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전문가 협회 KIPEU 의 지식재산 상식 (7)
기술적 권리 다툼의 법적분쟁: 특허침해 소송 (1)

지난 몇 년, 특히 정보통신 기술 업계에서는 특허 분쟁이 끊이지 않아왔다. 특허 분쟁이란 특허를 바탕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권리 다툼을 벌이는 것을 뜻하며, 특허권자가 특허를 침해한 타인을 상대로 침해 행위 금지를 청구하는 특허권 침해 소송(Patentverletzungsverfahren)이 이에 해당한다. 모바일 기기 제조업체 경쟁사들 사이(일례로, 애플 대 삼성)의 특허권 침해 소송은 한국과 독일에서도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 들어 온갖 사물의 스마트화 (사물인터넷, IoT)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통적으로 특허 분쟁과는 거리가 있었던 업종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업계의 특허 분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모든 사물로 확장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일례로, 필자도 플라스틱 제조업체로부터 정보통신 기술에 기반한 특허 분쟁에서의 대응 방법에 관해 강연 요청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이 우려는 재작년을 뜨겁게 달궜(으나 빠른 로열티 협상으로 싱겁게 끝났)던 반도체 제조업체 브로드컴과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의 분쟁, 작년에 시작되어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는 통신업체 노키아와 자동차 업체 다임러와의 분쟁으로 현실이 되었다.

특허권 침해 소송은 특허권자가 원고로서 소를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특허에서 발명을 해당 발명을 이루는 특징들로써 정의한 부분을 청구항이라고 하는데, 원고는 소장에 잠재적 침해자(피고)가 청구항에 명시된 물건 또는 방법을 제조, 판매, 유통 등으로써 이용했다는 증거를 나열하며, 손해 배상, 판매 중지, 제품 리콜 등을 주장한다. 특허가 완제품에는 드러나지 않는 제품 내부의 정보 처리 등을 보호하는 경우에는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쉽지 않지만, 이 증거 제시가 비교적 용이한 경우가 있다는 데에 정보통신기술 특허의 특이성이 있다. 정보통신기술에는 서로 다른 업체에서 만들어진 통신 인프라와 모바일 기기 사이의 상호작용을 위해 기술 표준이 도입되어있기 때문이다. 기술 표준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으며, 특허권자는 피고의 통신 인프라 장비 또는 핸드폰 등이 특허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일일이 증명하는 대신, 특허가 기술 표준의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지 보이게 된다.

한편, 이에 대응하여 잠재적 침해자는 피고로서 자신의 제품 및 방법이 청구항과는 어떻게 다른지 보임으로써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특허 침해가 인정된 경우라도 특허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특허가 유효하지 않은 경우다. 특허는 등록된 발명에 대한 독점권이므로, 발명이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즉, 신규성이 없거나 진보성이 없는 경우 그 유효성을 잃는다. 물론 특허 출원 시 심사 과정에서 신규성과 진보성이 검토되지만, 모든 특허 청구서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심사에서의 조사 강도와 그 유효성 여부에 제품의 판매 중단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에의 조사 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 중 기술 표준에 해당하는 특허의 경우에는 피고에게 또 한 가지 강력한 방어 무기가 있는데 바로 기술 표준에 따른 소위 프랜드 (FRAND: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요건 위반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체에서는 경쟁사 특허의 침해를 피하기 위해 특허와는 구분되는 기술을 개발한다. 그러나 기술 표준으로 지정된 특허의 경우, 제조업체는 이를 따르지 않고는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 특허권자가 발명 자체를 넘어서 기술이 표준으로 지정되는 데에 따르는 추가적인 이득을 누리는 셈이다. 이 경우, 특허권자가 터무니없는 로열티를 요구하더라도 후발 주자는 대응이 힘들다. 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일환으로 유럽 사법재판소는 2015년 화웨이 대 ZTE 분쟁에서 표준 기술 특허권자가 침해자를 상대로 공정하고 (Fair),합리적이며 (Reasonable), 또한 (And) 비차별적인 (Non-Discriminatory) 협약을 맺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 특허가 침해당했더라도 판매 중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를 충족하는 프랜드 (FRAND) 요건에 대해서는 유럽 전역,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논의가 있어 왔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독일에서는 지난 몇 년, 프랜드 요건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특허권자와 잠재적 침해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방 법원 및 고등 지방 법원에서 여러 판결이 있었고, 언와이어드플래닛(특허 관리 회사) 대 화웨이, 시스웰(특허 관리 회사) 대 하이얼 케이스가 2020년 3월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영국에서는 지난 해 10월, 두 건의 영국 특허 침해를 바탕으로 영국 법원이 침해자에게 전세계적인 포트폴리오 로열티 부과라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를 두고 다툰 언와이어드 플래닛 대 화웨이, 컨버선트 (역시 특허 관리 회사) 대 화웨이, ZTE의 대법원 재판이 있었고, 유럽 전역의 특허 분쟁 관련자들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앞서 잠재적 침해자의 방어 무기 중 하나가 특허의 무효화라고 했는데, 사실 독일의 경우 특허권 침해는 일반 민사 법원에서, 특허 무효는 연방 특허 법원에서 따로 다루는 침해/무효의 이원적 체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 침해 법원(민사 법원)에서는 특허의 무효화를 결정할 수 없고, 단지 특허가 향후 연방 특허 법원에서 열릴 무효 재판(Patentnichtigkeitsverfahren)에서 무효로 판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지를 따지게 된다. 이는 침해 소송에서 특허의 무효 여부도 함께 판가름하는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특허의 유효 여부가 입증되기 전에 특허권자가 이미 침해에 따른 권리– 특히 판매 중지–를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행사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는 특허권자에게 장점으로 작용하여, 독일이 제조업 강국인 것과 더불어 독일 법원이 특허 분쟁에 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특허권자가 유효하지 않은 특허를 이용, 판매 중단 위협이라는 무기로 로열티 협상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이에 독일 산업계로부터 비판이 있어왔고, 독일 법무부는 지난 1월 특허법 개정안 초안을 공표했다. 개정안 초안에 따르면 특허 법원은 무효 소송이 시작된 지 6개월 내에 예비 의견을 침해 법원으로 전달하게 된다. 또한, 판매 중단 집행이 침해자에게 너무 가혹할 경우에는 권리 행사가 제한된다.

이 개정안과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프랜드 요건 관련 대법원 재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유럽 특허 법원 관련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 향후 자동차 업계 나아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 이용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노키아 대 다임러의 분쟁 등 독일에서는 현재 특허 분쟁 관련 이슈가 차고 넘치는 흥미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흐름에서 유럽과 독일에서 경제활동을 하시는 한인 사업가 혹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도 특허권 이슈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호에서는 소송의 진행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김주민 유럽/독일 변리사, 물리학 박사, 뮌헨 거주
소속: Braun-Dullaeus Pannen Emmerling Patent- und Rechtsanwälte, 파트너
연락처: jumin.kim@bdpe.de

교포신문사는 유럽 및 독일에 거주.생활하시는 한인분들과 현지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하시는 한인 사업가들을 위해 지식재산 전문단체인 “유럽 한인 지식재산 전문가 협회” [KIPEU, Korean IP (Intellectual Property) Professionals in Europe, 회장 김병학 박사, kim.bhak@gmail.com] 의 지식재산 상식을 격주로 연재한다. 연재의 각 기사는 협회 회원들이 집필한다.
KIPEU는 지식재산 분야에서 한국과 유럽의 교류 및 협력 증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단체로서, 유럽내 IP로펌 또는 기업 IP 부서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변리사 등의 지식재산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회이다.

2020년 4월 17일, 1167호 16-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