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중인환시 (58)

– 미녀와 악녀 (1)

중국사람들이 말을 부풀려서 과장하거나 미화시키는 버릇이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말이 과장되고 부풀려 진 엉터리없는 소리구나 싶으면서도 들어서 나에게 손해되는 일이 없을 때는 흰거짓말이라 생각하고 솔깃해 하는 것도 사실이다.

4대 미녀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름다웠던 여성이 있었는가 하면 마음마저 미웠기에 4대 악녀라고 불리웠던 여성도 있었기에 역사순으로 찿아 보았다.

첫 번째로, <서시>의 본명은 <시이광>이고 주나라가 서주와 동주로 나뉘고 동주가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뉠 때 춘추시대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오월동주라는 사자성어가 있게 된 그 월나라가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망하자 서시가 전리품으로 오나라에 보내지게 되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오나라의 왕 부차는 그녀의 치마폭에서 벗어 나지 못했고

바른 정치 해주기를 충언하던 충신 <오자서>의 목을 베어 가면서까지 서시를 가까이 했으니 민생은 물론 나라의 정치-국방은 피폐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서시>가 어느 정도로 예뻤기에 <부차>가 그녀의 치마폭에서 벗어 나지 못했는가를 알아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서시가 집안의 빨래를 모아 강가로 나갔던 모양이다. 이때 물고기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고 해엄치는 것을 잊고 바닥으로 가라 앉는 것을 보고 서시의 별명을 <침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동주 때의 춘추와 전국시대를 평정한 사람이 중국을 처음통일하였다 하여 진시황이라고 부르는 정(政)이라는 사람이다.

이후 한나라 유방이 중국전역을 먼저 통일했던 진나라(진시황)를 15년만에 패망시키고 400여년동안 중국을 진정한 통일국가로 지켜 나갔다.

이 한나라는 전한(210 존속)- 신(15년존속)- 후한(200년존속)으로 나뉘고 이 후한 때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삼국시대가 있었다.

한나라 때에 등장하는 여인이 <왕소군>과 <초선>인데 두 번째로 <왕소군>의 이야기부터 들어 보자.

<왕소군>은 전한 원제 때 여인으로 북쪽 흉노족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내 달라는 강요를 거절할 수 없어 고민하다가 <가장 미운 여성으로 보내리라> 생각하고 화방에 일러 궁녀들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오도록 했다.

삼천궁녀들 중에서 못생긴 얼굴을 찿는다는 게 쉽지 않았겠다 싶은 것은 미운 얼굴로는 궁녀로 뽑힐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예쁜 궁녀들 중에서 미운 궁녀를 찿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한번가면 다시는 못돌아 오는 곳으로 알고 있던 궁녀들이 왕의 선택에서 빠지기 위해 화가에게 뇌물을 주며 <실물보다 더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화백들에게 뇌물을 줄 수 없었던 <왕소군>의 얼굴이 추녀로 그려진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원제는 이렇게 못생긴 처녀가 궁녀로 들어 온것에 놀라며 삼천궁녀의 그림을 다 볼 필요도 없이 추녀로 그려진 왕소군을 골라 냈다.

흉노족의 북쪽으로 보내기 전에 위로의 말이나 전하자고 불러들인 <왕소군>을 본 원제는 왕소군이 절세미인 것을 알고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흉노족에 이름이 올려진 뒤라 바꿔치기도 할 수 없었다.

왕소군이 흉노족에 보내질 때 <하늘을 나르던 기러기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날개짓하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하여 <낙안>이라고 불리운 여인이다.

세 번째로, 후한 때의 <초선>은 재상<왕윤>의 시녀로 연환계(連環計)에 이용되었던 여인이다.

연환계는 병법36계중에서 35번째 병법으로 쇠고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계략을 연속적으로 사용한다 하여 연환계로 부르는 병법이다.

<초선>은 왕윤의 계략대로 작전상 여포에게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한 후에 동탁의 첩으로 들어 앉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여포가 난폭한 성질에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그 성질을 돋구어 동탁을 죽이게 하자는 계획이다.

사실 초선은 여포도 아니고 동탁도 아닌 재상 왕윤을 마음 속에 두고 있었으나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때 구름이 달을 가리는 것을 본 왕윤이 <아름다운 네 얼굴을 보고 달도 구름뒤에 숨어 버리는구나>했던 말이 알려져 그후부터 초선을 <폐월>이라 불렀다고 한다.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의 <서시>를 보내고, 후한 때의 삼국시대 <초선>이야기도 끝나고, 우리 나라를 3번이나 쳐들어 왔지만 매번 패망한 수나라도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니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오무러 들 정도의 미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여인이 중국의 네 번째 미녀로 알려진 <양귀비>라 하는 데 본명은 <양옥환>이다. 그녀는 치마폭에 현종을 감아쥐어 정치를 좌지우지하며 나라를 어지렵혀 갔다.

양귀비 때문에 안록산의 난이 일어 나고 이로 인해 당나라까지 망하고 말았으니 일찌기 유대인들은 <미녀는 쳐다만 보는 것이지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했거늘.

2019년 10월 18월, 1143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