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화가 황수잔의 명화산책(39)

노란새들이 있는 풍경 (Landschaft mit gelben Voegeln)

“강렬한 색채들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노란새들이 있는풍경(Landschaft mit gelben Voegeln), 파울클레 (Paul Klee 1879-1940)

음악, 문학, 미술, 4차원의 세계를 넘나드는 현대추상화 클레의 그림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은 검정색 배경으로 빨강, 보라색이 잘 어울리는 둥글고 잎이 넓은 아열대 식물들이 좌우로 펼쳐져 있다. 중앙에는 짙은 회색 전나무가 있고 오른쪽에 하얀 둥근 해로 낮을 표현하고 있으면 왼쪽은 어두운 밤을 표현하고 있다. 상단 중앙에 밝은 톤의 하얗고 푸른 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나무들 사이사이에 노란 새들이 평화롭게 앉아있다. 중앙에 밝은 톤의 하얀 아열대 전나무들이 하이라이트를 만들고 있다.

노란 새들 중에는 구름 밑으로 머리를 향한 새도 있고 대지위에 초록색 이끼위로 무성한 아열대식물 사이에 밑으로 향한 가냘픈 새도 있다. 해와 달을 주로 그리는 풍요로운 동방의 환상적이고 신비함을 주고 있다. 크롬황색의 반짝이는 금속 노란 새들은 사산이데(Sassanide, 고대 페르시아 3-7세기의 사산왕조)금속작업으로 우아하고 고품격이다. 정확한 구도와 배치, 자연적 아름다움에 대한 창조적인 감각과 프리미티브 (Primitiv), 원초적이고 단순해서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다.

단순하게 보이는 클레 그림들은 보면 볼수록 전설적인, 환상적이고 신비의 비밀에 쌓여있다. 관객들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클래의 천진난만한 그림들을 보면서 환상적인 신비의 비밀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클레는 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공간을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정서를 가진 작가로 문학, 음악, 미술세계를 넘나드는 예술 감각이 뛰어난 섬세하고 감성이 풍부한 나만의 독특한 공간으로 표출했다.

파울클레는 1879년 스위스 근교 베른 (Bern)에서 음악교사인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분위기에서 자란 클레는 문학, 음악,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다. 시, 일기를 쓰면서 문학에 심취하기도 한 그는 청년시절 그리스어와 스케치를 좋아 했다. 7세때 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후, 프로급의 연주자가 된 그는 바이올린연주를 즐겼다. 음악적 재능이 매우 뛰어나서 베른 시립 교향악단에서 대리 연주자로 활동했다.

그는 10대에 시와 단편소설을 썼다. 클레는 전공으로 문학, 음악, 미술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1898년 클레는 미술전공으로 결정했고 미술 아카데미에서 프란츠 폰슈투크 화가 (Franz von Stuck) 문하에 들어가 1901년까지 사사받았다. 현대화가 벡크만, 칸딘스키, 코코슈카를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음악에 재능이 많은 클레는 바그너, 슈트라우스, 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이탈리아, 로마, 나폴리, 피렌체 여행을 하면서 로마에서 웅장하고 전통적이고 예술적인 고딕 건축물들을 보고 감동 했다. 나폴리 수족관에서 본 선명한 색채와 기묘한 물고기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여행에서 얻은 감동은 후에 그림들의 새로운 모티브가 되었다. 베른으로 돌아온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베른시 관현악단 단원이 되었다. 클레의 작품들은 내부의 음악적이고 시적인 요소와 건축적인 회화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1906년 피아니스트 Lily Stumpf와 결혼하고 1907년 아들 Felix가 태어났다.


남쪽정원 (Suedliche Gaerten)

1910년 스위스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12년 칸딘스키, 마르크, 마케와 함께 4인전 현대그룹전을 가졌다. 1914년 남국의 정원, 튀니지 (Tunis) 여행 에서 빛을 통한 자연의 강렬한 색채적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아 수많은 수채화그림들을 그렸고 색채의 창조세계로 들어갔다. 이 여행은 그의 미술을 자연 그대로의 형태 묘사로 부터 추상경향의 미술로 바꾸어 놓았다. 클레의 색채가 풍부한 작품은 대부분 겨우 12일 동안 튀니지 여행을 한 이후의 것이다.

“강렬한 색채들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무척 행복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튀니지 (Tunis) 여행에서 기록한 색채마술사, 클레 일기에서 쓴 글이다.

1921년부터 독일 와이마 에서 바우하우스 현대미술 마이스터로 있었다. 1924년 뉴욕에서 개인전과 1926년 파이닝거, 칸딘스키, 야우렌스키와 청기사 4인전을 가졌다. 1931년 Duesseldorf 아카데미 미술교수가 되었다. 1933년 클레, 코코슈카, 벡크만, 칸딘스키와 같은 당시 거장 현대추상화 화가들을 히틀러 나치정권에서 타락한 미술, 퇴폐예술가로 미술활동을 금지시켰다. 클레는 교수직을 해고당했고 고향 베른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독일 전지역에서 ‘퇴폐미술 4인전’ 을 가졌다. 예술탄압으로 독일 박물관으로부터 1,052점 작품이 몰수당했다.

2차대전 후 그들은 다시 현대미술에 전념했다. 바우하우스의 실험적 전통에 근원을 둔 자연 현상인 빛, 움직임, 공간을 지향하는 ‘옵아트 (Op-Art)’ 로 발전했다. 굵은선의 구획을 통한 빛나는 색면구 성으로 당시 시대회화의 수용과 극복을 통해 현대미술을 전개했다. 클레 예술작품들은 프리미티브 (primitiv), 순수한 행위의 원초성을 고스란히 지닌 추상미술이다. 1935년 불치의 병으로 진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수많은 보석같은 그림들을 남겨놓았다. 1939년 스위스인으로 전향되기를 원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1940년 스위스 Locarno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바우하우스에서 강연한 ‘조형사고’‚ ‘일기’‚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2년 후 1942년 그가 원하던 스위스 인 으로 전향되었다.

위대한 예술가 클레는 떠났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유작들은. 스위스 베른 미술관 클레 재단에 약 3000점이 소장되어있다. 미술은 보이는 것이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 클레는 말했다.

“나는 이세상의 언어만으로는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은 자 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와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보다 창조의 핵심에 가까워 지긴 했으나 아직 충분하다 고는 말할 수없다.” -4차원의 세계로 떠다니는 맑은 음악이 깃든 그림을 그렸던, 파울클레 묘비명중에서-

2019년 11월 8일, 1146호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