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소리 (1)

류현옥

1

밤의 정적을 깨는 기차소리는 정해진 시간에 대지를 진동하여 소희를 깨운다. 언제나 같이 소희의 마음은 때를 맞추듯이 마음의 추도 박자라도 맞추듯 흔들리는 반응을 보인다. 이미 사라진 그 낭만적 최초의 로코모티브 음향일리 없지만 효과는 조금도 다름없이 여전하다. 온갖 기억이 담긴 소리다. 그녀에게는 어린 날 어머니가 불러준 동요 같이 정든 소리다.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칙칙폭폭’ 노랫소리가 들린다.

새벽의 어둠속을 기차는 어딘가를 향해 달린다. 집을 떠나는 사람들을 가득 싣고 잠에서 깨어나는 호변의 안개를 걷어치우며 지나는 시간, 같은 시간에 그녀를 깨워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다. 동창이 서서히 밝아오고 기찻길가의 고목에서 잠자던 아기 새까지 일어나 배가 고프다고 짹짹거리며 엄마 새를 깨운다. 그때쯤이면 소희는 창가로 가서 새벽공기를 불러들이고 철길을 내려다본다.

그녀는 황혼기에 들어서 이곳 기찻길 옆의 방두칸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발코니에 서면 발아래 철도를 오가는 기차를 볼 수 있는 건물의 제일 꼭대기 15층이다. 베를린 스판다우 구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가까이 자리한 요한 재단이 교회 꼭대기가 보이는 아파트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말렸다. 역전의 지저분한 광경도 그렇고 어쨌든 철길 옆의 집에서 소음을 즐기며 살겠다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소희의 속을 모르기에 그들 나름대로 걱정이 되어 한마디씩 했다.

“너는 15층이라 잘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집에서 살아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어! 소음의 전달은 대기의 영향을 받아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느냐에 다르거든!”
“지금 와서 굶고 살던 때의 습성으로 기찻길 옆에 살려고 하나?”
“철길 옆의 집은 가난의 상징이야!”
“고속으로 달려가는 기차소리는 대지를 진동하며 공기를 흔들고 지나갈 때 내는 소리로 방음벽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니까!”
“왜 소음을 자진하여 들으며 살겠다고 그러니…”
“밤낮으로 창문을 닫아놓고 살수는 없지 않니”
“특히나 너는 창문을 닫고 침체된 공기 속에서 밤새 자는 수면은 몸에 좋지 않다고 말했던 사람이 아니니?”

소희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이사를 결정하는 자리인데 친구들은 장소가 카페라는 것도 잊고 목소리를 높여 설득작전을 벌렸다. 토론의 주제를 그녀가 제공한 셈이다. 그녀는 지난날 고립되어 혼자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어딘가 숨었다가 그녀의 형편이 좋아진 후 다시 나타나 원하지 않은 조언들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빈곤의 근성이라는 말, 그녀에게 아직도 그 근성이 남아있고 그 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마치 그녀를 바로 서게 해주는 지팡이 같이 붙들고 살겠다는 것을 조롱하는 말. 소희는 떠드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다시 외로움을 느꼈다. 기차소리가 나는 철길 옆에 서있던 옛 고향집을 잊지 못한다. 기차길옆의 집은 사립문을 열고 드나들던 기억속의 오두막살이처럼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것을 친구들은 모른다.

친구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소희는 기차소리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그녀의 진실이었다. 그녀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는 일로 그녀에게 기차소리는 소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뇌리 속에 엉켜있는 오만가지 생각 속에 담겨있는 걱정과 불안을 기차소리가 쓸어간다고도 말했다. 산만한 그녀의 정신을 정리해준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으로 외로움과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해소해주는가 하면 반면에 잊었던 먼 이야기를 생각하게 주었다. 기차소리에 담긴 추억이야말로 말로 그녀를 위로하고 안정을 주는 음악 같은 것이었다. 기차소리를 들으며 두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아버지의 얼굴, 걱정스런 어머니의 얼굴, 사랑했던 두 동생의 얼굴 은 그녀의 약해진 심신을 지켜주었다. 친구들의 걱정스런 조언을 듣던 날, 자리에 들어 잠들기 전의 시간에 눈을 감고 새삼스레 눈앞에 나타나는 그들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들만이 그녀를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이사를 단정한 것이다. 친구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밀고 나가는 것도 상당히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었지만 그녀 나름대로 자신을 다짐하며 확고부동한 자세를 취하게 하는 심사숙고의 동기가 되어주었다. 막연했던 것을 확고하게 만드는 채찍 같은 것이었다. 20 여년은 더 살지 모르지만 이제 여생을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사고를 정리해주는 기차소리는 오히려 치료제였 다. 특히 조용한 새벽시간에 기차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그녀에게 오히려 행복이었다.

이른 시간에 약속한 사람과 만나 아직 잠에서 덜 깬 온몸을 서로 기대어 밝아져가며 지나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여객들을 생각하며 같이 여행길에 올랐다. 빠르게 지나가는 창문 밖의 세상을 기차 속에서 보며 잠시 세상을 잊는 사람들 사이를 헤지고 들어가 앉는다. 그녀는아픔을 알지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들의 옆에 앉아 옆 사람의 체온을 느낀다 . 그들처럼 삶을 음미하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세상을 눈앞에 그리면서 피로한심신을 기차소리에 맡꼈다 . . 친구들이 모르는 그녀의 내면 세계였다.

그녀를 찾아드는 기억 속에 남은 사람.

그해 가을 기차 안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온갖 것을 다 맡기고 가자는 곳을 따라갔다. 낯선 동네의 작은 펜션에 짐을 내려놓고 강가를 걸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 숲속길에 들어섰다. 겁도 없이 세상을 믿고 걸었다. 오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착각했었다. 호텔방에 돌아와 정사를 즐긴 후에는 평생을 같이 살아도 될 것 같은 환상 속에 두고 온 세상을 다 잊었다. 얼마 만이었던가? 영원하게 기억 속에 남은 그 짧은 사랑! 기차를 타고 약속을 한 장소에 가서 정사를 즐겼다. 그 남자는 어느 날인가 그녀를 기차역 대합실에 세워두고 고별의 예고도 없이 곁을 떠나갔다. 역전에 서서 떠나가는 그에게 손을 흔든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단절된 것이다. 그가 남기고간 작은 생명은 이미 그녀의 뱃속에 자리를 잡은 후였다. 이 추억을 기차소리에 저장한 채, 소희는 새 생명을 위한 일상생활의 온갖 사소한 일 속으로 사무쳐 들어갔다. 다시 혼자살기를 몇 년, 살던 집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철길 옆에 선 고층아파트 집으로 옮겼다.

형식적으로 시작한 새 삶은 언젠가 지루한 묵은 삶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번만은 새 삶이 아닌 마음속에 든 옛 것들을 꺼내어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버리지 않고 다시 담는 시작이었다. 그녀의 뇌리는 온갖 오래된 혼자만 아는 비밀들로 가득했다. 잊었던 것들 속에 숨겨둔 것들이 나타났다. 머릿속에 담겨 따라다니는 회한 은 사라진 애인 이전에 일찍 세상을 떠난 기관사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소희가 기찻길 옆집으로 이사를 간 것은 마치 고향집을 찾아간 것과 다름없었다. 기차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들어가고 기차소리에 잠에서 깰 때마다 콧끝을 지나가는 아버지의 기관사 근무복에서 나던 냄새를 다시 맡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같이한 기차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에게 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온갖 기억을 싣고 오는 기차소리는 그녀 앞에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녀에게 아버지와 애인을 불러다주는 사랑의 소리다. 아버지를 생각하고 떠난 애인을 생각하며 기다리며 살다 죽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지만, 애인은 어느 날 기차에서 내려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 며 기기올것같았다 소희는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역 대합실 나무벤치에 앉아 막 도착한 기차가 쏟아 놓고 간 여행객들을 지켜보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얼굴이지만 옛 애인이 쏟아져 나오는 여행객에 섞여 그때처럼 작은 가방을 들고 나온다면 금방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역시 종종 소희를 생각하고 그때처럼 목적 없이 떠나 영감을 받아 이곳에서 내릴 것이라고 믿었다. 기차에서 내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기를 찾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기에 이르렀다. 때때로 그런 꿈을 꾼 날 아침이면 두 개의 커피 잔을 상위에 올려 상을 차렸다.

새집에서 시작한 생활은 생의 마지막 단계를 기다리는 거였다. 애인을 실은 채 떠나간 그 기차는 그동안 그를 태우지 않고 셀 수 없이 자주 되돌아 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미 모든 것은 끝나고 있었다. 재출발할 수 없다. 그가 떠난 후의 날들을 음미하면서 만족하는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몸과 마음을 같이한 준비과정이다. 마치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챙기는 것과도 같다. 그녀의 전 인생에 무게를 다한 아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멀리 떠나갔다. 백발이 되어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무거워져가는 몸을 천천히 끌고 손을 잡아줄 떠나간 애인을 역 대합실에서 의 가망 없는 기다림은 그녀를 점점 산사람들과 멀어지게 하는 단계였다. 역전을 가득채운 사람들은 더한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아들은 혼자 사는 어머니가 기찻길 옆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할 때 말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묻지도 않은 아버지와의 만남을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기차가 등장했다. 기차는 아들과 어머니를 연결하는 끈이었다. 함께 살수 없는 어머니가 기차소리를 들으며 위로를 받겠다는 것도 이해했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기차소리만 나면 아버지를 생각한다고 하고 이제는 그곳이 어딘지 기억도 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마지막 이사’라는 것을 은연중에 의식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과거는 물론 현재를 모른다.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의 가족을 알지 못한다. 미혼모로 아들을 안고 귀향할 수 없었다고만 했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외손자를 어머니에게 안겨 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네가 있었기에 나는 살 수 있었고 너는 나의 행복이었어.” 라는 말로 끝을 맺는 것을 잊지 않았다.

2

기관사가 직업인 소희아버지의 일터는 기차머리통에 붙은 운전실이었다. 정해진 철도선의 같은 길을 왕복하며 눈앞에 전개되는 사철의 변화를 즐기는 직업이라고 말한 아버지였지만 중년이 지나고부터는 피로와 권태증으로 유머를 잃고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로 갈등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를 구타했고 며칠간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럴 때면 기차역 인근의 펜션으로 가서 기숙하다가 일자리로 갔다. 어머니와 화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생활 수단이 없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직장과 아버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인내로 가족생활이 유지되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날 어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식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부엌에 들어가 혼자 훌쩍거렸고, 며칠 후에는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고 자식들을 위로했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 날아왔다. 아버지의 사망은 우리가족의 파산이었다.

소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울고 있는 어린 그녀를 끌어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세 아이는 제각기 구석을 찾아 앉아서 아버지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어머니는 소희에게 어린 두 동생을 맡기고 몇 시간 동안 사라졌다. 아버지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후에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으로 슬퍼하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잠시 어디를 갔다와야 한다던 어머니는 장시간을 돌아오지 않았고 소희의 슬픔에 공포심이 섞여 들었다. 어머니마저 어디로 가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희는 두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를 기다린 시간이 남긴 상처는 오랜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 그것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같은 것이다. 기다리던 어머니가 퉁퉁 부은 눈으로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 해진 저녁 무렵이었다. 배가 고프다는 동생을 위해 어머니는 밥을 안쳤고 소희는 텃밭에서 상치를 뜯어와 울면서 씻었다. 소희가 상치를 씻을 때면 그때의 아픔이 눈물을 동반하고 나타났다.

그날부터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하는 반고아가 되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조금씩 사라지고 이어서 가난의 고난이 뒤 따랐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갈수록 처절하게 소희와 두동생에게 위협을 주었다.

어머니는 세 아이를 가진 과부의 몸으로 품팔이를 위해 불러주는 동네 사람들의 집 에 가서 하루 종일 일을 했다. 소희는 해질 무렵이면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집으로 가서 동생들을 데리고 왔다. 어머니는 소희가 꿈 많은 사춘기 소녀라는 것을 알려하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하는 치열한 삶의 투쟁에서 쓰러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아버지의 객사는 어머니의 잘못이었다는 이웃여자들의 쑥덕거림을 들은 후에는 어머니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소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고 그럴 때면 아버지가 그리웠고 아버지와 연결된 기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두 동생의 손을 잡고 서서 지나가는 기차를 한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아버지를 아는 기차역전의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풀떡을 먹을 때는 아버지 생각으로 목이 메었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3년 후 소희가족은 살던 곳을 떠났다. 품팔이하며 사는 데는 대도시가 나을 것이며 그들의 가정사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게 살기 편할 것이라는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유년기를 보낸 고향과의 작별이었다. 어머니는 길가에 어묵장사를 시작했다. 한 칸짜리 셋방살이는 소희에게 더 큰 의무가 지워졌다. 두 동생이 학교에 가기위한 준비를 해주어야 하고 장사 준비를 하는 어머니를 도왔다. 그녀는 야간학교를 가겠다고 마음먹고 어머니의 장사가 기반이 잡힐 때까지 말없이 참기로 했다. 동생들에게는 아무런 다른 걱정 말고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고 일렀다. 어느새 소녀가장 역할이 두 어깨에 얹혀졌다. 같은 나이또래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하굣길에 몰려와 어머니의 생선묵을 사먹으며 조잘거리는 학교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하잘것없는 어묵장사를 소희 없이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류현옥

소희가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너도 교복을 입고 두 갈레로 머리를 묶고 학교를 가고 싶겠지만 우리 집 사정이 이러니 어쩌겠니? 너의 어린 두 동생을 생각해서 네가 희생하는 수밖에 우리가 살길이 없어!” 했다. 그때 어머니가 말한 희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2019년 10월 25일, 1144호 14-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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