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선수의 한을 풀기 위해
베를린 시내를 태극기 물결로
물들이고 싶은 바람으로

강정희

베를린 사는 간호학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만난 지도 오래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꼭 베를린에 오셨으면 좋겠어요.”

오래전만 해도 1년에 한 번 만나는 동문회에 꼬박꼬박 참석했었는데 최근엔 그 기간에 문인 모임이 겹쳐 거기에 쫓아다니다 보니 동문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동문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내 후배 장현자는 50년 가까이 베를린에 사는 마라톤 애호가다. 한국에서 100여 명의 마라토너 국위선양 프로젝트를 준비한 이봉건 팀장이 현지에서 도움을 줄 사람을 찾다가 우연히 내 후배를 알게 되어 연결되었다고 한다. 봉사 헌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봉사는 자발적이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데 내 후배는 맡은 일에 온 힘을 다하여 끝맺음하는 책임감 있고 배려 깊은 사람이다.

2019년 베를린 마라톤 국위선양 프로젝트 이봉건 팀장의 취지는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0분 19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라야 했었다. 손기정 선수는 자신이 자랑하고 싶고 대한민국을 온 세계에 알리고 싶었지만,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83년 전 손기정 선수의 한을 풀기 위해 베를린 시내를 태극기 물결로 물들이고 싶은 바람으로 준비하였고 또한, 분단의 비극 속에 있는 한국에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의 의미는 남다르다며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달리고 싶었다고 한다.

난 9월 27일 베를린에 도착하여 큰아들 가족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저녁 늦게 후배 집으로 갔다.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주는 폴카는 언제나 편안함을 선사한다. 우리들의 만남은 설렘이고 기쁨이다. 밤늦게까지 쌓였던 얘기를 하며 이번에 한국에서 국위선양 프로젝트로 베를린 마라톤에 참석할 아마추어 마라토너와 현지인의 만찬, 문화 교류 행사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28일 토요일에 이봉건 팀장이 제작팀과 함께 자기 집을 방문하여 동영상을 찍을 거라며 날 더러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게는 좋은 기회지만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잘 해 낼 수 있을까? 혹시 폐를 끼칠까 봐 두렵기도 했다.

12시경에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도착하여 장현자 님의 가족 상황, 파독 간호사로 오게 된 동기며 어려움 등을 인터뷰했다. 다소 가슴 뛰는 시간이었다.

2019년 9월 29일 8. 00시에 마라톤대회가 독일 베를린 대표적인 건물 브란덴부르크 앞 광장을 출발했다. 영상 15도에다 비까지 내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열린 46회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선 150개국에서 온 마라토너 46, 983명의 선수가 참가해서 44, 065명이 완주했다. 39Km 지점쯤에 베를린 한국 문화 센터 가까운 포츠다머 플라츠에 한국 응원단을 설치하여 작은 태극기를 이곳저곳에 꽂아 분위기를 조성하며 물, 콜라, 바나나 등을 제공해 힘을 북돋웠다. 베를린 글뤽아우프 김진복 회장은 큰 태극기를 들고 함께 하셨는데 물결처럼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습이 감동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종일 태극기가 펄럭였다

응원단은 마라톤 코스에서 태극기를 달거나 코리아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과 한국의 개인 참가 선수들이 눈에 띄는 순간순간 코리아 화이팅! 이라며 목청을 돋워 가열하게 소리쳤다.

이날 대회는 마라토너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민에게도 축제의 날이었다. 비를 맞아가면서도 완주를 위해 달리는 참가자들과 함께 열광적인 거리응원을 펼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감동의 도가니였다.

마라톤을 완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마라톤에 대해 새삼 고개가 숙연해진다.

응원을 마치고 14. 30시경에 후배 집에 도착하였는데 대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진을 쳤다. 내 후배는 오전 내내 음식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고 한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채소전 꽁다리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3시경에 베를린 한인 천주교의 휴게실인 만찬의 장소에 도착했다. 약간 비좁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는데 깨끗한 하얀 식탁보에 울긋불긋 가을의 색깔로 장식된 초록 잎과 국화꽃이 정겹고 아늑한 분위기로 변화되었다. 성당에 다니는 10여 명의 교우가 발 벗고 나서서 각자 맡은 소행을 충실히 해 주는 모습과 음식은 마음이라고 두 개의 상에 정성껏 차린 풍성한 한국 음식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폴카는 군소리 하나 없이 부인이 준비한 물품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운반하고 궂은 날씨인데도 숯불에 고기를 굽는 일을 맡아 외조하는 든든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랑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사랑하기에 한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모래톱처럼 다독이며 거짓 없는 몸짓으로 어려울 때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저녁 6시경에 두 대의 버스로 마라토너들이 도착했다. 현지인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뛰어나가 환영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나름대로 한마디씩 하시며 마치 먼 길을 떠난 형제자매가 집으로 돌아옴을 환영하는 것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식사 전에 한국에서 함께 오신 TMI경제 방송 최예슬, 박혜진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약 30분간의 프로그램에 따라 국민의례, 애국가 합창이 있었다. 타향살이하는 우리에게는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콧등이 찡하고 가슴이 뭉클해짐은 숨길 수가 없다. 주어진 남은 생애를 한민족의 동포애와 정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함을 다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뒤이어 오상용 베를린 한인회장의 축사가 있었는데 자신은 40년이 넘게 베를린에 살고 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많은 마라토너가 열정을 가지고 참가하신 모습은 처음이라며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다며 언젠가는 베를린 마라톤에서 1, 2, 3 우승하는 마라토너가 꼭! 나오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이번 국위선양 프로젝트팀을 위하여 수고하신 장현자 님께 감사패 전달이 있었다. 국위선양 프로젝트를 돕게 된 경위와 소감을 본인도 65세까지 5번이나 베를린 마라톤에서 직접 뛰었다면서 이 국위선양 프로젝트의 취지를 듣고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3월부터 성공적인 참가를 위하여 치밀한 계획으로 일을 진행하여 응원단원팀을 만들고 오늘의 이 뜻깊은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함께해 주신 도우미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또한, 아무 기업 후원 없이 전원 자비 출전으로 베를린 마라톤에 참가하신 이봉건 팀장을 비롯하여 모든 분께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며, 여러분 잘 하셨습니다! 애국자가 따로 있나요? 여러분 모두는 애국자십니다! 즐겁게 지내시고 무사히 귀국하시기를 바란다며 인사말을 마쳤다.

강정희

꽃망울 버는 나이 꿈을 품고 훨훨 날아
나이팅게일 소명 펼칠 독일 땅은 이역만리
어둠의 역경 이겨낸 나는야 파독 간호사

꿀 먹은 벙어리 말이 트고 생각 트고
소독물에 밴 손은 거북 등이 따로 없고
달빛에 걸어 놓은 그리움 그저 눈물이었다.

가난한 내 영혼 설움 속에 찾은 이
흑인 아닌 흑인 남편 우리 가족 캐낸 광부
독일 땅 뿌리 내랬네 두 아들아 여보야

길고 긴 세월이다. 묻혀버린 청춘이다
근면히 성실하게 온 힘 다해 살았다오
이제는 박하사탕 같은 나라 절로 웃음 나온다

아름드리 사랑으로 느지막 꿈을 향해
하얀 솜털 민들레 씨 하얀 날개 실어간다
내 뜨락 살구꽃 피워 꽃 자수로 놓아야지

언젠가 내 숨소리, 발걸음 멈추는 날
나의 꿈 나의 뼈는 독일 땅에 묻히려니
영혼은 숨 죽은 그리운 고향을 하늘거리리.

 

‘신의 경지’라 불리는 Sub – 3 (42.195Km를 3시간 안에 달리는 기록) 10명의 달성자 시상과 소감이 있었으며 파독 간호사의 소감의 차례에 재독 시인 강정희 작가는 (길) 연시조로 50년 동안 걸어온 삶을 낭송했는데 낯설고 설은 땅에 속으로 숨긴 서러움의 고백은 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최근에 발간한 독일 하늘 아래 우리들의 이야기, 때론 웃음으로 때론 눈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듯 우리의 삶을 열심히 일구어 온 파독 간호사의 애환이 담긴 단편 소설집 ‘한강과 라인강의 두물머리’를 소개했다.

뒤이어 만찬, 사람과 사람을 잇는 향기로운 다리를 잇는 시간, 문화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좋은 만남은 축복이고 아름다운 인연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이들을 위해 풍성한 음식, 해물 국수, 각종 음료수와 독일 맥주는 식욕을 돋웠다. 해물 국수는 마라톤 경기 후에 탄수화물 보충을 위한 필수 음식이라고 한다. 완벽한 준비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자리매김한 성공적이고 뜻깊은 행사였다.

만나자 이별이라고 20.30시경에 조만 간의 만남과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아쉽게 헤어졌다.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야무진 꿈을 이뤄 언젠가 마라톤에 꼭 우승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난 저녁 늦게 큰아들 집으로 이동했다. Oma오마가 언제 오느냐며 보채던 손녀 레니는 잠이 들었고 안락하게 꾸며 놓은 방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아침 일찍이 레니가 조잘거리며 내 곁에 다가와 내 볼에 볼을 비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들은 병원으로 손자 쌈은 학교로 안트에는 레니의 곱슬 머리를 빗기며 유치원에 데려 갈 준비를 한다. 그 옛날 우리가 살았던 숨 가쁜 매일매일, 똑같은 길을 우리 아이들도 가고 있다.

레니는 내가 선물한 부엉이와 기린이 그려진 예쁜 원피스를 입고 지난 한국 여행에서 가지고 온 분홍색 뽀로로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팔딱팔딱 띠며 유치원으로 향한다. 몸은 바쁘게 늙어가고 마음은 거꾸로 흘러가나 아직도 내게 촘촘하게 박혀있는 그 옛날, 햇살에 눈 부신 어머니 미소가 사르르 하늘 위로 번져가는 봄날, 엄마 손을 꼭 잡고 조잘거리며 외갓집 가던 돌담길이 생각난다.

유치원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이른 오후에 할머니가 레니를 데리러 온다는 말을 남기고 며느리는 직장엘 간다.

밥은 시끌벅적 같이 먹어야 제맛이라고 모처럼 아이들을 위해서 저녁을 준비하려고 마음에 해를 띄우며 나는 시장엘 간다.

마음과 발걸음이 바빠 온다. 가을의 웃음소리가 커진다.

《한강과 라인강의 두물머리》

강정희

촘촘히 박혀있는 오십 년의 애환들
가슴 치는 된 슬픔 아름답게 승화되어
해맑은 눈물로 빛나는 우리들의 발자취

 

2019년 10월 18일, 1143호 14-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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