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버터의 재출발

류 현옥

눈에 뜨이게 낮의 길이가 짧아지더니 으스스 냉기가 온다. 연말이 다가온다. 고향집의 따스한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가로수 꼭지 위로 내려앉는 어둠을 의식하며 걷는 퇴근길, 낙엽들이 수북하게 깔렸다. 반세기 전 떠나온 고향동네 앞길에 깔렸던 단풍잎들이 떠오른다. 돌담을 따라 선 감나무들, 붉어진 입새들 사이에 노란 은행잎들이 골목길을 덮고 있었다. 그때처럼 냉기를 품은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잠들기 어려운 날이다.

이불을 감고 일찍 자리에 들었는데 밤중에 치통이 엄습했다. 이렇게 잠을 설친 날에도 직장생활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장에 출근하여 자리에 앉자 간호부장의 전화가 왔다. 예정대로 실습생이 왔으니 간호부장실로 오라는 통고다. 실업자를 돌보는 사회복지국에서 보낸 실습생이니 우선 소개도 받고 병동으로 데리고 가라는 간호부장의 부탁을 듣고 있는 데, 치통으로 예민해진 청력이 상처를 받았는지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헤어버터는 노동청에서 보낸 중년의 남성 장기실업자였다. 원래는 집배원 일을 했다. 30여 년 전 독일의 집배원은 통신국 직원으로 중요한 편지와 관청 서류를 배달하는 막중한 책임과 신임을 요구하는 직업에 속했다. 노인들의 연금이 든 현금봉투를 배달하는 운반책이었고 우체국 직원으로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그가 일을 못하게 되어 장기간 실업자로 사회복지청의 후원에 의지하여 살다가 재활기간이 끝나 노동훈련을 위하여 보내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잠시 잊었던 치통이 되돌아 왔다. 물론 그전에 전문가들의 컨설팅과 제안에 의해 실습장소를 선택했을 일이다.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간호하는 내과 병동으로 그는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를 등에 메고 온 것이었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악수를 나누며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내가 말없이 앉아 오른손으로 볼을 쓰다듬고 있는 것을 보고 간호부장이 물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잠을 잘못 잔 거 아냐?” “이가 아픈 것 같은데요!” 헤어버터가 서슴없이 한 말이다. 나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근무가 끝나면 치과에 갈 것이고 진통제를 먹었다고 답했다.

부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으로 오는 길에 그는 치통을 참으며 일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마디 했다. 실습생으로 온 처지를 잊고 앞으로 나의 지시에 따라 해야 하는 실습생으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고맙다는 말로 대꾸를 했다. 노동훈련 수련기간이 얼마나 될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환자들을 위해 하는 일이 마음에 들고 직원들에게서 좋은 점수를 받아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 상호간에 합의가 되면 직업학교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가 노인간호학교에 입학하고, 노동청에서는 실업자 보험비를 생활비로 주고 노인학교 학생 교육비가 나온다고 했다. 그에게는 새 직업과 동시에 인생의 재출발이라고 했다. 아마도 나에게 자신의 운명이 달린 일이라는 은근한 의미 전달이었다.

집배원으로 일을 하면서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죄로 8개월 수감생활을 마치고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알콜 중독을 치료했다고 했다. 병동 간호실에서 잠시 커피를 한잔 마시자고 앉았는데, 그는 커피를 마시며 쉬지 않고 사생활 이야기를 계속했다. 손이 모자라는 노인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시키는 대로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노동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 있어 현장에서 적성검사를 받는 셈인데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같이 일하게 될 팀의 점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병동으로 와서 하루에 8시간씩 허드렛일을 하며 훈련을 받는데 당분간은 법원 사회복지청과 노동청 쪽의 그물에 걸린 상태로 일상의 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삭발을 하는 수인들과 달리 그는 길게 기른 머리를 고무줄로 한 다발 질끈 묵었고 수염까지 길게 기른 상태였기에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어수선하게 보였다. 언제부터 장발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스스럼없이 수감 생활이 끝나고 석방 후에 한 번도 이발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의 외모가 중요하지 않아요. 나의 내면을 등한시하여 속이 뒤틀어지기 시작하여 나도 감당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되거든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요?”

헤어버트는 눈을 깜박거리며 심사숙고를 한 후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내일 심리 상담을 가는 날인데 상담가에게 물어보고 말씀 드리지요. 이제 새로 구축된 마음의 작은 세계에 잘못 전달이 되면 안 될 테니까.”

점점 더 복잡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시계를 보여주면서 신호를 보냈다. 수면부족과 치통으로 심신이 어지러운 날, 하필 그와 첫 수련의 날을 맞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남간호사 에릭을 불러 그를 맡겼다. 헤어버트는 자주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조심해야 할 남자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남자라 예측불후의 상황인가 봐.”

“나에게는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모두 쉬쉬 할 일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도와줄 것이 아니야. 병동 팀에게 덤으로 얹어진 숙제로 그의 장래가 결정될 일인데 실수가 없어야 될 거 아니냐고.”

월례 팀 회의에서 그의 문제가 주제로 등장했다. 참석한 간호부장은 그가 내과병동으로 보내지기까지는 험난한 개인의 과거사가 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인적인 접촉으로 물어서 본인 스스로가 말하게 해야 한다고 충고를 했다. 동료 각각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스스로 이야기해서 자율적으로 컨트롤하고 조금씩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금주치료, 요양으로 술을 끊었고 재출발을 시작했으니 중요한 것은 재발이 안 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술병이 다 나아서 우리에게로 보낸 게 아니야?”

“중독은 병이지만 완치가 힘든 거야. 하루하루가 투쟁으로 단 한 방울의 술이 들어가면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마시기 시작하고 술병이 재발하는 거야.”

“주량과 관계가 있는 거 아니야? 맥주 한잔 했다고 술병에 걸렸다고 할 수는 없잖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그래서 금주환자들을 진짜 술꾼과 구별해서 ‘마른 술꾼*(dry drink)’이라 부르지.”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헤어버터가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바꾸고 수염을 깎고 면도를 하고 출근했다. 머리를 뒤로 묶었을 때 유난히 눈에 띠었던 이마 위의 대머리 면적이 줄어든 듯 보였고 밝은 모습이었다. 회색으로 변한 머리색갈이 그의 연륜과 나이를 말해 주었지만 의외로 인상 좋은 중년의 남자로 변모했다. 일 년이 거의 지나면서 병동의 팀 속에서 시키는 일을 순순히 잘 해내어 사랑도 받았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그를 찾아서 병동에서 불편함은 없는지 묻고 적응을 잘하는지 살폈고 동료들이 칭찬을 한다고 전해 주었다.

그의 반응은 의외로 술꾼들이 원래 특성은 순종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폭발을 하던지 집에 가서 말 안하고 참았던 날의 분노를 술로 해소한다고 했다. 잘 한다는 칭찬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반발하지 않고 혹시나 미움을 받을까 기우에서 고개 숙이는 착한 사람으로 살다보면 자기를 잃는다고 했다. 마음의 상처를 잊기 위해 마시는 술은 나 자신을 잃게 하는 거란다. 그렇게 말해놓고 그는 큰 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목소리를 죽여, “다 변명이지요 뭐. 듣고 버릴 이야기입니다.

술꾼들의 괴변이지요.” 매일 술을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던 아내가 포기하고 사랑하던 딸을 데리고 집을 떠난 후에 완전 술꾼이 되었단다. 술값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이 늘어나자 연금이 배달되는 날, 문 앞에서 기다리는 노인들의 연금을 슬쩍하기 시작했단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며 사는 동료 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털과 수염 속에 덮어두었던 피부를 노출한다고 익살을 부리며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앤을 끌어안으며 사랑을 표현했다. 얼마 후에 앤이 아들을 데리고 살던 집이 좁다며 큰집으로 이사를 했고 헤어버트가 같이 입주했다.

“….너무 급속도로 저러는 건 위험한 일이야!”

“앤의 아들에게 끔찍하게 잘하며 아버지 역할을 맡은 거지! 물론 15살이나 연하인 여자에게 반한 것이니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지.”

두 사람의 로망스는 병동 팀의 분위기가 바뀌는 동기가 되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수련생의 역할을 잊어가고 있었고 잘못을 지적하는 동료에 대해 공격적이었다. 그럴 때 면 앤이 그의 편을 들고 나왔다. 환자가 침대에서 떨어져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그가 제일 먼저 두 팔을 걷고 나타나 다시 침대 위로 끌어 올렸는데 이제 막 간호학교를 졸업한 동료는 어디를 다쳤는지 확인하지 않고 끌어올리면 잘못될 수도 있고 골절일 경우에는 더 조심해서 옮겨야 되는 데 그는 무지막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병동의 의사까지 동원되어 이 문제가 논의되자 헤어버트는 자세를 고치고 실습생답게 시키는 대로만 하겠다고 시말서를 썼다. 그동안 그는 노인학교 정식학생이 되었다. 6개월 동안 노인학 이론 공부를 위해 병동을 떠났다. 수련생들은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배우러 온 수련생은 한사람 몫을 하지 않는다고 번번이 말하지만 그가 남긴 빈자리는 동료들에게 일의 분량을 증가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거기다가 젊은 세 학생이 와서 가운 자락을 붙잡고 일일이 물어오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성인인 헤어버트는 그렇게 귀찮게 괴롭히는 수련생이 아니었다고들 말했다.

앤이 헤어버트가 TV에 나와서 ‘마른술중독자’ 인터뷰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방송국에서 나와 인터뷰를 했고 녹화를 해 갔는데 언제 방영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동안 자조치료모임에 가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상담자교육을 받게 되었단다. 이제는 전문적으로 중독자상담가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앤은 그의 동반자가 되어 헤어버터의 재활에 한몫을 하게 되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와 새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는 전례 없는 성공케이스로 알려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앤을 위해서는 같이 기뻐해야할 병동의 팀들이 양분되어서 쑥덕거렸다. 나이든 동료들의 걱정이 젊은 동료들의 그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로 살얼음 위를 걷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가 다시 술잔을 들게 되면 앤의 잘못으로 뒤집어 쓸 것이라는 것이다.

TV 방송은 알코올 중독자의 금단치료를 성공적으로 뒤로하고 직업재활과 사회생활 의 새 출발과 동시에 노인 간호사로 종사하게 되었다는 사례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술병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기에 앞으로 핫라인까지 설치가 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는 인생을 같이할 새 배우자의 든든한 뒷받침으로 심신의 재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병동의 팀에게 감사한다는 멘트로 노인병원 선전까지 한몫했다.

흰 와이셔츠에 회색 양복을 입은 여유 있는 중년 신사로 화면에 등장한 헤어버트에게서 과거의 얼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독일인들은 ‘옷이 사람들을 만든다.’ 라고 하는 데 그의 경우가 좋은 예로 변신한 셈이었다. 그동안 담당 상담심리가, 직업담당자들이 애쓴 보람 있는 케이스로 소개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신념과 일관된 인내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며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굳은 의지와 자신에 대한 신임을 가지고 금단을 하라는 말로 끝을 냈다.

며칠 후 앤이 병가를 냈다. 좋지 않은 조짐을 보인다고 모두 걱정했다. 그는 노인 간호학 이론 수업으로 얼마 동안 더 병동에 오지 않을 것이기에 두 사람의 소식을 들을 수 없이 며칠이 지나갔다. 시골에서 앤의 어머니가 손자를 위해 왔다는 소식이 오고 앤은 아직도 근무를 할 힘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병가를 연장한다는 의사의 처방을 들고 앤의 어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병동으로 와서 궁금했던 앤의 심상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팀을 경악하게 했다.헤어버터가 짐을 싸들고 앤을 떠났다고 했다. 앤의 어머니는 TV 방송 때문이라 분노했다. 방송이 나간 이틀 후 그의 전처가 딸을 데리고 앤이 사는 집을 찾아온 것이다.

전처는 그를 떠난 후 재혼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별거 중에 그 방송을 보았다. 이제 술병도 나았고 그녀가 떠나갈 때보다 오히려 더 젊은 몸으로 TV스타로 등장하여 성공담을 이야기하고 새 직업을 가지고 좋은 가장이 될 것이기에 그들의 가정을 위해 재출발을 하자고 했다. 그는 몇 년간 보지 못한 사춘기 딸을 끌어안고 두 여자 앞에서 울었다. 그동안 억눌러 있던 감정의 봇물이 터져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인데 전처와 앤은 사랑하는 딸을 안고 우는 한 남자에 대한 연민에 동감하여 따라 울었다고 한다.

전처는 어려운 시기에 자기를 버리고 떠난 후 연락이 불가능하게 했고 구치소에 있을 때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앤에게 여러 번 호소했었다. 그의 딸을 데리고 나타난 전처 앞에서 통곡함으로써 전처의 지나간 모든 잘못을 용서할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앤의 제안으로 전처와 둘이서 다시 만나 상의하자고 약속하고 모녀는 돌아갔다. 앤은 헤어비의 생각을 물었다.

“이제 사춘기가 된 딸에게 그동안 다하지 못한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싶어…”

“그렇다면 다시 그 여자와 같이 살겠다는 거야?”

“그녀는 나를 아직 사랑하고 있어.”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의 사랑은 의미가 없다는 거야?”

“나도 나의 딸을 혼자 키워 준 그녀를 사랑해.”

“그럼…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야 ?”

“……..”

헤어비는 침묵했다. 그는 다만 앤의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을 뿐 앤에게는 어떤 말도 더하지 않았다. 그는 얼마되지 않는 소지품을 챙기고는 앤을 떠나갔다. 병동으로는 노인 간호학 이론수업 기간이 끝나면 다른 병원으로 실습장소를 옮긴다는 통지를 보내왔다.

나는 종종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한다. 앤의 아들과 헤어비의 딸은 이미 성인이 되었을 것이고 앤은 재혼을 했을지 모르고 그는 지금도 하루하루 단한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는 투쟁의 나날을 지내고 있을 것이다. 딸의 어머니와 노년기를 맞아 살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가을을 재촉하는 찬비가 내리는 날이면 헤어비가 병동으로 온 그날을 생각하고 치통으로 설치던 밤을 생각한다. 치통을 참으며 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 그의 말이 새삼 생각나기도 한다. (2019년 11월)

*금단으로 치료된 알콜 중독자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행동이 과거 술을 마실 때와 비슷하고 이 상황에서 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형태의 알콜중독 환자의 행동을 „마른주정“이라고 한다 .마른주정은 알콜중독 치료를 받기 이전으로 가는 재발과정이 활성화 되는 증거이기도 하다.

(편집실)

2019년 12월 20일, 1151호 14-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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