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전문가 협회 KIPEU 의 지식재산 상식 (10)
특허권과 반독점법 간의 긴장관계

이번 호에서는 특허권 행사가 독점금지법 위반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특허가 특허권자에게 일시적인 독점 또는 배타적인 권리를 주는 것이라면, 독점금지법 규제는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 남용행위를 규제하는 일종의 ‘경제 검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독점금지법과 특허는 창과 방패와 같은 미묘한 긴장관계가 있다.

물론 특허를 보유했다는 것 자체로 독점금지법 위반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 특허권자의 권리 행사가 독점금지법 위반이 될 수 있을까? 이번 호에서는 반독점법 또는 경쟁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독점금지법을 간략히 소개하고 특허 관련 반독점 사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 독점금지법: 19세기 석유, 철도 독점자본 횡포의 규제에서 구글, 페이스북 규제에 이르기까지

독점금지법은 자본주의 및 산업화와 더불어 성장한 법이다. 19세기 후반 미국 전역에 철도가 본격적으로 깔리기 시작하면서 무분별한 출혈경쟁을 막고자 철도회사간 불법적인 가격담합, 시장분할을 조장하는 카르텔이 생겼고, 이를 규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한편, 당시 석유왕으로 유명한 존 록펠러도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후 경쟁사들을 연달아 흡수합병하여 덩치를 키워 당시 미국 전체 정유산업의 90%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독점자본의 시장질서 교란을 규제하기 위해 당시 존 셔먼 상원의원이 주도적으로 발의한 셔먼법(Sherman Act)이 바로 미국 독점금지법의 모태이다. 셔먼법 제1조는 가격담합 등 경쟁사간 공모를 금지하고, 셔먼법 제2조는 부당한 독점 또는 독점化 행위를 금지한다. 미국은 담합의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다(Data is the new oil)”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디지털 경제가 발달하면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거대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활발해지는 추세이다.

독일과 유럽경쟁법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후 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수호하려는 질서자유주의(Ordo liberalism)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경쟁제한금지법(Gesetz gegen Wettbewerbsbeschränkungen)을 만들었다. 그러나, 전후 폐허 속에서 경제재건이 무엇보다도 시급했기 때문에 독점금지 규제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철강, 화학, 금융 등의 산업분야에서 경제력 집중 문제가 현실화되면서였다.

유럽연합은 독점 행위가 회원국 간의 교역을 제한할 수 있는 점에 착안하여 처음부터 경쟁법 규제를 유럽연합 고유의 강력한 기능으로서 명문화하였다. 유럽연합기능에 관한 조약(TFEU: 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 제101조 공모 금지 조항과 제102조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금지 조항은 유럽경쟁법의 양대 주춧돌이다. 유럽은 형사처벌은 없지만 위반 기업에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한다. 현재까지 역대 최대 과징금은 2018년 구글에 부과된 5.7조 (4.3 Billion유로)이다.

특허의 경쟁법적 규제: IT분야에서 활발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특허권 보유 자체가 경쟁법 위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특허권의 행사가 경쟁법 이슈가 될 수 있는데, 특허의 중요성이 매우 큰 IT분야가 주 타겟이 되어 왔다.

무선통신 표준필수특허와 FRAND 의무

휴대폰에 쓰이는 3G, 4G 등의 통신표준기술의 구현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특허로 보호되어 있을 경우 이를 표준필수특허(SEP, Standard-Essential Patent)라고 한다. 표준필수특허 권리자는 이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비차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라이선스를 제공하겠다는 이른바 FRAND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약속을 하도록 되어 있다. 2017.1월 한국 공정위가 통신칩셋 제조사 퀄컴에게 1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과징금과 함께 퀄컴의 특허 라이센스 행태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이 사건에서는 퀄컴이 경쟁 칩셋 제조사에게 라이센스를 주지 않고 대신 고객사인 단말제조사에게 단말 가격을 기준으로 로열티를 받고 라이선스를 제공한 것이 FRAND 의무 위반으로써 반독점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 중의 하나였다. 퀄컴의 불복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최근에는 휴대폰 뿐만 아니라 커넥티드카(Connected Car)로 인해 자동차 등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이 통신표준 필수특허가 사용되면서 관련 반독점 이슈가 대두되고 있어, 5G 시대에도 특허권의 반독점법 간의 긴장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김희은 영국/미국 변호사, hkim1121@gmail.com

교포신문사는 유럽 및 독일에 거주.생활하시는 한인분들과 현지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하시는 한인 사업가들을 위해 지식재산 전문단체인 “유럽 한인 지식재산 전문가 협회” [KIPEU, Korean IP (Intellectual Property) Professionals in Europe, 회장 김병학 박사, kim.bhak@gmail.com] 의 지식재산 상식을 격주로 연재한다. 연재의 각 기사는 협회 회원들이 집필한다.
KIPEU는 지식재산 분야에서 한국과 유럽의 교류 및 협력 증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단체로서, 유럽내 IP로펌 또는 기업 IP 부서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변리사 등의 지식재산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회이다.

2020년 6월 5일, 1173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