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혜 아동을 소개 합니다

김제시 금산리에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구한말 레이스 테이드 선교사님이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때 그 고장에서 가장 큰 부자로, 조덕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가 서양 종교를 받아들이기는 참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조덕삼은 예수를 믿기로 하고, 레이드 테이드 선교사님을 자기 집에 모시어 수발해 주었고, 아예, 사랑채를 내주면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 이 집에는 이자익이라는 청년이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주인 조덕삼의 마부 노릇을 주로 하였습니다. 이 청년도 주인을 따라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산교회는 부흥되어 갔고, 교회의 장로를 세워야 될 떼가 이르렀습니다. 공교롭게도, 주인인 조덕삼과 그의 마부인 이자익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회의 성도들은 주인인 조덕삼이 장로가 되고, 그의 말고삐를 잡고 다니는 이자익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인 조덕삼은 떨어지고, 그의 마부인 이자익 청년이 장로로 피택되는 투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때 주인 조덕삼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교회에 오면, 이자익 장로를 깍듯이 받들고, 순종했습니다. 물론 집에 돌아가면, 이자익은 여전하게 마부로 성실히 일했습니다. 가끔씩, 레이스 테이드 선교사님이 교회를 비울 때면, 조덕삼은 이자익 장로에게 주일 설교를 하도록 배려했고, 자기는 마루에 끓어 앉아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금산 교회 성도들은 마부로 장로가 된 이자익 청년의 모습도 존경했지만, 아직도 자신의 마부로 일하는 이자익을 장로님, 장로님, 하면서 떠받드는 그의 주인 조덕삼의 섬기는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 조덕삼은, 이 자 익을 평양 신학교로 보내어 신학을 공부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2대 장로가 되어, 열심히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이자익 장로는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된 이자익 목사를 다시 금산 교회로 초빙하여 목사의 신분으로 목회를 하도록 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최선을 다해, 이자익 목사를 섬겼습니다. 마침내 이자익 목사님은 조선 기독교를 이끄는 총회장이 되었고, 그 이후, 3번씩이나, 다시 총회장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조덕삼 장로의 아들 조영호도

장로가 되었고, 그 손자 조세형은 3선 국회의원을 했으며, 주일 대사를 역임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부자 조덕 장로가 임종할 때가 되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식들에게 금산 교회와 이자익 목사님을 대대로 잘 섬기라고 유언을 남기고, 평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 때, 이자익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여섯 살에 고아가 된 떠돌이를 받아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 장로로 세워 신학공부까지 시켜 목사가 되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신 장로님, 내가 언제, 어디서, 이러한 장로님을 또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내 생명이신 조덕삼 장로님…..>

이자익 목사님의 눈물의 기도는, 전 한국 교회를 울렸고, 목사와 장로의 위치가 무엇인가를 참으로 절실하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바라건대, 대한민국 교회의 모습이 이렇게 변화되고, 그 여파로,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감동의 이불로 덮여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이진혜 아동은, 충북 청주시에서, 부모님, 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동이 출생할 당시, 성대 마비로 진단을 받았으며, 우유를 마시면 폐로 가는 등의 이상 증상이 관찰 되었습니다. 진혜가 3살 때, 대 근육 및, 소 근육 발달이 부진하여 걷고 앉는 것이 힘들 정도였으며, 말도하지 못하고, 경련으로 인하여,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잦아, 검사를 진행하여, 뇌 병변 장애 2급과 지적 장애를 진단 받았습니다.

진혜 아동은 또래보다 많이 느리지만, 어머니와 함께 노력하여, 꾸준히 아동만의 속도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동의 아버지는 현재 군 복무 중으로,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또한 어머니는 아동과 동생의 육아에 힘쓰고 있으며, 특히 아동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치료를 받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동은 2019년 현재,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일반 학교의 특수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민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가 진혜 아동과 그 가정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농구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농구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마이클 조던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농구 황제>라고 부릅니다. 사실, 미국의 프로 농구 역사를 보면,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황제라는 호칭은 붙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농구 실력보다, 마이클 조던이 황제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처음 미국 프로 농구에 입문했을 때, 혼자서 30,40 점대의 높은 점수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높은 점수를 올리는 날은, 꼭, 경기에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클 조던은 자신의 점수를 20,30점대로 낮추고, 동료들에게 패스하는 것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팀이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현역으로 뛸 때, 많은 선수들이 그와 함께 한 팀에서 뛰기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 경기를 하면, 자신의 풀레이가 훨씬 더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동료들에게 멋진 패스를 많이 합니다. 그는 자신의 슛 실적보다, 팀웍을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농구 황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속한 시카고 불스는 승승장구하며, 수차례 우승컵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남을 빛나게 해 주는 멋진 동료가 그들의 황제가 되길 모두가 원했던 것입니다.

앞에서 소개드린 금산 부자 조덕삼 장로도, 그리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자기 자신 보다도, 상대방을 높여 주려고 노력 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치레가 아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상대방을 높여 주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남을 진심으로 높이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는 반드시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교민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2019년 11월 1일, 1145호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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