 아름다운 러시아 정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교회의 아돌프공과 그의 첫 부인인 엘리자베스와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엘리자베스 공주였으나 그녀는 결혼 1년 만(1845)에 장티푸스로 인해 아이를 사산한 다음날 사망했다.

엘리자베스와 아기를 기리는 이 교회는 궁전에 있던 아돌프 대공이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시내에서 잘 보이는 네로산 위에 세워졌다. 5개의 황금색 돔이 멋스러운 교회의 내부에는 침대에 곤히 잠든 모습의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공주의 대리석상이 놓여 있다. 시내 쪽을 향한 문의 위쪽에는 죽음의 천사를 새겨놓았고 문에는 나사우 가문의 문장인 사자 방패와 러시아 가문의 문장인 머리 두 개 달린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이 교회를 짓기 위해 러시아는 100만 루블(현재 1300만 유로 상당)의 돈을 냈으며, 아직도 이곳은 러시아의 영토에 속해 있다. 2007년 러시아 푸틴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5개의 황금 돔을 50만 유로를 들여 새롭게 도금하였다.

현재 중요관광지로 버스가 올라갈 정도로 도로가 잘되어 있고, 교회 앞에서는 비스바덴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1251호 20면, 2022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